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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26) 칼뱅과 제네바교회가 주는 교훈 ①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지금, 세계 교회가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세미나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칼뱅은 종교개혁 제2세대로서 루터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완성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회에 걸쳐 ‘칼뱅과 제네바교회’라는 주제로 살펴본 내용의 결론으로서, 두 번에 걸쳐 칼뱅과 제네바교회가 한국교회에 던져주는 교훈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다.

한국교회와 관련해 많은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언제나 ‘목회자의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제네바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제네바가 1536년 개혁되기 전까지 옛 질서 안에 있을 때 주교군주가 제네바를 지배했다. 제네바는 사부아 공국의 지배를 받았고, 주교는 곧 사부아 집안의 사람들이었다. 타락한 주교군주는 제네바의 통행세나 세금의 2/3를 가져갔고, 농지 임대료와 세금도 주교의 수입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면죄부를 발행하였다.

제네바는 베른에 많은 채무를 지고 있었는데, 1536년 개혁을 하고 독립을 선언할 때 베른에 지불하여야 할 채무를 갚기 위해 시민들에게 건국헌금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금액을 헌납한 자에게는 국가의 공직을 부여했는데, 가령 장 발라르(Jean Balard)는 많은 금액을 헌납하고 시의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한마디로 제네바는 종교와 정치가 결탁했고, 부패의 중심에 돈이 있었다.

제네바의 종교 역시 정치와 돈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개혁을 선언한 이래 베른의 설교자들이 들어왔고, 베른식의 종교가 수입되었다. 제네바 뒤에는 베른이 있었고, 제네바는 베른의 간섭을 받았다. 베른은 칼뱅의 신학에 반대했고, 특히 예정론을 설교하는 제네바 목사를 체포하고 감금하였다. 또 베른에 정치기반을 둔 수구세력은 칼뱅의 설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사사건건 칼뱅의 사역을 방해하였다. 페랭파는 오히려 세르베투스를 옹호하면서 칼뱅을 제거하려는 시도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칼뱅은 제네바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또 제네바를 변화시켰는가? 그 모든 해답 역시 목회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제네바목사회(The Company of Pastors in Geneva)’를 통한 목회자들의 자체 정화와 목회자 평생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칼뱅은 제1차 체류의 실패를 바탕으로 1541년 교회법령에 4중직제를 명시하면서 목사들에 대한 규정을 만들었다. 그 중심에 제네바목사회가 있는데 제네바 및 시골 교구의 모든 목사들을 의무적으로 매주 금요일 회집하도록 한 것이다. 목사회의 기능은 신임목사의 시험과 선발, 목사들의 형제애적 견책을 비롯한 자체 정화시스템, 목회자 연장교육, 신학검증시스템을 들 수 있다. 또한 제네바목사회는 치리회와 제네바아카데미, 종합구빈원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제네바개혁의 중심에 제네바목사회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네바와 시골 교구의 모든 목사들이 매주 의무적으로 모여 성경과 신학을 발제와 토론을 통해 성경해석과 교리적 일치를 이루어간 것이 제네바개혁의 핵심이었다.

개교회주의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에서는 어쩌면 ‘비현실적’인 발상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마치 ‘개인사업자’처럼 목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회성’이 무너져버린 현장에 사이비·이단 집단이 자라나고, 불건전한 신학사상이 통용되는 것은 자체 검증이나 정화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노회와 총회가 있지만 ‘정치적’ 기능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네바는 한 개의 노회 정도의 규모였다. 이 ‘시노드’가 교회조직에서 제대로 작동되면 효과적인 교회개혁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요청되는 것이 바로 ‘목회자 연장교육’이다. 현직의 목사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공적인 설교자이다. 교단에 속한 목회자로서 성경해석과 교리적 일치를 위해 의무적이며, 상설적이며, 공개적이며, 공공적인 모임에서 자신의 성경해석과 신학을 검증받고 또 연구하며 공부해야 한다.

한 번의 강도사고시가 평생 유효한 것이 아니라 교단이 공인한 설교자로서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현장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목회자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다양한 세미나와 학교 등에서 공부할 수도 있겠지만 공적이고 의무적인 연장교육이 필요하다. 제네바교회는 콩그레가시옹, 즉 주간성경연구모임을 통해서 수많은 이단자들을 제거하였고, 제네바의 개혁신학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또 칼뱅은 평생 이 모임의 회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 결과 제네바교회의 강단은 올바른 성경해석과 신학으로 견고해졌고, 목회자들은 정화되었으며, 제네바는 성경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우리가 성경적 교회를 추구하면서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고자 하고, 또 개혁교회를 추구하면서 제네바교회를 연구하며 살펴볼 때 제네바교회의 목회자 연장교육이 주는 교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김병국 기자  bkkim@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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