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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27) 칼뱅과 제네바교회가 주는 교훈 ②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칼뱅과 제네바교회에 대한 연재를 마감하면서, 필자가 남기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제네바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수없이 많다. 그 첫째는 목사의 문제요. 그 다음은 정통신앙의 수호이다.

교회의 문제는 언제나 지도자의 문제요, 목회자의 문제이다. 제네바교회는 ‘제네바목사회’라는 목회자들의 자정시스템, 성경해석과 교리일치의 검증시스템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교회정치나 행정 차원의 모임을 넘어 목회자의 평생교육의 장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두 가지 기능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서 ‘목회자 윤리규정’ 신설과 ‘목회자 연장교육’이 꼭 실현되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종교개혁은 독일의 작센지역에서 시작되었고, 루터파가 선두에서 개혁을 이끌었다. 그러나 1590년에 이르자 유럽 내에서 루터파보다 오히려 칼뱅파를 따르는 지역이 더 많아졌다. 그 이유는 루터파가 전통의 연속성에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에, 칼뱅파는 박해를 무릅쓰고 성경적인 교회건설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교회사에서 칼뱅과 제네바교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오토 베버는 ‘교회의 형성자’로, 프레드 그래함은 ‘건설적인 혁명가로’,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창시자’로, 또 존 녹스는 제네바교회를 평가하기를 ‘사도시대 이후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로 칭송하였다. 또한 표준문서라고 할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벨직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의 배경이 칼뱅의 제네바목사회와 제네바아카데미라고 할 때, 칼뱅의 생애와 신학을 연구하고 특히 제네바에서의 실제 목회를 파악하는 것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칼뱅과 제네바교회가 오늘 현대교회와 특히, 예장합동 교단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통신앙을 수호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루터파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이신칭의라는 보화를 발견했지만 칼뱅주의는 이것을 뛰어넘어 영원예정교리와 성찬에서의 영적임재설, 교회정치형태를 사중직제를 중심으로 장로회주의정치를 정착시키기에 이르렀다. 루터가 구교의 미신과 폐습을 타파하였다면 칼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에서 참 교회의 길을 찾았다. 특히 칼뱅은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하면서 말씀의 증거와 정당한 성례의 시행을 교회의 표지로 삼고, 이것을 공고히 하기 위한 보조적 표지로 권징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제네바교회는 베른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설교를 비롯한 교리적 결정마저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흘러갈 공산이 컸다. 이에 칼뱅과 제네바목사회는 베른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성경적인 교회의 건설을 위해 제네바교회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당시 베른에 속한 제네바 영지에서 예정론을 설교하면 옥에 갇혔고 구교적 관습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제네바교회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매주 금요일에 회집하여 오전에는 주경신학을, 오후에는 조직신학을 연구하며 정통신앙을 굳건히 세워나갔다.

제롬 볼섹이 예정론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배격하였고, 세르베투스가 삼위일체를 부정하였을 때 제거하였다. 또 트롤리에가 칼뱅을 고소하였을 때 제네바 시의회는 제네바의 신학은 곧 <기독교 강요>라고 선언함으로써 제네바교회의 신학을 분명히 하였다. 칼뱅은 28년 동안에 무려 네 번이나 기소를 당했는데 모두가 신학논쟁과 관련되었다. 그뿐 아니라 목사회 회의록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신학논쟁과 관련된 자료들이다.

제네바교회는 제네바 정부의 신학 제공자이면서 나아가 당시 서방 기독교의 정통교리에 대한 수호자의 역할을 다하였다. 칼뱅은 로마가톨릭의 심각한 교리적 이탈을 고발하면서 기독교의 정통성을 초대 공의회에서 네 번째 공의회(칼케톤 451년)까지만 부여하고, 또 논쟁에서는 교부들과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정통교리의 근거를 인용하였다.

볼섹과 세르베투스를 단호하게 제거한 것은 칼뱅과 제네바교회의 정통교리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난 사건이었다. 특히 볼섹과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의 수구세력과 결탁하여 칼뱅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에 제네바교회가 볼섹을 추방하고 세르베투스를 화형에까지 처한 것은 단순한 칼뱅의 대적자를 넘어 정통교리의 근간인 삼위일체와 성자의 신성을 부정하는 심각한 교회의 위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교회는 WCRC와 WCC를 중심으로 여성안수는 물론 동성애까지 인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ICRC와 WRF만이 여성안수불허, 동성애불허, WCC불참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일본 그리스도개혁파교회가 2014년에 여성안수를 결정하고, 올해 2017년에 화란자유개혁교회(RCN)가 여성안수를 결정하였다.

이제 우리 교단의 마지막 사명은 무엇인가? 동성애와 여성안수로 겹겹이 에워쌈을 당하고 있는 이때에, 다른 장로교단들이 배교의 길을 걷는다 할지라도 우리 교단은 정통신앙의 마지막 수호자로 남아야 할 것이다. <끝>

김병국 기자  bkkim@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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