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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16)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제네바 목사들의 일상

▲ 임종구 목사
(푸른초장교회)

칼뱅을 비롯한 제네바 목사들은 어떻게 한 주간을 보냈을까? 교회법령과 제네바목사회 회의록(RCPG)은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연구와 강론, 심방, 아카데미에서 강의로 보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제네바에는 총 3개의 교구가 있었다. 제네바의 중심부에는 생 피에르와 라 마들렌이, 그리고 강 건너편에는 생 제르베가 있었다.

일단 각 교구에는 매일 예배가 있었다. 일종의 아침 예배였다. 한국교회로 본다면 새벽 예배였다. 그리고 수요일 예배가 있었고, 주일에는 3번의 예배, 즉 아침예배, 오전예배와 오후 3시에 드려진 오후예배가 있었다. 정오에는 어린이를 위한 교리문답이 있었다.

제네바 목사는 5명이었는데 3명의 조수와 함께 사역했고, 목사는 각각 2명씩 조를 이루어 사역했다. 설교는 한 교구에서만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씩 교구를 순회하면서 설교했다. 제네바 목사들은 주로 강해설교를 했다. 설교형태에 대해서 어떤 강요를 받은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강해설교를 듣는 회중은 연속설교를 들을 수 없었다. 따라서 종종 칼뱅의 설교에 집중했던 회중들 가운데는 칼뱅을 따라 다니며 설교를 듣기도 했다.

칼뱅은 주로 아벨 푸팽과 조를 이루어 사역했다. 이로 보건대 제네바 목사들에게 설교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자 일과였다. 결혼식은 목사가 주례를 맡고 교회에서 올려졌다. 결혼은 주일예배가 시작하기 30분 전에 시작되어 예배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에 끝내야 했다. 물론 평일에도 결혼식은 있었고, 성례식이 있는 날은 성례의 존중을 위해서 주일 결혼식은 삼가되었다.

제네바 목사들의 요일별 한 주간의 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주일에는 3번의 예배와 한 번의 교리문답, 그리고 결혼주례와, 1년 4차례의 성찬집례가 있었다. 월요일에는 아침예배와 제네바시의회와의 협의모임이 있었고, 아카데미에서 오전 강독과 성경주해 강의를 하였다.
화요일에는 아침예배와 아카데미에서의 오전 강독과 성경주해 강의가, 수요일에는 아침과 오전의 수요예배, 그리고 아카데미에서의 오전 강독과 성경주해 강의, 목요일에는 아침예배와 콩지스투아르, 즉 치리회로 모였고, 아카데미에서의 오전 강독이 있었다.

금요일에는 아침예배를 드린 직후 제네바의 모든 목사들이 모여 콩그레가시옹이라는 성경연구모임으로 회집했다. 또 오후에는 신학토론과 신임목사에 대한 시험과 선발과 같은 행정적인 일을 처리했다. 특히 오후 시간에는 오전 성경연구모임에서 성실하게 준비하지 못한 목사에 대한 꾸중과 3개월마다 형제애적 견책이 행하여졌다. 토요일에는 아침예배에 이어 감옥의 죄수들에 대한 심방과 종종 치리회의 잔무로 회집했고, 특히 아카데미에서는 목사후보생들에 대한 성경주해 개인지도가 행하여졌다.

주일의 어린이를 위한 교리문답은 주로 젊은 목사들이 맡았다. 또 장로 2명과 목사 2명이 조를 이루어 각각의 교구를 시찰했고, 환자를 심방했다. 이외에도 죄수들을 위한 강좌를 열어 교화했고, 토요일 저녁식사 이후에는 사형 직전에 있는 죄수를 위로하는 일을 했다. 목사들은 목요일에 열리는 치리회에 참석하여 일종의 목회상담을 했고, 시의회에서 장로를 선출할 때 출석하여 조언을 했다.

아카데미에서 헬라어, 히브리어,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3명의 공립교수는 월·화·목요일에 오전 오후에 한 시간을 강독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후에 한 시간을 강독했다. 또 두 명의 신학교수는 월·화·수요일의 오후에 한 시간의 성경주해를 가르쳤다.

제네바의 목사들은 결혼생활을 했다. 당시의 결혼은 곧 옛 종교와의 결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목사들의 사례비는 제네바의 목사와 시골교구의 목사와 차이가 있었고, 목사와 아카데미 교수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물론 목사와 목사 간에도 차이가 있었다. 칼뱅와 베자의 사례가 달랐고, 일반 교수와 아카데미 학장의 임금이 달랐다. 시골교구의 목사들은 제네바의 목사들에 비해 적은 금액의 사례금에 대해 항의했고, 칼뱅은 물가 폭등에 따른 목사들의 봉급문제에 대해서 시의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아벨푸팽 목사가 죽은 후 그의 자녀가 고아처럼 가난에 방치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시의회는 전격적으로 목사들의 봉급을 인상하기도 했다.

당시의 목사들 역시 윤리적인 문제로 해임되기도 했다. 장 페롱은 자신의 여종을 농락한 혐의로 해임당했고, 에클레시아도 가정 문제와 고리대금업에 손을 댄 것이 알려져 해임됐다. 종종 목사들은 자신의 임지를 무단이탈하기도 했는데 주로 베른 영지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이 제네바에 들어와 머물기도 했다. 트레페로가 자주 임지를 이탈하여 목사회에서 문제를 삼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제네바 목사들은 매일의 예배에서 설교하고 아카데미에서 강의했다. 또 치리회와 목사회에 출석하고 환자와 죄수를 심방하고 교구를 시찰했다. 이와 같이 제네바목사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전무했던 것이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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