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칼뱅은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성례전’이라고 말했다. 이 표지가 지켜지는 참된 교회를 위해 ‘권징’이라는 표지를 추가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권징을 시행하기 위해 목사와 함께 사역할 장로라는 직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제네바에서는 교회의 표지를 시행하기 위해 목사회와 치리회가 있었다. 목사회가 행정회였다면, 권징을 시행하는 콩지스투와르(consistoire)는 치리회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당회와 노회와 총회는 행정회와 치리회를 겸하고 있는 교회의 의회인 것이다.

칼뱅은 1537년 기초법령의 첫 머리말에서부터 권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만찬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질서가 잡혀있다고 할 수 없고, 특별한 경외심 없이 성찬에 참여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올바른 행정조직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초법령에서는 출교를 시행할 구체적인 직분이나 조직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오직 “출교를 회복시켜 교회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교회의 좋은 수단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541년의 표준법령에서는 뚜렷하게 4중직제가 제시되고 있는데, 교회의 통치를 위해 세우신 공적인 세 번째 직분으로 장로를 말하고 있다. 이 법령에서 장로의 직무란 “각 사람의 삶을 살펴보고 잘못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책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의 자격은 나무랄 데가 없고, 의혹의 여지가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적으로 사려 깊고, 선한 삶을 사는 제네바의 시의원이어야 했다.

장로는 12명을 선출했다. 200인 대의회에서 6명을, 60인 외교의회에서 4명을, 25인 소의회에서 2명을 선출하였다. 선출의 방법은 소의회는 장로를 선출하기 위해 목회자들을 출석시키고 목회자들이 동의한 명단을 200인 위원회로 보내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교구에 이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만일 교구의 신자들이 거세게 반대하면 그 사람은 교체되어야 했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교회의 신임을 받은 장로는 다음과 같이 서약을 했다.

1.나는 내게 부여된 책임을 따라서 모든 우상 숭배, 신성모독, 퇴폐, 기타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개혁에 어긋나는 것을 방지하고, 기회가 내게 주어지는 대로 관할권에 있는 자들을 훈계할 것을 맹세하고 약속한다.

2.또한 나는 내가 치리회에 보고될 만한 것을 알게 될 때, 오직 도시가 바른 질서와 하나님 경외 가운데 유지되도록 하기 위하여, 증오나 편애 없이 신실하게 내 의무를 시행할 것을 맹세하고 약속한다.

3.또한 나는 직무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해서, 선한 양심으로 전념할 것과, 제네바시의 소의회, 대의회, 전체의회에 의해 통과된 법령을 준수할 것을 맹세하고 약속한다.

이렇게 선출된 장로는 매년 2월에 연임될지, 교체될지가 결정되었다. 물론 그들이 충실하게 직무에 전념할 경우 이유 없이 교체되는 일은 없었다. 치리회는 이렇게 목회자 12명과 장로 12명으로 구성되었고, 그 외에 4명의 시장 가운데 한 명이 치리회의 의장을 맡았다.

치리회는 매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였다. 치리회는 종교법원이자, 교회의 법원으로 권징을 시행하였지만 단순히 치리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담과 교육의 기능도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런 교회법령에도 불구하고 장로의 선출방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의회가 목회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장로를 선출했던 것이다. 1561년 최종법령에 따르면 이런 문제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1560년 2월 9일 200인 의회는 장로를 선출할 때 반드시 목회자들의 자문과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기존의 법령을 재확인하고 소의회에서 선출된 2명의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시장일 경우 그는 시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홀장을 지니지 않은 채 치리회에 참석해야 하고, 시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장로로서 자격만 가진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치리회의 장로를 선출할 때 시민권자(Citoyens) 중에서만 선출하는 관행을 버리고 기존의 법령대로 영주권자(bourgeois) 중에서도 장로를 선출할 것을 명시하였다.

이와 같이 당시 취리히와 베른이 치리권을 시의회에 일임한 것과 달리 제네바는 치리권을 교회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치리장로는 제네바의 시의원들 중에서 선출되었지만 치리회에 참석할 때는 시의원이나 시장으로서가 아니라 치리장로로서 참석하는 것이었다. 또한 장로직이 항존직이지만 장로 당사자는 1년마다 신임을 받아야 했고, 직무에 충실하지 않거나 적합하지 않을 경우 교체되었고, 장로 후보자는 목사회의 동의와 신자회의 동의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로 임직받는 순간 종신직이 된다는 이해는 잘못이다. 일정기간의 사역 후 신임을 통해 장로 직무가 연장되는 것이 치리장로가 시작되었던 제네바교회 법령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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