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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25) 칼뱅의 죽음과 유언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제네바에 첫 발을 내딛은 후 28년을 사역하고 제네바 목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았다. 시의회 회의록은 “오늘 저녁 8시 책임감이 강한 칼뱅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감각과 정신이 온전한 채로 하나님께 갔다”라고 개혁자의 퇴장을 기록하고 있다.

칼뱅은 노년에 극심한 육체의 질고와 싸워야 했다. 평생 그를 따라 다녔던 편두통, 치질, 류머티즘에 시달렸다. 1561년부터는 방광통과 통풍까지 발병해 의자나 가마, 말 등에 앉은 채로 근무하고 이동했다. 죽음에 임박하여 불링거에게 보낸 칼뱅의 편지를 보면 “비록 고통을 덜 느끼고 있으나 내 폐는 담으로 가득 차 있어 호흡하기 힘들고 가쁘기만 하오. 방광 속의 결석이 지난 12일 동안 나를 매우 괴롭혔소”라고 토로하고 있다.

칼뱅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직감하고 유언을 남겼다. 유언 작성은 1564년 4월 25일 제네바 시의 행정서기였던 공증인 피에르 슈날리에게 맡겨졌다. 그의 유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네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인 나 장 칼뱅은 많은 질병으로 쇠잔해져서 하나님이 곧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고자 하신다는 것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없음을 느끼기 때문에 내 유언을 남기는 바이다”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먼저 한없이 부족한 자신을 불러주심을 감사했다. “먼저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가련한 피조물인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내가 빠져 있던 우상숭배의 심연에서 건져주셨을 뿐 아니라, 그의 복음의 광명으로 이끄시고 10만 번 버림받아 마땅한 나의 악덕과 부패에서 나를 용납하셨음에 대해 감사한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서 칼뱅은 자신의 생애와 사역을 회고하기를 “또한 나는 그가 내게 주신 분량을 따라 그의 말씀을 설교와 글로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경을 충실하게 설명하고자 애썼다. 심지어 진리의 적들과 치렀던 모든 논쟁들에서도 나의 교활함이나 궤변을 사용하지 않고 그의 투쟁을 견지하는 일을 솔직하게 수행했다”라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사망한 후 관례에 따라 매장되기를 원했고, 남겨진 유산을 상속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유언했다. “나는 내 유일한 상속인으로 내 사랑하는 동생 앙투앙 칼뱅을 지명하는데 그는 오직 명예 상속인일 뿐이며 그에게는 내가 바렌의 영주에게서 받은 잔의 모든 권리를 넘기고 내가 단호히 여기거니와 그것으로 만족하기 바란다. 다음으로 콜레주에 10에퀴를, 가난한 외국인을 위한 기금으로 동일 금액을 기증한다. 마찬가지로 샤를 코스탕과 의붓자매 잔에게 10에퀴의 금액을 유증한다. 이어 조카 사무엘과 장에게 각각 40에퀴를, 여조카 안느·쉬잔·도로테에게 각각 30에퀴를 유증한다. 다만 조카 다비드에 관해서는 그가 경박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에 벌로 25에퀴만을 준다.”

칼뱅은 4월 27일에는 콩지스투와, 즉 치리회의 장로들인 제네바 소의회 의원들에게 고별사를 남겼다. 장로들과의 우정에 감사하며 자신의 지나친 열정과 악덕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지해준 것에 감사했다. 칼뱅은 사방에서 공격을 당하고 주변에 100가지의 악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확신해야 하며, 그분의 보좌가 더렵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서로 낙담시키지 말고, 서로 방해하지 말며, 서로 악취를 풍기지 않고 이 공화국을 잘 유지하기를 권면했다.

다음날인 4월 28일에는 제네바목사회의 목회자들에게 고별사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다만 내가 부축 받아 침대에 놓일 때면 정신이 나가고 실신합니다. 또한 짧아진 호흡이 점점 나를 압박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서 모든 정신을 거둬 가져가시고자 하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 거의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설교가 시행되었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람들은 우상들을 찾아내어 불태웠지만, 어떤 개혁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소요상태였습니다. 설교자 중에 프로망이 있었는데 그는 작업복을 입은 채로 강단에 올라갔고, 이어서 그가 수다를 떨던 가게로 돌아갔으며 이런 식으로 두 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나는 저녁 시간에 집 대문 앞에서 50발 내지 60발의 소총사격을 받는 우롱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내 뒤에 개들을 줄을 세우고 내 옷과 다리를 물게 했습니다”라고 했다. 칼뱅은 남겨진 목사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강해지십시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지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베자 선생을 선출하여 내 자리를 대신하게 했습니다. 그의 짐을 덜어주고 그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또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과 비꼬는 말을 던지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칼뱅은 1564년 2월 6일에 마지막 설교를 했고, 5월 27일 저녁 8시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베자가 칼뱅의 장례를 주관했고 칼뱅은 플랭팔래의 공동묘지에 평토장 되었다. 장 칼뱅, 그는 유약한 육체와 개인사의 고통가운데서도 교회 건설의 사명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제네바 교회를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놓았다. 그는 마지막 유언에서 <제네바신앙교육서>를 비롯한 모든 것을 성경으로부터 가져왔다는 고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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