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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9) 제네바 목사들은 평생 공부했다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공부하는 목사, 예외 없었다

▲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1541년 칼뱅이 제네바에서 제2차 사역을 시작하면서 1차 체류(1536~1538)때와 비교하여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바로 제네바목사회(Compagnie des pasteurs de Genéve)가 매주 금요일 오전과 오후에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 회집했다는 것이다. 이 회합의 명칭은 콩그레가시옹(Congrégation)으로 불렸고 제네바 목사들의 자율적인 모임이 아니라 교회 법령에 명시됨으로서 불참할 경우와 성경강해 발제가 불성실할 경우 파면의 사유가 될 정도로 강제적이면서 목사의 의무 중 하나였다. 제네바목사회는 아마도 1541년부터 이 모임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며 회의록의 공식적 기록은 1546년부터 시작되는데 칼뱅의 연대는 물론 베자 연대까지의 목사회 회의록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1541년 교회법령은 이 모임을 명시하면서 그 이유를 성경해석과 교리의 일치를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법령의 의도에 따라 제네바의 목사와 베른의 영지에 있는 제네바 소속 시골교구의 목사들은 예외없이 이 모임에 참석했고 오전에는 순서를 따라 성경을 책별로 각 장을 연구 발제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토론되었다. 목사회 회장(modérateur)인 칼뱅은 사회를 했고 요약한 후 폐회기도를 함으로써 이 모임을 이끌었다. 오전의 성경연구모임에는 제네바의 목사는 물론 제네바아카데미의 교수, 시의원, 의사, 종합구빈원의 집사, 여성, 출판업자, 의사, 변호사, 일반시민등이 참석했고 모든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프랑스어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성경 한 권의 강해가 끝나면 엮어져 ‘칼뱅 주석’으로 출판되었다. 이 모임은 여름에는 오전 6시에 시작했고, 겨울에는 9시에 열렸으며 장소는 칼뱅의 집과 리브의 대학, 생 피에르에서 모였다. 이렇게 오전의 성경연구모임이 끝나면 오후에는 목사들만의 비공개모임으로 회합했는데 오후의 모임은 신학과 교리 문제를 발제하고 토론하였다. 오후 모임은 라틴어로만 진행되었고 일반인의 참석은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이 시간에는 오전의 성경연구 발제가 미흡하거나 불성실할 경우 책망을 받았으며 세 달마다 한번씩 형제애적 견책을 실시함으로써 목사가 품위를 잃거나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서로를 돌아보게 했다.

목사회의 회장으로 이 모임을 이끌었던 칼뱅은 “나는 여기에 있는 경건한 사람들은 그들의 배움에 대해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는데, 이는 두 번의 설교를 놓치는 것 보다 한 번의 성경공부모임에 참석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반 신자와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던 이 성경연구모임에 많은 제네바 시민들이 참석했다. 전체 참석 인원은 약 50여 명 정도가 되었는데 목회자가 18명, 일반 신자가 32명으로 일반시민의 수가 더 많았다.

그렇다면 제네바목사회의 성경연구모임 ‘콩그레가시옹’은 종교개혁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이며 교훈을 주는가?

첫째, 성경연구모임은 제네바교회의 일치된 성경해석과 교리를 유지하는 장치가 되었다. 이 모임을 통해 이단 시비가 가려졌고 불성실하며 비성경적인 성경해석과 이단사상으로 교회의 분열을 시도하려는 자들이 가려졌다. 제네바목사회회의록(RCPG)에 의하면 성경연구모임에 두 명의 의사가 등장하는데 바로 제롬 볼섹과 세르베투스이다. 예정설과 성자의 신성을 부정했던 이 두 사람의 이단 사상 역시 바로 이 성경연구모임을 통해서 그 문제점이 대두되었고 결국 이단으로 정죄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불건전한 교리와 목회 프로그램, 국적불명의 신학이 그 어떤 여과 장치도 없이 빈번이 설교되어지지만 현실적으로는 노회나 총회에 신학사상을 조사하도록 헌의되지 않는 한 규제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제네바목사회의 주간 성경연구 모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매우 구체적인 장치인 셈이다.

둘째, 제네바 목사들은 평생 공부를 했다. 바로 목사들의 연장 교육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제네바의 목사는 목사로 재직하는 동안에 이 의무에서 예외가 되지 않았고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는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도록 목사들의 평생교육이 제도적으로 강제되었다. 목사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본문을 주해하는 순서를 맡아야 했고, 잘못된 주해에 대해서는 기꺼이 충고를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논쟁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게 평화롭게 토론해야 했고, 격한 논쟁이 있을 시는 사회자가 침묵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오전 모임이 성경신학을 연구했다면 오후 모임은 조직신학을 연구했다. 바로 이런 목사연장교육 시스템이 1559년 개교한 제네바 아카데미와 함께 제네바를 가장 성경적인 도시로 만드는 시금석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일부 교단에서는 소속교단 목회자의 연장교육내지는 평생교육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공적인 목사들의 연장 교육이 시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각자도생식으로 각종 세미나와 모임을 통해 지식을 얻거나 목회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교단이 주관하는 공적인 목사연장교육이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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