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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 목사의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5) 성경과 신학 정통한 칼빈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회중 압도하는 하나님의 입

▲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우리는 개혁자 칼뱅이 그 거대한 무지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네바에서 성경적인 교회를 건설할 수 있었는가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시민권조차 변변찮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과도 같이 나그네와 망명자의 신분으로도 종교권력과 맞서 싸우고 수많은 구교의 사제들과 수사들까지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성경과 신학에 정통한 학자였으며, 강단의 거성과도 같은 설교자였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한 가지 재미있는 사건을 소개하자면, 칼뱅의 한 번의 연설로 사제와 수사 200명이 한꺼번에 개혁신앙으로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1536년 로잔(Lausanne)에서는 개혁자들과 가톨릭 신학자들 간의 종교회담이 개최되었다. 회담의 결과에 따라 한 도시가 개혁파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고, 한 도시가 구교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양측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칼뱅은 처음 사흘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던 날은 토론의 주제가 성만찬이었다. 가톨릭 측의 유능한 변론자가 등단하여 연설문을 주의 깊게 읽어 나갔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과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교부들의 교훈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바로 그때 마른 체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이 한 사람이 일어났다. 바로 장 칼뱅이었다. 뜻밖의 인물의 출현에 의아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거룩한 교부들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우리들 중에 당신보다 교부를 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부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된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칼뱅은 즉석에서 가톨릭 측에 의하여 제시된 여러 가지 의견들을 조목조목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반박했다. 칼뱅은 먼저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의 견해를 인용한 후 주석하기 시작하였으며, 크리소스톰의 설교 한 구절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혔다. 그리고 나서는 어거스틴의 저작을 인용하였다. 어거스틴의 시편 98편에 대한 주석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전부 어거스틴의 저작으로부터 인용하였다.

칼뱅은 자신의 정리된 기억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천부적인 기억력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참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연설을 들으면서 양측 모두 숨을 죽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수 한 수 밀리다가 마지막에는 신학적으로 외통수에 몰리고 말았다는 패배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빛이 역력하였다. 더욱이 그것도 자신들이 자랑하는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서 말이었다.

칼뱅은 자리로 돌아와서 장시간의 연설로 말미암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완전한 침묵이 교회당을 가득 메웠다. 이 연설 가운데 일부분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회중조차도, 이 젊은 칼뱅에 의하여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사제들은 서로 경악에 가득 찬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고, 감히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때 프란시스 교단의 한 탁발승이 일어났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으던 유능한 가톨릭의 설교자로서 개혁을 반대하는 연설을 열렬히 하고 다녔던 장 땅디(Jean Tandy)라는 사람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토록 웅변적인 설교로 온 교회당을 뒤흔들어놓았을 이 사람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거슬러 말하고 행하였던 모든 것에 대해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순수한 가르침만을 따르기 위하여 성직의 옷을 벗어 버리겠습니다.”

그날 거기에 모인 양측의 토론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직감적으로 칼뱅의 연설이 수많은 가톨릭 수도사들을 회심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토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로잔은 참된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매춘 소굴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모든 창녀들은 추방당했으며, 종교회담은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다. 매일 매일 보(Vaux) 지역의 성직자들은 개혁을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고, 수개월 내에 80여 명의 사제들과 아직 서약을 하지 않은 120여 명의 수도사들이 개혁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오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고 수많은 질문들 앞에 서 있다. 왜 우리 시대에는 칼뱅과 같이 성경과 신학을 가지고 당당하게 회중을 압도할 하나님의 입이 없는가? 지금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 참된 종교개혁이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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