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장로교회 직제 근간이 되다

▲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1541년 칼뱅은 제네바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교회 법령을 만드는 일을 했다. 1537년의 교회설립시안과 1538년의 타협안보다 한 차원 더 발전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법령이었다. 이후에 1561년에 다시 한 번 법령이 제정되지만 1541년의 법령은 어느 모로 보나 제네바교회의 표준법령으로 손색이 없다. 칼뱅은 파리에서 부친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다. 몽떼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경제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느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1528년 오를레앙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피에르 드 레투알에게서 배우다가 부르주로 옮겨 안드레아 알치아티에게서 법학을 공부했다. 훗날 이런 학문적 배경이 칼뱅이 제네바에서 성경적 교회의 건설자로 쓰임을 받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스트라스부르에서 3년간 머물면서 마르틴 부처와 요하네스 슈투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이 무렵 추방과 결혼, 가난과 흑사병의 위험들 가운데서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칼뱅의 이해도 깊어지고 성숙되었다. 1541년 9월에 제네바에 도착한 칼뱅은 그 해의 대부분을 법령을 제정하는데 보냈다. 마침내 법령은 11월 20일 시의회를 통과하였다.

표준법령(Les Ordonnances Ecclésiastiques de 1541)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사중직제이다. 사중직제라는 것은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를 말하는 것으로 훗날 장로교회 직제의 근간이 되었다. 특별히 목사들에게는 매주 금요일 목사회라는 이름으로 회집하도록 규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성경의 해석과 교리적 일치를 위해서라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목회자의 징계와 윤리 규정이 구체적으로 34개의 항목으로 적시되었다.

목사의 직분은 성경이 감독, 장로, 목사로 부르는 직분으로 가르침과 권고, 훈계, 책망의 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례하며 장로와 함께 형제 간의 규율을 실행하는 것으로 누구도 소명없이 이 직무를 맡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아울러 법령은 목사의 시험과 소속, 임직과 사역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고도로 높은 윤리수준이 요구되었던 목사들은 세 달에 한 번 그들 가운데 범죄의 가능성이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바로 잡는 형제애적 견책의 날을 가지도록 하였다. 제네바교구의 목사는 5명으로 3명의 목사후보자와 함께 사역하였고, 생 피에르, 라 마들렌, 생 제르베의 세 교회에서 순번대로 설교하였다.

교사의 직분은 건전한 교리로 신자를 가르쳐서 복음의 순수성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박사를 의미했다. 이들을 위해서는 대학이 설립되어야 함이 법령에 명시되었는데 1559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대학을 설립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교회의 복음 뿐만 아니라 시민 정부를 위해서도 대학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제네바 아카데미가 단순한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가 아니라 시민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학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와 특별히 여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별도로 필요함을 적시하고 있다.

세번째 직분은 장로로서 시 정부가 각 의회에서 선출하여 치리회로 파송하였다. 이들은 나무랄데가 없고, 의혹의 여지가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려 깊고, 선한 삶을 사는 의원이어야 했다. 200인 의회에서 6인, 60인 의회에서 4인, 25인 의회에서 2명이 선출되었다. 이렇게 목사 12명과 장로12명으로 치리회가 구성되었다.

네번째 직분은 집사로서 제네바는 4명의 집사가 임명되었다. 이들은 종합구빈원에서 일했고, 오늘날의 전문적인 복지사와 같은 성격을 띄었다. 종합구빈원은 과부, 고아, 극빈자를 도왔으며 병원에는 내과, 외과의사가 일했고, 특별히 전염병을 막기 위해 격리병동을 운영하였다. 또한 구걸을 방지하게 위한 특별 공무원을 임명했다. 종합구빈원은 시 정부와 목사회의 통제를 받았으며 세 달마다 정기적인 감사를 받았다.

1541년 표준법령은 그 첫 머리에 사중직제를 배치하였다. <교회에서의 4가지 질서>로 제목이 주어지고 나서 “먼저 우리 주께서 그의 교회 통치를 위해 세우신 공적인 직분 네 개가 있다. 첫째로는 목사, 둘째로는 교사, 셋째로는 장로, 넷째로는 집사다. 만약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고 유지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이 통치 형태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령은 이후 1646년 웨스트민스터총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의 향존직으로 정리되었고, 1917년 9월 1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된 제6회 총회에서 본 교단의 정치로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향존직’은 종신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할 직분’으로 계급이나, 신분, 서열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직분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계질서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교회의 봉사(디아코니아)를 위해 세우신 직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직분은 교회의 직분이 권력이나 신분, 특권으로 이해된다면 이것은 종교개혁 이전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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