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혁 목사(예본교회‧총신대학교목회신학전문대학원교수)

공평한 헌금과 세금으로 교회와 사회공동체 돌봅시다

안영혁 목사(예본교회‧총신대학교목회신학전문대학원교수)
안영혁 목사(예본교회‧총신대학교목회신학전문대학원교수)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잠언 1~9장은 ‘지혜 개론’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도 그런 지혜 개론의 전형적인 부분입니다.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지혜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중에 한 마디 던져진 것이 9절 말씀인데, 기적적인 경제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21세기에 와서야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성경은 당연한 진리를 말씀했는데, 사람들이 그동안 유의하지 않았던 것이죠. 오늘날도 이 말씀에 사람들은 별로 유의하지 않습니다만, 우연히 오늘 본문의 중대한 의미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9절에 무슨 말이 있습니까?

헌금 이야기가 경제이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먼저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에는 세금을 내고, 교회에는 헌금을 드립니다. 양 쪽이 다 경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기에 세금을 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헌금을 드립니다.

신약 성경은 헌금을 새삼 크게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강조한 편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십일조를 꼭 하라는 말을 하지도 않지만, 교회는 구약의 질서를 따라 계속 십일조를 해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일단 헌금 자체에 대해서는 신자들에게 자유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헌금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헌금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거룩한 교회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은 헌금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원칙을 말씀합니다. 9절에는 헌금의 원천에 대해 두 개의 개념이 나옵니다. 하나는 ‘재물’이라는 말이고, 하나는 ‘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입니다. 이 두 개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재물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주로 부동산과 금융자산입니다.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값도 올라갑니다. 본문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헌금의 한 원천입니다.

또 하나의 말, 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는 좀 다릅니다. ‘소산’이란 생산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재물이 그냥 벌어들인 것이 아니고, 땀 흘리고 노력해서 올린 수확입니다. 그래서 이 소산이란 말은 요즘으로 치면 노동소득입니다. 이것도 역시도 헌금의 한 원천입니다.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 다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자본소득이 최근 몇 년간 경제학에서 핫이슈였습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피케티의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①세상을 경제적으로 공정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은 세금을 내는 방법뿐이다. ②일단 노동소득은 원천징수라고 해서 철저히 세금을 낸다. ③그런데 소득은 있는데 세금을 내지 않거나 너무 적게 내는 소득원들이 있다. ④즉 자본소득이다. 이 자본소득에 대한 재산세는 온 세계가 대체로 공정하게 징세하지 않고 있다. ⑤그래서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재물이 없는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해도 여전히 가난하다. ⑥그래서 온 세계가 다 이 재산세를 철저히 징수해야 하고, 재산이 많을수록 비율을 높이는 파격적인 누진 재산세를 징수해야 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 세계는 점점 경제적 불평등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21세기 세계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 보려고 할 때는 가장 먼저 재산소득과 노동소득을 구별하는 것이 이슈가 됩니다. 그걸 깨닫고 성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재산소득은 9절에서 말씀하는 ‘재물’이고요. 노동소득은 역시 9절에서 말씀하는 ‘소산’입니다. 이 둘을 구별하고, 각각에 대하여 헌금해야 한다는 것이 9절의 뜻입니다. 말씀의 뜻은 하나도 어렵지 않은데, 그 뜻이 선명하게 밝혀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토마 피케티의 말로 분명해 졌는데, 성경은 무려 3000년 전에 이런 경제적 교훈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으로 섬겨라. 그 양자에 대하여 헌금을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헌금을 할 때 그런 분간이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재물이 있기에 절로 생기는 소득이 있고, 땀 흘려서 생기는 소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헌금도 하라’고 구약 성경은 매우 정확히 말씀했습니다. 잠언이 지혜의 말씀인데, 경제와 관련한 이 9절 말씀은 적어도 2500년은 앞지른 교훈입니다. 물론 인간 역사 내내 짐작은 했습니다만 토마 피케티가 비로소 분명히 그 문제를 밝혔는데, 성경은 소득에 대해서 이미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죠. 경제사상적 지성사로 본다면 기적입니다.

이 헌금 이야기는 단지 하나님께 많이 드리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 어디서 오는 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어떤 재물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노동소득이 있습니까? 저는 1년에 몇 십 만원 정도의 재산세를 냅니다. 국가가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산세를 내는 사람들은 거기 해당하는 헌금도 하는 겁니다. 국가는 경제학 발전에 힘입어서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더 받는데, 그렇다면 신자들은 이런 자본소득에 대한 헌금도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피케티는 자본소득이 크면 클수록 비율을 높여서 세금을 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헌금도 그래야 합니다. 내가 부자라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은 헌금을 하는 것이 원래 맞습니다. 저는 교회가 그것으로 구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세상이 점점 정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돌볼 힘을 얻는 것이죠.

현대에 와서 이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자본소득이라고 하면 거의 부동산 소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주식이 중요해졌습니다. 요즘 큰 부자들은 부동산 부자보다는 주식 부자들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세금을 내고는 있습니다. 더 내야 한다는 사회적인 문제는 경제학에 맡기기로 하고, 거기에 대하여 일단 하나님께 헌금도 하는 것이 맞습니다. 누진적으로 하면 더 좋습니다. 신약시대는 헌금을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헌금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잘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미 재산으로부터 얻는 소득을 좋아했거나, 그것이 더 안정되고 크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옛날부터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떵떵거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간혹 패가망신하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재물이 가진 위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이유로 감사헌금을 하기도 하는데, 더욱 뚜렷이 해서 재물에 대한 헌금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신 말씀은 시시콜콜 헌금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냥 너에게 재물의 소득과 소산의 소득이 있다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므로 감사드리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씀입니다. 잠언의 지혜 중 하나인 것이죠.

우리는 헌금을 자유로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잘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이 헌금으로는 구제를 하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재산의 여유를 감사해서 하는 재산이니, 재산이 없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성경의 돌봄 원칙에 맞겠다는 말입니다.

헌금은 우리에게 경제에 대한 바른 의식을 줍니다. 오늘 잠언 말씀은 우리의 경제생활과 헌금생활을 함께 보여줍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함께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도 자본소득에 대한 재산세를 별로 챙기지 않았지만, 경제학자들은 그 세금을 잘 내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특히 재물이 많은 사람들은 더 높은 비율의 재산세를 내야 합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그에 대한 헌금을 하는 것이며, 큰 재물을 가진 사람은 더 높은 비율의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그 헌금으로 교회는 교회공동체와 함께 사회공동체를 돌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도 쉴 땅도 없이 떠도는 난민이 세계적으로 7000만명에 육박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원리로 난민을 돌볼 수 있다면, 실존적으로 훌륭한 교회가 되는 겁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난민기구를 세웠습니다. 부자들이 밉습니까? 아니면 헌금 더 할 것이 걱정되십니까? 이 정밀한 세금과 헌금의 기본을 성경의 지혜 말씀인 잠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이런 경제와 봉헌의 원리를 잠언이 지혜로서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사적으로는 정말 기적적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말씀이 중요한 경제 원칙을 단 한 절로 촌철살인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본문 전체에서는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제 원칙을 밝히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어서, 헌금도 세금도 잘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정직하게 맛보는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편린이 될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가 되고, 또 지혜자가 되어서 공평한 신자로서 헌금도 세금도 공평하게 하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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