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오직 하나님 위한 ‘인생 2막’ 믿음의 길 열어갑시다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 14:11~12)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1480년 포르투갈에서 출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30세에 군에 입대하여 전쟁에 참여했다가 평생 다리를 절게 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상심한 그는 국적을 버리고 스페인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인도 원정대의 대장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에게 인생 2막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야심차게 출발한 원정이었지만 항해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각종 질병과 식량 부족으로 힘든 여정이 계속되었습니다. 1521년 필리핀으로 향하던 원정대는 막탄 섬의 원주민들과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그곳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배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거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배는 인류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배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마젤란’이 바로 그 배의 선장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일주의 대항해 시대의 역사를 열었고 비록 항해 도중 사망했지만 ‘대항해가’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바다를 그의 이름을 따서 ‘마젤란해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의 주변에서는 ‘제2의 인생’ 또는 ‘인생 2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생명과학과 재생의학, 또는 줄기세포의 발달로 100세를 내다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생 후반전을 염두에 두게 되었고, 은퇴 후에 펼쳐질 적어도 30년 이상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겠는가를 고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인생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다양하고 파란만장한 법입니다. 연극은 1막, 2막, 3막 등 마지막까지를 지켜봐야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실패한 것 같으나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고, 소시 적에는 화려하고 빛이 찬란한 듯 보였지만 말년에 이르러 그 빛이 다 꺼져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85세 노인인 갈렙은 별 쓸모도 없는 산악지대인 헤브론 땅을 정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달라고 옛날 정탐 동료였던 여호수아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12절) 이 산지가 어떤 곳입니까?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성읍들은 견고한 곳이었고(14절), 그곳의 사람들은 아낙 자손들 중에서도 가장 장대하고 힘이 센 기럇 아르바 사람들이었습니다.(15절)

이곳 헤브론은 다윗이 훗날 수도로 도읍지를 잠시 정한 적이 있었지만, 거친 산악지대였고 견고한 성읍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지역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땅도 별로 기름지거나 욕심낼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좋은 땅을 원했다면 요단강 유역이나 갈릴리 해변 주위 땅을 달라고 요청했어야 할 겁니다. 갈렙은 일반 상식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이미 85세로, 이전에 정탐꾼으로 가데스바네아를 탐지할 당시 혈기 왕성했던 40세 때를 훨씬 지나 45년이나 흘렀습니다. 누구나 그를 바라볼 때면 이제 조용히 삶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하기를 기대했고, 이제는 백성의 원로로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늘 밑에서 낮잠이나 즐기고 덕담을 나누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85세의 노인 갈렙은 말하기를, “내 나이 85세로되 45년 전에 모세가 나를 정탐꾼으로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다” (14:11)고 자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내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며 가나안 땅의 목전을 배회하던 때를 인생 1막이라고 한다면, 헤브론의 산지를 내게 달라며 의욕적으로 도전하는 가나안 정복은 인생 2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갈렙은 결코 인생 2막을 편히 그늘 밑에 앉아 쉬는 쪽으로 택하지 않고, 거칠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산지개척으로 택하였던 것입니다. 이미 85세의 존경받는 원로 지도자로 굳이 목숨을 건 도전을 하지 않아도 될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 2막을 위해 과감히 도전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신앙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넓은 길을 가기보다 좁은 길을 택한 것이었고, 편한 길을 가기보다 가시밭길을 원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조각가 로댕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세 번이나 떨어졌다고 합니다. 로댕의 조각에 대한 열정은 넘쳤지만 문제는 가난이 그의 미래를 막았다고 봅니다. 그의 아버지마저 실직하게 되자 로댕은 가족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미술공부를 포기하고 은 세공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수도사의 권유로 다시 조각을 시작하며 작품을 출품해 보았지만 너무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며 여행을 하던 중 이탈리아에서 조각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행이 로뎅의 인생 2막의 눈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청동시대’를 발표했는데 이때가 39세였고, 이후부터 로댕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며 찬란한 인생 2막 후반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도전 없이는 인생 2막은 열리지 않습니다. 인생 2막이 그리 쉽게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175세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습니다.(창 1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하는 음성을 듣고 인생 2막을 출발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무명의 사람 아브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나선 75세 이후의 100년은 분명 인생 2막의 삶이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인생 1막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모두가 인생 2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이것을 믿음의 삶이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생 2막을 열었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생애를 3등분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는데 40년은 애굽의 왕자로 살았고, 40년은 십보라의 남편이요, 양치기 목동으로 살았으며,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인생을 1막과 2막으로 나눈다면 그 시점은 호렙산의 가시떨기 나무에서의 부르심일 것입니다.

애굽의 왕자로 40년과 십보라의 남편으로 살았던 40년은 화려함과 초라함이 어우러진 여정이 인생 1막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호렙산 아래 한 가시떨기 나무의 타는 듯한 불꽃 속에서 들려온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모세의 인생 2막을 여는 종소리와 같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였다면, 앞으로의 삶은 백성과 하나님을 위한 삶뿐이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인생 2막은 오직 하나님을 위한 길이었고, 그의 인생 2막의 사명이 끝나는 날 그는 눈도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후회 없는 인생 2막을 열기위해 기도하고 남은 에너지를 아낌없이, 남김없이 주를 위해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인생 1막과 2막이 있었습니다. 2막을 여는 사건이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의 빛을 보고 쓰러졌던 순간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인생 1막일 때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그는 인생 2막에서는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인생 1막에서는 출세와 성공과 정상을 위해 달려갔다면, 인생 2막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2막을 이야기할 때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인생 2막에 집중하기 위해서 모든 자랑하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결혼도 포기한 채 오직 예수의 이름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출발점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인생 1막을 뛰어넘는 인생 2막이 있었습니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한 것이 그의 인생 2막이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곳으로 떠난 것이 인생 2막이었습니다.

호렙산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을 출애굽 시킨 모세의 후반전이 인생 2막이었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가에 쓰러져 하늘에서 들려온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 쓰임받기 위해 달려간 사도 바울의 발걸음이 인생 2막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 2막은 어떤 모습이길 원하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찬란하게 펼쳐질 우리의 인생 2막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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