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지 4년이 넘었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희생되었으며, 우리들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다.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되고, 또한 음식을 필요한 양만큼 덜어서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뉴 노멀의 노멀이 된 것이다. 중세의 흑사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흑사병(페스트) 사태는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의 3년간 최고조에 달하였는데, 이 흑사병으로 인하여 유럽의 30%의 인구가 희생되고 중세를 지탱하던 질서도 무너지게 되었다. 그리고 빠르게 종교개혁 시대가 도래하였다.그런데 이 흑사
무료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웬만한 OTT를 능가하는 다양한 드라마와 최근 영화들을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물론 불법이다. 해외에 주소를 두고 운영하는 이러한 불법사이트들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도박사이트 배너가 달려 있다. 청소년들을 불법 도박의 세계로 이끌기 위한 미끼다.지난해 정부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생 가운데 4.78%에 해당하는 19만562명이 도박 중독이라고 한다. 충격적인 수치다. 도박 사이트는 가입하기도 쉽다. 청소년이라도 이름과 전화번호 등만 적으면 된다. 모든 도박이 그렇듯 처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8~9)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는 수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시대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입니다.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사실일까요? 그 예언은 모두 성취됐을까요? 그리고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미래에 확실히 성취될까요?‘성취’란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됐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자신과 관련
아빠 아버지께 순복의 기도를 올립시다“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신학을 ‘인식론적 신학’과 ‘하나님의 주권적 신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이해가 쉽고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오성을 초월하는 문제가 생기면 해석이 어려워집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나?’ 등의 문제를 이성과 경험의 범주 안에서 해석하는
나는 총신신학대학원 3년을 다니면서 장애학생 장학금과 외부 사랑선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거의 매 학기 받았다. 남들처럼 교육전도사 사역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신학생에게는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장학금이었다. 신대원 생활을 하는 동안 대형교회에서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혼자 조용히 기도한 적이 있다. “하나님 저도 장애인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이 기도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사이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신대원의 장애인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매년 1월 셋째 주일은 ‘세례교인헌금 실시의 날’이다. 1998년 제83회 총회에서 총신주일 등 여러 명목의 특별 주일을 폐지하고, 그것을 통해 드려지던 헌금을 ‘세례교인의무금’으로 단일화하했다. 그 취지는 헌금에 목적을 둔 각종 특별 주일이 총회 산하 지교회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회의 모든 사역의 효율성을 위해 그렇게 바꾼 것이었다.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가 있듯이 총회 소속 교인들 역시 교단과 거룩한 사업을 위해 의무적으로 헌금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한 공감을 할 수 있다. 이 헌금이 없이는 총회 운영이나 선
난 18층 아파트의 17층에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고 내릴 때마다 엘리베이터에 머무는 시간은 불과 몇십 초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느끼지만, 때로는 짧은 그 시간의 지루함과 답답함으로 힘들 때가 있다. 대개 같은 통로에 사는 이웃들과 마주할 때다. 17층이라 피할 수 없는 이웃이 많다. 그들을 만나면 늘 웃으며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좁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웃으면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이웃을 만나면 그 시간이 짧
한국교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바로 매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예배하던 부활절연합예배를 올해는 함께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원래 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가 한마음으로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해방 직후인 1947년 남산 조선신궁터에 모여 예배하며 예수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신앙의 힘으로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게 되기를 기원했다. 조선신궁터는 일제가 한국인과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한 일본 신도의 총본산이었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와 불신앙과 수치의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부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겼다.부활절연합예배는 6·25전쟁
헌신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 14:3)오늘 본문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1~2절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꾀합니다. 3~9절에 등장하는 한 여인은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에게 붓습니다. 10~11절에는 제자 가룟 유다가 나오는데 예수님을 팔려고 거래하면서 배신을 합니다. 마가는 샌드위치 구조를 좋아하는데 한 여인의 헌신을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가 발생한 지 어언 13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원자력의 본질적인 문제는 방사선이나 방사능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원자핵을 불안정하게 만들면 에너지가 나오는데 그 결과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배출된다. 우리는 핵분열 때 생기는 생성물을 죽음의 재라고 부르는데 죽음을 불러올 만큼 생명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대량으로 생성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핵반응의 본질이며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핵 에너지 이용을 위한 원자력 개발은 그 후 원자력
그루터기교회는 오후 3시에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오후 예배냐, 저녁 예배냐 하고 다시 묻곤 한다. 아니다, 오후 3시에 드리는 예배가 주일 대예배다. 중증장애인들은 혼자서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외출할 수가 없다. 활동지원사가 집에 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을 받아야 우리가 휠체어에 앉을 수 있고 외출할 수가 있다. 개인 차이는 있겠으나 보통 외출을 준비하는데 1시간 넘게 걸린다. 활동지원사는 정부에서 급여를 받고 중증장애인의 모든 활동을 돕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첫 예배로 오후 3시에 예배를 드렸다.예배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변증’은 헬라어 ‘아폴로기아’에서 유래한 말로서, ‘방어’ 혹은 ‘변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안셀무스는 에서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변증했습니다.“①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②가장 위대하다는 것은 어떠한 부족함도 있을 수 없다. ③만일 어떤 것이 사람의 정신에만 존재한다면, 이는 존재가 부족함을 가진 것이다. ④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정신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안셀무스는
부활절을 앞두고 성도의 부활과 부활 후에 있을 성도의 심판에 관해 심각하게 잘못 번역된 성경 구절을 살펴보고자 한다.현재 성경번역본은 부활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 돼 있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라고 기록돼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은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이다. 그들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다시 살린 적이 있다. 그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이를 부활했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건 개역개정성경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한글과 영어 성경도 그렇
권위와 권력은 모두 다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권위는 서서히 선한 영향력으로 번져가고, 권력은 급속도로 악한 영향력으로 퍼져간다. 권위가 없는 권력은 자신들의 이익과 유익,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고 그 음모를 실행하면서 산다. 음모가 난무하는 사회, 그 단체는 늘 혼란과 격변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음모는 사회와 단체를 피폐하게 하고 병들게 한다.제109회 총회의 장로 부총회장 선거는 음모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총회 현장에서 덕스럽지는 않았지만 덕스럽게 덮었는데, 다시 총회 임원회에서 총회개혁을 위해 재조사를
한국교회, 청년이 떠나고 있다. 아니, 말라가고 있는 현실 아닌가.청년들은 군에 오기 전 무종교가 73.2%이고 기독교는 15%에 불과해 미전도종족 수준이다. 오죽하면 군목들의 경쟁자는 무종교, 탈종교화라 할까. 다행히 군에 오면 신자율이 달라진다. 종교활동하는 장병이 50%가 되고, 그 중에서도 기독교가 60~70%를 차지함은 한국교회의 미래가 아직은 희망이 있다.다만 군선교 현장이 크게 달라진 관계로 MZ장병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군선교 미래전략을 제안해본다.첫째, 문화적인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각 군 훈련소는 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