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관순’ 열사는 여성이다. 그렇듯 여성을 빼고는 3·1운동을 논할 수 없다. 1902년생, 열일곱의 어린 여학생이 3·1만세운동에 참여했고, 한 달 후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일제에 붙잡힌 그녀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이듬해 순국했다.이 역사적 사건은 여성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한 첫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남성을 내조하던 그들이, 3·1운동에서는 주도적이었다. 서울과 개성, 인천, 부산 등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여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국가기록원의 에
나가사키라고 하면 짬뽕을 떠올리지만 ‘카스텔라’는 잘 알지 못한다.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에 전해준 카스텔라가 일본의 유명상품이 됐다. 나가사키 카스텔라의 역사는 16세기 서양 상인들이 나가사키 항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상인과 함께 발을 디딘 포르투갈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에 의해 카스텔라가 전해진 것이다. 카스텔라를 설탕물에 튀긴 카스도스는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해서 긴 시간 항해해야 했던 선원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 카스도스 역시 규슈지역의 특산물이 됐다. 카스텔라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카스티야(Castilla) 지역명에서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신32:4) 여러분, 왜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좋아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불의에 항거하고, 저항하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도덕적 존재’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사람에게 도덕은 태생적입니다. 만약 사회현상으로서 도덕이 생겨난 것이라면, 그 도덕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의 개념’이라든가 ‘정의의 개념’은 바뀌지 않습니다.
봄철이 오면서 학령기 자녀들은 새학기를 맞아 새로운 환경에 대한 꿈에 젖어 있다. 그러나 낯선 교실과 새로운 친구 등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새학기 증후군을 보이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새학기에 학교에 흥미를 느끼고 심리적 안정가운데 정상적인 관계를 맺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아이가 학교는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의 소재를 재빨리 파악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사항을 체크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학교는 참여하는 곳이기
전북기독단체 ‘지역 홀대 말라’ 성명생명평화정의전북기독행동 전북기독교교회협의회 전북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북예수살기 전북인권선교협의회 등 5개 기독단체들은 2월 27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인들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에서 최근 정부에서 새만금 개발 예산 6000억 원을 삭감한 데 이어, 총선을 앞두고 전북지역 국회의원 의석수를 줄이기로 한 정책 등에 반발했다.서천군성시화운동 공명선거캠페인서천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정진모 목사)가 2월 20일 서천문예의전당에서 공명선거캠페인을
하나님을 바로 아는 기쁨을 누리시나요?“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계기로 놀라운 세계관의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긴 것들을 모두 분토처럼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합니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머리로서
나는 평일에 장애인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이중직 목사이다. 우리 장애인 단체에서 항상 주장하는 것이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장애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거나 불쌍히 바라볼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이 받는 모든 복지 서비스는 장애인이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다.벌써 30년 넘은 것 같은데, 소위 대형교회에서 장애인 대상으로 한 부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 우후죽순 격으로 중형교회까지 장애인 부서가 많이 생겼다. 장애인 사역에 경험이 많은 사역자를 특별히 배치하고 그들만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인해 나라의 주권만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경제, 사회, 문화, 인간의 존엄성, 신체 및 언론과 집회의 자유, 40%의 아름다운 국토와 황금물결의 들녘 등 거의 모든 것을 침탈당했다. 심지어 일제는 한민족의 정신을 박탈하고, ‘포교규칙’ 등으로 기독교를 박해했다. 눈물로 얼룩진 절망의 시대, 한국교회는 십자가 복음으로 소망을 제시했으며, 눈물을 훔치며 살아가던 동족을 가슴에 안고 고난의 언덕을 함께 넘어갔다. 말씀에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교파가 연합해 구국기도회를 했으며, 교회 절기에 십자
유엔총회는 2005년부터 19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해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50차 유엔총회에서도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내용의 북한인권 결의안이 표결 없이 만장일치(consensus, 전원 동의)로 채택됐다.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결의를 표결을 거치지 않고 만장일치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의장의 제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회원국이 없는 경우 합의된 것으로 간주하는 의사결정 방법이다.이 결의안 중에서 다뤄진 주요 사안 중의 하나는 작년 10월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사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이 2년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이 전쟁의 인명피해를 정확히 집계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케네디스쿨’이라 불리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공공정책대학원이 그것을 산출했다. 케네디스쿨에 따르면 전사자를 비롯한 중상자 등 러시아군의 피해는 20만명, 우크라이나는 1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민간인 사망자도 양측을 합하면 1만명이 훌쩍 넘는다. 그런데 향후 전쟁 피해 복구에 들어갈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규모다. 유엔 제네바 사무소 등의 공동 집계에 의하면 650조원으로, 우크라이나 GDP의 3년
지난 주간, 우리 교회 교역자들과 일본에서 수련회를 했다. ‘나라현’에 위치한 선교사를 통해 세운 교회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함께 자유로운 대화를 하는 중에 아내가 “당신은 나의 로또”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다 아는 이 조크를 알지 못하는 선교사는 “사모님 참 스윗하다”고 반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다시 “당신은 나와 평생 안 맞아”라고 응수했다. 그제야 ‘로또’의 뜻을 알고 폭소했다. 그렇다. 우리는 참 안 맞는 사람이다. 서로 다른 사람인데 맞는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잘 사는 이유는 서로
비가 계속되더니 눈으로 바뀌고 대설주의보까지 내렸다. 하지만 그 순백의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봄이 가까이 와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겨울을 저 멀리 물러간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봄의 문턱에서 한국교회와 교단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리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어디 하나 평안한 곳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누가 총회 임원이 되고, 상비부장이 될 것인가에만 집중돼 있다. 총회를 위해 섬길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의 과정은 볼썽사납다. 변호사를 대동한 법리 논쟁도 있다 하니 한
오정호 총회장이 2월 15일 총신대신대원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에게 신실한 목회자가 되어달라고 간절히 당부했다. 오 목사는 ‘총신이여 일어나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먼저 학내 사태와 코로나팬데믹 상황이 종결된 새로운 상황에서 졸업을 맞는 이들을 축하했다.이어 신실한 목회자가 되어달라면서 신실한 목회자가 되려면 오랫동안 치열하게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총회장은 신실한 목회자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손과 발 역할을 하며 교회를 깨우라고 당부했다.교회를 깨우려면 혼자 힘으로 어려울 수 있기에 신실한 동역자와 원팀을
2015년 3월에 첫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개척한 지 3년쯤 됐을 때, 슬럼프가 찾아왔다.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매주 설교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교회를 이끌고 가는 것이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생계를 위해 평일에는 장애인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주말에 쉬지 못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주일에는 주보 제작, 자리 정돈 등 예배를 섬기는 일이 버겁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몸이 힘들다 보니 점점 교회 개척에 대한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장 난 회의에 빠졌다. 이렇게 혼자 아등바등하며 교회를 이끌고 나가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하십시오“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올림픽을 통해 비록 내가 경기자는 아니지만 금메달의 영광이 어떤 건가를 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마치 내가 금메달을 딴 것같이 기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말 많고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들이 익숙했던 경기자의 모습을 하나의 경주하는 것에 비유해 교훈합니다. 당시 고린도는 올림픽이 열렸던 아테네와 인접해 있었고 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