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충 목사 (양우리교회)
김학충 목사 (양우리교회)

부활절을 앞두고 성도의 부활과 부활 후에 있을 성도의 심판에 관해 심각하게 잘못 번역된 성경 구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성경번역본은 부활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 돼 있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라고 기록돼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은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이다. 그들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다시 살린 적이 있다. 그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이를 부활했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건 개역개정성경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한글과 영어 성경도 그렇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부활한 것은 아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마 27:52~53)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온 자도 부활했다고 하지 않고, “몸이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다.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다.(고전 15:20) 그러므로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이를 부활로 받았다고 번역한 것은 신학적으로 무척 잘못된 번역이다.

성도의 심판에 관한 번역상의 오류도 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 구절의 ‘선악’이 모든 한글 성경에 선과 악으로 번역됐다. 또 모든 영어 성경도 good or bad 또는 good or evil로 번역했다. 선악에서 악이 ‘bad’라고 할 때 성도가 죽은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나쁜 짓을 한대로 받는다면 그것은 상급이 아니라 벌이다. 심각한 이단적인 번역이다. 천주교에서 연옥 교리의 근거로 삼을만한 번역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길 주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셨다.(요 5:24) 그런데 이런 번역대로라면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과 다르게 가르치신 것이 된다. 성도가 죽은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한 일은 상을 받고, 악한 짓을 한 것에 대해서도 보응이 따른다고 가르친 꼴이 된다. 주님의 말씀과 바울 사도의 말씀이 상충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악으로 번역된 단어는 ‘fau’lo’(화울로스)다. 이 단어는 악이나 나쁜 이란 뜻과 함께 ‘열등한, 가치 없는, 하잘것없는’ 이란 뜻도 있다. 그러므로 ‘악’ 대신에 ‘가치 없는, 하잘것없는’이란 뜻을 선택해 복음에 맞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번역해야 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성도는 여섯 가지 재료로 집을 짓는다고 하셨다. 금·은·보석과 나무·풀·짚이다. 여기서 나무나 풀이나 짚은 나쁜 것이나 악한 것도 아니다. 하잘 것없는 재료다. 성도의 공적을 불로 시험하실 것이라고 하셨으니(고전 3:13) 무가치하고 무성의하게 행한 일은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보상받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이른바 상급 심판에 대한 말씀으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각 몸으로 잘한 일과 무가치하게 한 일을 따라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교리의 통일성이 있고 주님의 말씀과 상충하지 않는 번역이 된다.

※ 본 기고는 신문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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