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경험에 갇힌 믿음 딛고 하나님 영광 체험하는 전파자 됩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2022년 새해를 맞이하여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소망이 끊긴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시는 은총으로 임하신 것처럼, 성도님들의 마음과 삶에도 역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있어도 그 믿음의 정도가 매우 제한적인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분명히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한계 속에서 파악한 제한된 범위 내의 믿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도착이 늦어 오빠 나사로가 죽은 이후 오신 예수님께 야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만약 주님께서 좀 더 일찍만 오셨더라면 내 오빠가 죽지 아니하였을 텐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요 11:32)

마리아는 주님께서 죽어가는 병자도 살리시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죽은 자조차도 살리실 분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믿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의 세계가 주님의 모든 면을 파악한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치에서 비롯된 예측에 한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실 줄 믿습니다”라는 믿음까지는 나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본문 요한복음 11장 27절에서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시는 주님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는 신앙고백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체험하지 못했던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합니다.(39절) 죽음을 능가하고 이기시는 주님의 생명의 권세를 미처 알지 못하는 제한된 믿음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알고 기대하는 범위 내에서만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 이상이십니다. 내가 상상도 못한 범위 밖, 그 이상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내가 주님의 능력을 내 능력의 범위로 한정시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주님은 내가 생각했던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이 세상의 운행자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능력은 내 체험의 범위가 아니라 주님의 무한한 은혜의 범위까지입니다. 어떤 난관과 장벽을 돌파해야할 순간, 내 예측과 예상을 넘어서서 주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함으로 우리 역사의 범주가 한 단계씩 확장되어 갑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내 생각의 범주가 아닌 주님의 은혜와 믿음의 범주에서 우리 세계가 넓어져 가는 것을 주님의 능력으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역사하시기 전에는 우리가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해도 이루시려는 신호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39절) 사람들이 의아해하지요. 마르다는 즉각 “주님! 왜 그러세요. 오빠는 이미 죽어서 나흘이나 됐어요. 시체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결국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주님의 역사 앞에는 이러한 주님의 명하심이 있으셨고, 그것을 면밀히 살펴보면 주님의 의도하심을 알려주십니다. 왜 인간은 주님의 뜻을 모를까요? 인간의 한계와 능력은 주님의 무한하심과 능력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내 능력의 범주가 아닌, 주님의 범주에서 바라보고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님이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와 기대를 주실 때,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생각이 아니고 주님의 의도인 것을 봅니다. 그것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주님의 신호임을 느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향해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명하심이 있을 때, 우리는 현상과 상황만 보지 말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합니다. 우리는 내 능력 너머의 믿음으로 무엇을 이룹니다. 결국 그 믿음이 능력이 되고, 그 능력이 믿음이 되어서 우리 삶의 실재를 이룹니다.

우리 하나님은 명하여 살리시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심으로 믿는 자에게 영광을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시체처럼 냄새 나고,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그 어떤 상태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명하시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듯 부활할 것입니다.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쓸 것입니다. 주님이 무덤에서 나오라 하시는데, 우리가 무덤에 있으려고 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무덤 안의 냄새나는 시체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일시에 바뀌어 주님의 은혜의 역사의 물결을 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우리 한국교회도, 이 민족도 주님의 명하심에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될 것입니다.

또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족을 동인 베와 얼굴을 싼 수건을 풀어놓아 다니게 하셨습니다.(44절)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끈과 고리, 삶의 악순환을 풀지 못하고 끊어내지 못해 고통스러운 삶의 모든 아픔을 주님께서는 다 풀어주시고 끊어주시고 새로운 은혜의 역사를 주십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우리 인생들의 모든 악한 죄악의 고리, 슬픔으로 묶인 끈, 아픔의 끈으로 묶인 인생의 고통과 마음의 옥죄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으로 끊어지고 풀려질지어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실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본문 40절의 말씀은 지금 이 시간에도 유효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요한복음 12장 11절을 보면, 이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이 민족과 모든 교회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확신하고 기도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또 주님을 믿는 새로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진실과 용기, 확신과 자신감을 가져야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언어적 선포가 아닙니다. 삶의 실재 속에 얼어나는 사실적 선포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관념 속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삶의 현장에서 능력과 권세를 목격하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삶의 여러 지난한 구간을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삶의 저편을 지금 눈앞의 가장 확연한 현실로 사실화시켜 우리 삶의 현재를 넘는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야합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람개비를 입에 물고 달려서 바람을 일으켜 그 바람개비를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막 2:4)의 은혜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 어떤 불가능의 상황에서도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려 결국 주님을 만나게 하고, 치유의 능력을 입게 하는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성도와 교회로 존재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존재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룸이 우리의 양식이고 목적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의지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적 감동과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제 이 민족과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부르십니다. 새 힘과 새 능력과 새 생명과 새 역사를 명하시고 이뤄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눈에 보이는 상황대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말씀 속에서 기도한대로 완결될 것입니다. 우리를 묶었던 자신 없음, 소심함, 열등감, 패배감, 두려움, 미움, 시기, 질투 등 이러한 모든 것을 풀어버리고 자유롭게 되어야합니다. 자신 있고, 용기 있고, 지혜 있고, 순결하며, 영적 능력이 실제 삶의 능력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를 풀어놓아 자유케 하시는 주님의 뜻을 반드시 성취해 드려야합니다. 이제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으로 영광을 보며, 그것을 전파하는 은총과 축복의 전파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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