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거친 풍랑 위 걸을 때 주님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고 능력입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9절)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삶은 때로 고통과 아픔의 시련과 슬픔의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우리 인생에 괴롭고 힘든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지는 않습니다. 황무지에 떨어져도 망하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라는 은혜로 받아들여질 때, 인생은 또 다른 삶의 장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의 두려움, 삶의 지루함과 흔들림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히려 그 뒤편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손짓과 음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앞에 놓인 절벽을 건너는 외나무다리에서 우리는 눈을 감고도 자신 있게 단숨에 뛰어가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을 때, 건너편에 계신 주님의 품에 안기고 소원과 소망의 이룸을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이전에, 단숨에 저편의 주님을 향해 그 품에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믿음은 때로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가다 보니 우리가 외나무다리를 흔들림과 다리 떨림 없이 건너고, 물 위를 걸어 주님 앞에 다가가는 역사를 이루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풍랑 속에서 물 위를 걸어 주님을 향해 가는 베드로를 보며, 우리 인생의 단선과 복선 구조요청에 관한 은혜의 눈을 뜨게 합니다.

1. 단선. 주님만 바라보는 단 한 가지 집중은 용기로 인한 순종과 은총의 역사를 이룹니다.

믿음의 역사는 단순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나는 그대로 순종한다는 명료한 논리가 생활 속에서 실행될 때 이루어집니다. 본문에서 당시 제자들의 상황은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24절)는 말씀처럼 심각한 고난의 상태였습니다. 그 지경에서 갑자기 나타나신 주님을 보고 제자들은 무서워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도우려고 오신 주님을 오히려 무서워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깨우쳐주시는 자비의 가르침입니다. ‘믿음은 짐이 아니고 힘이 됨’을 우리는 삶 속에서 깨닫습니다. 고난 중에 놀랍게도 두려운 주님의 모습은 두려움의 고통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는 다가오심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늘 짐이 아니고 힘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 실수를 좀 해도 예수님의 수제자가 될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28절에서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이 말씀은 “당신은 천하를 움직이시는 주님이시니까.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란 뜻입니다. 주님의 권위와 능력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우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평상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과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헌신에 의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확신이 그의 고백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믿음의 힘이 발휘되어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때는, 주님은 명령하시고 나는 순종한다는 단순 논리가 진행될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대견스럽게 여기셨습니다. 간단히 말씀하십니다. “오라.” 주님께 대한 베드로의 믿음은 객관적 인정뿐 아니라, 삶의 각 순간에 주님을 통해 깨달았던 주관적 확신과 체험의 확인이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즉시 배에서 내려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은 날 것의 바다에 뛰어들어 주님을 향해 걸어갑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확신 분량과 형태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 믿음도 이런 결단의 때를 요구받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와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보고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오직 주님이 말씀하시면 나는 행한다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가는 단선의 믿음. 그것이 그 순간 베드로의 믿음이었고, 그 단선의 믿음은 베드로로 하여금 주님만 바라보고 가다 보니 물 위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합니다.

2. 복선. 두 가지 마음은 의심으로 모든 것을 상실케 합니다.

주님과 바람을 번갈아 보는 복선의 어지러움은 우리를 혼미케 하고 의심을 작동시켜,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분리시켜 풍랑 속에 빠져 쓸려가게 합니다.

단선으로 주님만 바라보며 물 위를 걷다가, 순간적으로 주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바람을 바라보는 때 두려움이라는 의심이 우리를 덮칩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의 모든 믿음의 역사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물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은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순간 추락하고 주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감을 확인해 줍니다. 주변 상황과 여건이 우리 눈에 확대되어 보이는 순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주님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우리를 채웁니다.

사람이 조금 편안하고 안정되면 한눈팔 여유가 생기고 딴 생각이 생깁니다. 어려울 때는 정신없이 기도하며 주님만 바라보고 가다가, 일정 분량 편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주변이 보입니다. 그 순간 주님만 바라보려고 내려놓았던 것들이 아까운 것 같고, ‘내가 옛날에는 어떠했는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부터 다시 풍랑 속에 휩쓸려 빠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바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순간 우리는 베드로처럼 빠져들어가게 될 뿐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돌아볼 시간이 없어서 세상을 못 돌아봅니다. 결국 주님만 따라가려면 주님 생각과 그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다른 엉뚱한 생각과 일을 못합니다. 죄의 본성을 지닌 인생은 시간나고 틈만 생기면 세상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때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주님 외에 다른 것을 볼 수 없도록 주변의 모든 가지를 잘라 놓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약할 때가 가장 큰 능력의 때이기도 합니다. 혼미와 의심은 두 가지 볼 것과 두 가지 마음이 생기는 복선의 상태이고, 우리를 침몰하게 만듭니다.

3. 구조요청. 위기 상황의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주님을 향해 구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단선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갈 때는 주님을 향해 물 위를 걸어서 갔는데, 복선으로 다른 주변을 바라보니 물에 빠져 주님으로부터 멀어져갑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오늘 베드로는 망하고 죽고 끝난 것이 아니고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소서.” 어려울 때 주님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함으로 해결을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은 어려울 때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절규의 함성을 부르짖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의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서워 소리지를 때 외면하지 않고 찾아 주십니다. 우리의 구조요청은 사람이 아닌 주님께 구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힘들 때 사람에게 소리 지르지 말고, 주님께 간구해야 편안해집니다.

베드로는 비록 자신의 상태는 연약했지만 주님이 능력을 가지신 것만은 확신했습니다. 믿음이 작아서 주님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졌지만, 주님의 능력을 알기에 주님이 내 손을 붙잡아 주시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믿음입니다. 자비의 주님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손길을 내밀 때 주님께서는 그 손을 외면치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실체를 봅니다. 바다를 정복하고 배에 오르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모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보고 경배하는 것과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풍랑 가운데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극한 역경 속에서 예수님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아픔과 번민의 때에 우리는 비로소 구조를 요청하고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구조를 받고나서 우리는 주님이 참된 메시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강퍅한 것입니다. 마음의 강퍅은 주님의 징계입니다. 어려울 때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주님께 구조를 요청하는 그 때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때로 우리 삶은 물 위를 걷는 믿음이 요청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인생의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이는 답답한 때입니다. 그러나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어려운 시대를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가는 단선적인 믿음으로, 풍랑의 물 위를 걷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나의 은혜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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