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히 다진 역사작업 기초 삼아 위대한 교회로 도약 중

개 교회 역사 뿐 아니라 대구경북교회사 연구에 힘써 빛나는 성과
대구선교 개척자 후손들과 지속적인 교류, 복음의 빚 갚는 데 앞장

“사월교회가 그 일을 한다고요?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사람들은 대구 사월교회(최영인 목사)의 저력을 잘 몰랐다. 1898년 우매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대구경북 일대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 중 하나로 손꼽히기는 하지만, 당초에는 경북 경산에 속해 있다가 1980년대가 되어서야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시골교회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두드러지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2017년, 그때까지 아무도 착수하지 않았던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한국명 안의와)의 15년 치 선교편지들을 완역하겠다며 나섰을 때 다들 반신반의했다. 대구제일교회처럼 큰 교회들도 여태 못해낸 일을 사월교회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던 것이다.

사월교회가 새롭게 확장해 개설한 역사관의 내부 모습. 교회의 어제와 오늘이 내일을 열어가는 힘인 것을 이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월교회가 새롭게 확장해 개설한 역사관의 내부 모습. 교회의 어제와 오늘이 내일을 열어가는 힘인 것을 이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월교회는 이 일에 진심이었다. 누가 돕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해내겠다는 각오로 담임목사가 솔선해 팔을 걷어 부쳤고, 권중생 장로를 비롯한 여러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역사국을 조직해 거들고 나섰다. 이들은 교회 120주년 기념 역사집 <사계절 훈풍은 아닐지라도>를 먼저 발간해낸 데 이어, 2019년에는 드디어 생명의말씀사를 통해 <황무지에 장미를 심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안의와 선교사 편지 번역서를 성공적으로 출간해냈다.

이 번역서로 말미암아 그 동안 대구선교 역사와 관련된 이런저런 오류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전설적인 존재로만 여겨졌던 선교사들이 어떤 인간적 고뇌와 시련을 극복하며 사역에 정진했었는지를 피부 깊숙이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뿐만 아니었다. 이 책은 미국에 거주하는 안의와 선교사의 후손들에게까지 전달되었고, 그리하여 또 다른 기회들이 찾아왔다. 제작된 책을 받아보고 감동한 증손녀 도티 씨가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하고 있던 대구선교 초창기의 사진과 기록물들을 사월교회에 보내온 것이다.

공평한 선거를 위해 사발문 형태로 제작된 사월교회의 임직자 투표용지.
공평한 선거를 위해 사발문 형태로 제작된 사월교회의 임직자 투표용지.

비단 사월교회에게만 아니라 영남교계, 그리고 한국교회 전체에 큰 의미를 가진 귀중한 사료들이 아닐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사월교회는 아담스 선교사 후손들의 한국 초청과, 이들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들의 전시회 개최까지 추진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 9일에는 아담스의 영적·육적 후예들이 사월교회에서 모여 부활주일예배를 함께 할 예정이다. 아담스 선교사가 촬영한 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여러 교회와 한국의 유적지들을 탐방하는 일정도 진행된다.

“저희 교회에게는 큰 기념이 되는 사건인 동시에 옛 은인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번역작업이 이렇게 엄청난 성과들로 돌아오게 돼, 온 성도들이 느끼는 감격과 보람이 무척 큽니다.”

당회록 작성에 사용되었던 붓과 벼루.
당회록 작성에 사용되었던 붓과 벼루.

역사와 관련된 최영인 목사와 사월교회의 수고는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교회당 전체를 역사교육의 장으로 꾸며 활용하는 대목에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설립 120주년을 맞아 예배당을 증개축하면서 사월교회는 건물 전체를 역사공간으로 수놓았다. 예배당 입구에서부터 통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종교개혁과 장로교회의 태동에서부터 미국의 청교도와 한국선교, 그리고 대구교회사로 이어지는 역사들을 순차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사월교회의 역사해설가들과 탐방객들을 위해 제작된 소책자 표지.
사월교회의 역사해설가들과 탐방객들을 위해 제작된 소책자 표지.

여기에 신축한 ‘아담스관’에는 안의와 선교사의 아내 넬리의 이름을 딴 카페를 조성하고, 그 안에 사월교회의 옛 문서들과 유물들을 전시하는 역사관도 설치했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제법 알찬 구성을 갖추었던 이 역사관은 교회 역사국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집된 자료들과 연구의 성과들이 점점 쌓여가면서 전시물을 확충해 지난해 훨씬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졌다.

새 역사관에서는 안의와 선교사의 발자취와 사월교회가 3·1운동에 앞장서 활약한 각종 기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교회직원 선거가 공평하게 이루어지도록 사발 모양으로 제작한 투표용지나 당회록을 작성할 때 사용했던 붓과 벼루 등 독특한 유물들, 총회로부터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3·1운동기념교회’ 등에 지정되며 기증 받은 현판들까지 둘러볼 수 있다. 아담스 가문이 보내준 사진과 문서들까지 추가되면 역사관의 전시내용은 훨씬 더 풍성해질 것이다.

또한 역사관을 개관하면서 탐방객들의 역사 이해에 보탬이 될 50페이지 분량의 소책자 <사월교회의 역사를 소개합니다>도 함께 제작했다. 이 책자는 탐방객들을 맞이하며 역사해설사 역할을 할 교우들을 위한 교육용 교재로도 활용되는 중이다.

“설립 120주년 이후 여러 대외적인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부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내부 정비작업에 힘을 기울일 기회가 생겼지요. 덕분에 역사관도 새롭게 단장하고, 교우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을 착실히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사월교회 최영인 목사는 건물이나 목회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보다 역사의 보존이 훨씬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사월교회 최영인 목사는 건물이나 목회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보다 역사의 보존이 훨씬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최영인 목사는 한국교회가 성장에만 몰두하면서 과거의 유산들을 소홀히 하고, 심지어 스스로 폐기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다가 정작 이것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아 곤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며 안타까워 한다.

이런 실수를 피하기 위해 사월교회는 사소한 자료들도 사라지지 않도록 소중히 관리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브 형성에 최선을 다한다. 역사의 효용은 영구적이라는 신념을 교회 전체가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각종 조사와 편찬 작업을 통해 영남지역 교회사 연구를 발전시키고, 관련 기관들과 공동으로 역사포럼을 개최하는 등 남다른 비전을 펼쳐갈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기초 작업들이 충실한 덕분이다.

이제 사월교회는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잘 가꾸고 보존한 역사가 그런 힘을 공급한다.

역사를 가르칩시다

사소한 것들이 쌓여 역사가 됩니다

설립된 지 100년도 훨씬 지난 교회들을 탐방해보면 가끔씩 기막힐 때가 있습니다. 수집하고 정리된 역사가 ‘전혀’ 없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런 교회를 찾아가보면 구전으로 떠도는 부정확한 이야기나, 총회 사기 혹은 노회회의록에 남아있는 기록 말고는 교회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당을 새로 건축하거나 이사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혹은 6·25 전란 중에 핍박을 당했거나 화재 홍수 같은 재난을 겪는 과정에서 당회록을 비롯한 중요 문서들이 분실된 경우는 그럴 수 있다 칩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마저도 아무런 기록 정리나 보존 흔적이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설립일을 실제와 다르게 알고 있거나, 공로자나 순교자의 이름이 틀리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씀드립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역사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공동체가 피 땀 눈물로 이루어낸 모든 시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의 생명책에는 그 모든 수고들이 꼬박꼬박 담겨있겠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 그 교회가 이루어낸 소중한 가치들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의 미래를 이어갈 다음세대들마저도.

만약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이런 작업들을 귀찮아했다면 지금 우리 손에는 성경도, 신조도, 헌법도 남아있지 않았을 테지요. 주님의 교회라는 정체성마저 잃고 말았겠지요. 

중요한 사건들만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소한 것들이 쌓여 진정한 역사를 이룹니다. 매주 발행되는 주보 한 장씩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일, 매년 교회요람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혁을 단 몇 줄씩이라도 추가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할 수 있으면 남녀전도회나 주일학교 부서 나아가 각 기관들의 문서들까지 꼭 모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을 전담할 사람들을 세우고 가능하다면 교회 안에 역사위원회를 조직하며 사료실도 만들어봅시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그 기록들이 쓸모를 빛내는 순간이 언젠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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