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비롯한 호남 초창기 선교역사 담은 공간

4년 만에 완공, 옛 사람들 신앙에 깊이 있는 접근이 장점…충분한 내부확충 필요

전주선교와 호남선교 초창기 역사를 알기 쉽기 보여주는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외부 풍경.
전주선교와 호남선교 초창기 역사를 알기 쉽기 보여주는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외부 풍경.

처음 추진이 시작된 시점부터 따지만 10여년, 본격적인 건립이 이루어진 때부터로는 4년 만에 완공된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관장:최원탁 목사)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10월 7일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예수병원 맞은편에 개관한 이 기념관은 전북지역 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교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현재 비슷한 내용과 형식으로 기념관 건립이 추진 중인 목포나 대구를 비롯한 옛 복음의 거점지역에서 기준으로 삼을만한 선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선교의 첫 문을 연 미국남장로교 소속 ‘7인의 선발대’ 선교사들의 모습.
전주선교의 첫 문을 연 미국남장로교 소속 ‘7인의 선발대’ 선교사들의 모습.

기념관의 핵심을 이루는 전주 기독교 역사에 대한 전시는 건물 2층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양협정을 통해 전라도를 선교구역으로 할당 받은 미국남장로교의 7인 선발대가 처음 거점으로 삼은 곳이 전주였기에, 사실 전주의 초기 교회사는 호남의 초기 교회사와 다름없다.

이 중대한 역사를 기념관에서는 ‘하나님이 조선으로 보내다’ ‘전주에 호남의 첫 선교지를 마련하다’ ‘은송리 예배당, 첫 세례가 이루어지다’ ‘복음, 의료, 교육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다’ ‘기독교가 세상을 변화시키다’ ‘전주선교지, 선교사를 기억하다’ 등 여섯 장면으로 정리하고 있다. 각 장면마다에는 테이트, 레이놀즈, 전킨, 린튼 같은 선교사들과 정해원, 김창국, 방애인, 이거두리 같은 한국인 성도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은송리예배당, 전주서문교회, 예수병원, 신흥학교, 기전학교 등 복음의 거점들과 3·15만세운동, 신사참배 반대, 한글성경번역 등 전주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들도 각종 전시물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실감나게 구현된다.

일제강점기에 기독교인들이 사용했던 태극기(관장 최원탁 목사 기증품), 1911년에 발간된 한글 구약전서 초판본, 1907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한 완주 위봉교회의 당회록, 실제 전주선교부에서 사용했던 전화기와 타자기 등이 눈에 띄는 유물들이다.

전주지역 3·1운동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하는 전시물.
전주지역 3·1운동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하는 전시물.

비슷한 성격의 다른 전시관들과 이 기념관의 차별점이라면 그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가급적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노력한 부분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매일 대화 연습’ ‘맞춤법에 따라 자주 쓰기 연습’ ‘신을 부르는 다양한 호칭 공부하기’ ‘마가복음 1장 읽고 번역’ ‘주기도문 한국어로 암송하기’ ‘한자 200자 익히기’. 조선에 찾아온 외국인 선교사라면 누구나 첫 해에 수행해야 했던 한국어 학습과정의 일부로 전시물에 소개된 내용이다. 개척기의 수많은 사역들로 격무에 시달려야 했던 선교사들이 한국인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 지를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역대 전주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을 추모하는 공간.
역대 전주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을 추모하는 공간.

뿐만 아니다. 당시 성도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거쳐야 했던 문답내용을 살펴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술을 마시거나 집에 술을 보관하고 있습니까?’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이 옳습니까?’ ‘귀신이 두렵습니까?’. 호기롭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 생각보다 적은 편이라는 걸 깨달은 요즈음의 성도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전시실의 마지막을 선교사들을 추모한 공간으로 꾸민 것도 뜻이 깊다. 지척에 있는 선교사 묘역에 대한 소개와, 역대 전주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의 명단을 새겨놓은 벽을 훑어보고 나서는 뭉클한 감정으로 기념관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거리의 성자’라 불린 방애인 선생의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전시물의 초기화면.
거리의 성자’라 불린 방애인 선생의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전시물의 초기화면.

한 층을 더 올라서면 예수병원의학박물관이 ‘구바울기념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꿔 새 단장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단지 이름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구성과 내용으로 옛 의료선교사들의 삶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다른 공간들 또한 아직 빈약하기는 해도 조금씩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학박물관 바로 곁에 위치한 3층의 특별전시실에서는 개관과 함께 아프리카 의료선교 장면들을 소재로 한 홍건 장로의 ‘아프지마 에티오피아’ 유화전이 열린 바 있으며, 1층의 뮤지엄샵은 곧 개점한다.

건물 4층에는 예배와 강의가 가능한 70석 규모의 다목적강당과, 옛 선교사들의 무대가 되었던 중화산동 일대 및 전주 구도심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옥상정원이 설치되어있다. 일단 하드웨어에는 손색이 없다.

전시실 내부를 견학하는 관람객들.
전시실 내부를 견학하는 관람객들.

현재 기념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운영인력이다. 건물이나 업무의 규모가 학예사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현재 기념관 개방은 비록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만 이루어진다. 주일은 물론이고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게 될 토요일과 공휴일에는 정작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급한 인력보강이 이루어져야 한다.

애써 지은 공간이 잘 활용되기 위해서는 전시물 확충도 절실하다. 가치 있는 전시물들은 다른 박물관이나 역사관에서 이미 소장하고 있는 데다, 기념관의 자체 수집 작업 또한 부진해 보유된 물품은 아직까지 빈약한 상태이다. 지역교회들과 옛 미국남장로교선교부 등 국내외 관련기관들에 대한 탐방과 자료수집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빈자리들을 채워갈 필요가 있다.

근대기 교회사에 대한 연구도 이미 널리 알려진 교회나 인물들만이 아니라 대상의 폭을 더욱 넓혀 다른 교회들, 가능하다면 장로교 이외의 교파 및 교단들로까지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것이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는 길이다.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도 들러보세요]

‘개방형 수장고’ 등 독특한 분위기 속 풍부한 역사 만나
실감영상실에서는 색다른 감동과 추억도 얻을 수 있어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속 또 하나의 박물관인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은 전주의 의료선교 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의료의 역사를 보여주는 보물창고와도 같다.

예수병원 설립자 마티 잉골드 왕진 사진(1898년), 안과용 수술기구(1948년), 데이비드 씰(한국명 설대위) 전 원장의 종양 심부치료 기록지(1955년), 방광내시경과 요도확장기(1930년) 등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 5점을 비롯한 풍부한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어서이다.

또한 병원 역사 속에서 ‘호남 최초의 근대의료기관’ ‘우리나라 최초 민간 의료선교병원’ ‘최초로 한센병 치료에 나선 2대 원장 포사이드’ ‘우리나라 최초 수련의 제도 도입’ ‘최초의 전국적 기생충 박멸운동’ ‘최초 의료선교사 파송’ 등 수많은 ‘최초’의 기록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 내부.
언뜻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 내부.

의학박물관이 표방하는 3가지 남다른 개성이 있는데 그것은 ‘비어있는 전시’ ‘개방형 수장고’ ‘실감영상실’ 등이다. 사실 전시실에 들어가는 순간 ‘이래도 되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언가 휑하다 싶은 느낌을 받는 것은 이런 개성들로 인해서이다.

한편에는 한 두 마디의 작은 글귀가 새겨진 종이판들이 세워져있을 뿐이고, 반대편에는 수백 점의 유물들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마치 창고에 그냥 쌓아놓은 것처럼 진열되어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먼저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이들의 정체를 가늠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종이판들의 정체는 앞에 세워진 태블릿PC를 통해서, 골동품 같던 전시물들의 정체는 진열대에 부착해놓은 큐알(QR)코드를 통해서 밝혀진다. 문명의 이기를 동원하면 이 공간에 얼마나 많은 세월과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는지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기기를 다루는데 어려움이 있는 관람객들이라면 미리 연락해 학예사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063)230-8778.

전시실에서 나오면 더 들러야 할 두 곳이 남아있다. 하나는 실감영상실이다. 박물관 명칭에도 등장하는 7대 원장 구바울 선교사의 모친 플로렌스 크레인 여사가 손수 그린 한국의 들꽃과 전설들을 소재로 아름답게 구현된 멋진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설립자 마티 잉골드의 어록들을 만나는 ‘사각사각 마음쓰기’ 코너이다. 우리 겨레를 향한 선교사의 착한 마음에 접속하여, 이곳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짧게 털어놓으며 관람을 마무리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