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공산정권 박해 견뎌낸 ‘순수 신앙’ …영광의 시대 맞다
교육과 선교 앞장서 통일의 꿈 실현하는 공동체로 도약 중

평서노회(노회장:방병진 목사)의 뿌리인 평안도 지역은 한국장로교회의 황금어장이었다. 선교 초창기부터 어느 지역보다 복음이 활발히 전파되며,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첫 조직될 무렵에는 전국 7개 노회 중에서 2개 노회가 평안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평서노회와 평양노회가 1932년 숭실학교 대강당에서 연합사경회를 여는 모습.
평서노회와 평양노회가 1932년 숭실학교 대강당에서 연합사경회를 여는 모습.

특히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던 평양을 중심으로 삼은 남평안노회(훗날 평남노회로 개칭)의 교세는 다른 노회의 2~3배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이 때문에 평남노회가 조직된 지 불과 10년 만에 평양노회 평서노회 안주노회 등 3개의 노회로 분립한 일은 결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 제10회 총회의 결의에 따라 평서노회는 1922년 2월 2일 진남포 비석리교회에서 창립한다. 평서노회의 지역경계는 평양의 서쪽, 즉 현재 북한의 남포특별시 일대와 평원 대동 등 평안남도 서부지역 일부로 정해졌다. 초대 노회장은 송린서 목사, 부노회장은 소안론 선교사, 서기는 김치근 목사가 각각 선임됐다.

평서노회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득신고등성경학교의 1948년 제3회 입학식.
평서노회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득신고등성경학교의 1948년 제3회 입학식.

사실 평서노회 출범 당시 정세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3·1운동으로 충격적 잔상이 남아있던 일제는 음양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감시 탄압하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 사천교회 조진탁 장로가 사형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영적 대부흥의 도도한 흐름은 꺾일 줄을 몰랐다. 1923년 5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표에 의하면, 평서노회의 교회 수는 57개(조직교회 45개, 미조직교회 12개)에다 기도처는 201개에 이르렀다. 이들 교회의 주일예배에 매주 참여하는 인원이 7544명, 주일학교 학생 또한 3552명에 달했다.

평서노회와 산하 교회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단지 교세확장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었다. 사경회 전도강연회 같은 복음사역을 부지런히 전개하는 한편, 물산장려운동이나 금주금연강연회처럼 애국애족 정신을 일깨우는 계몽활동에도 앞장섰다. 당연히 핍박을 감수해야 했다.

1936년 1월 16일 류형기 목사를 만국주일학교 대표로 파견하는 일을 의논하기 위해 강서 요촌교회에서 모인 임시회는 강서경찰서 정사복 경찰들이 투입돼 삼엄한 경계를 펼치면서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1939년과 1940년에는 정기회조차 열지 못하고 해산해야 할 정도로 심한 압박을 받았다. 일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42년 평서노회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득신학교의 교장 전흥경 장로를 체포하여 사임시키더니, 이듬해 봄 아예 폐교 조치를 했다.

2021년 개최된 평서노회 제174회 정기회.
2021년 개최된 평서노회 제174회 정기회.

해방이 되어서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소련군의 진주와 공산정권의 득세에 이어 6·25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잃고 교회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1949년 연이어 발생한 ‘4·19사건’과 ‘봉화단’ 사건 등으로 지역의 기독교계 인사들 상당수가 투옥되면서 평서노회도 큰 타격을 받았다. 전쟁의 와중에 여러 목회자와 성도들이 정든 터전을 등지고 피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월남한 이들을 중심으로 1952년 4월 5일 부산 영락교회에서 평서노회의 전통을 계승하는 제48회 정기회가 열렸고, 그해 4월 29일 열린 제37회 총회에도 평서노회 총대들이 참여했다.

2022년 주다산교회에서 열린 제107회 총회에 환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섬긴 평서노회원들과 총회장 권순웅 목사.
2022년 주다산교회에서 열린 제107회 총회에 환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섬긴 평서노회원들과 총회장 권순웅 목사.

하지만 가장 큰 위기가 남아있었다. 뜻밖에도 그 위기는 안전한줄 알았던 남쪽에서 찾아왔다. WCC 사태로 인한 교단 분열의 여파로 평서노회가 그야말로 격랑에 휘말린 것이다. 계속해서 약해지던 교세는 1961년 7월 16일 낙산교회에서 열린 제61회 정기회에 목사 2명, 장로 3명만 참석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게다가 통합 평서노회는 1972년 평양노회에 합병을 선언했다. 자칫 ‘평서노회’라는 이름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루터기처럼 남은 이들이 기어이 버티며 노회를 다시 살렸다. 제51회 총회에서 정상적인 복구 소식을 전한 평서노회는 1972년 노회 규칙을 제정하는 등 안정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1982년에는 ‘교사의 벗’을 군부대 교회에 보내기 시작하며 다시 선교사역에 손을 뻗치고, 1992년에는 남북통일조직위원회를 조직해 통일의 비전을 키워나갔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교육과 선교였다. 평서노회 산하 교회들은 일제강점기에 득신학교를 비롯해 30여 개의 학교를 세우며 겨레의 내일을 준비한 전통을 지녔다. 일제의 득신학교 폐교조치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득신고등성경학교(훗날 평서신학교)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재건할 만큼 다음세대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노회 설립 초창기부터 북간도와 시베리아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구제사업을 전개하는 등 해외 선교사역에도 열심을 냈다.

그 전통을 계승해 21세기 첫 공식 모임이었던 제131회 정기회에서 교육정책위원회와 선교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노회 발전의 기틀 역할을 한다. ‘교사의 벗’을 오랫동안 발행하며 한국교회 주일학교에 훌륭한 자양분을 공급해 온 늘빛교회(강정훈 목사), 주일학교 사역에 있어서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온 안산 성문교회(조종제 목사) 등이 그 중심에 있다.

평서노회세계선교회는 신앙 선배들이 보여준 선교정신을 착실히 계승하고 있다. 사진은 선교지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
평서노회세계선교회는 신앙 선배들이 보여준 선교정신을 착실히 계승하고 있다. 사진은 선교지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

선교위원회는 평서노회세계선교회로 재탄생해 여러 차례 선교대회를 개최하고 정기적인 청소년 비전트립 등의 사업을 실시하는 한편 2010년에는 연경남 채명자 선교사를, 지난해에는 이명권 신지혜 선교사를 각각 파송하기도 했다. 2002년 백두산에서 개최한 선교대회는 선교비전과 통일의 꿈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됐다.

이런 움직임들은 탈북민 신앙공동체의 형성과 총회세계선교회(GMS) 이사장을 지낸 후 캄보디아 선교사로 나선 김재호 원로목사(동산교회), 글로벌만나재단을 이끌며 남북교류 활동을 펼치는 이상돈 목사(군포 영광교회) 같은 인물들의 배출로도 이어졌다.

역사적인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며 평서노회는 ‘감사의 100년, 통일의 100년’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한다. 직전회장 백병기 목사를 준비위원장으로 세우고 10월 23일 백주년 기념예배를 비롯해 선교사 파송, 종교개혁지 순례, 기념교회 설립, 100년사 발간 등 다양한 기념사업들도 추진하는 중이다. 이 뜻깊은 해에 제107회 총회장으로 권순웅 목사(주다산교회)가 취임한 것도 평서노회에는 기쁜 선물이다.

노회장 방병진 목사는 “믿음의 선진들을 재조명하고, 평서노회의 역사 속 정신을 계승하여 교육과 선교 그리고 통일한국을 위해 힘써 기도하고 협력하며 발전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소중한 역사 계승 부흥 일으킬 것”

평서노회장 방병진 목사

평서노회장 방병진 목사
평서노회장 방병진 목사

“교육과 선교 그리고 통일운동에 주력하는 노회로서 정체성을 계속 살려나가겠습니다.”

평서노회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말하는 노회장 방병진 목사(상일교회·사진)의 음성에는 확신과 자부심이 넘쳐난다. 

“남평안노회 시절부터 거슬러 살피면 한국인 최초의 장로교 목사 중 한 사람이자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목사님, 민족지도자로 명성을 떨친 조만식 장로님, 총신대학교 사당동 시대의 기틀을 놓은 김희보 목사님 등 여러 빛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을 통해 한국교회가 든든히 서고, 우리 겨레가 새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후배들이 평서노회의 소중한 역사를 계승해오던 중에, 설립 100주년을 맞은 바로 올해 권순웅 목사를 제107회기 총회장으로 배출하게 된 것 또한 노회장 입장에서 대단히 감격스러운 사건이다.

“온 노회의 자랑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역대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총회장으로 이름을 남기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총회장님이 제107회기에 임하며 선포한 ‘샬롬·부흥’이 무너진 교회를 회복시키고, 이 땅에 다시 부흥을 일으키는 운동으로 큰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노회 차원에서도 열심히 도울 것입니다.”

“더욱 발돋움하여 우리 총회의 중심을 이루는 노회로 자리 잡아 갈 것입니다. 물려받은 신앙과 정신을 바탕으로 더욱 해외선교와 다음세대 선교 그리고 통일운동에 매진하며, 100주년 기념사업도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든 노회원과 산하 교회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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