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소속의 이춘식 목사(진안 금양교회)와 기장 소속의 이세우 목사(완주 들녘교회)는 지역에서 이름난 농촌목회자이다. 두 사람 다 피폐해진 농촌을 새롭게 일구고, 농촌교회를 일으킨 성공적 사례의 주인공들로 손꼽히고 있다. 두 사람이 농촌에 뛰어든 시기도 비슷하다. 20년 전 전도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농촌 그리고 농촌교회 살리기에 온 몸을
10년째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김종운 목사(지족교회)는 최저생활비제도를 “생존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어촌 교회의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농어촌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은 생존을 위해 사모가 파출부를 나가기도 한다. 목회자는 택시기사로 뛰거나 일용시장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는 “목사는
“최저생활비제도를 효율적으로 시행하려면 총회 내 상설기구가 필요합니다.” 김영배 목사(사진)는 최저생활비를 “총회가 농어촌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김 목사는 1998년 총회 전도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농어촌·미자립 교회 후원 현황 자료집>을 발
“저는 당당하게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선교비라는 명목으로 주는 10만원에 머리를 숙입니다. 생활비 앞에 사역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자존감도 사라집니다.” “농어촌 교회 목회자와 도시 교회 목회자는 같은 소명으로 사역하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목회자일까요?” “총회 최저생활비 지원요? 이제 기
한국 농업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몰락의 과정을 밟아 왔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하여 1985년 850만에 이르던 농가인구는 2010년 현재 250만을 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농가인구의 감소는 고스란히 농촌교회의 어려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급변하는 농촌교회의 현실 속에서 농촌의 목회자들은 심각한 좌절감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고통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깡촌’이다. 승용차로는 올라가기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하고, 맞은편에서 차량이 오면 길을 비켜주기 위해 반대편 차는 서야 한다. 게다가 비포장도로도 지나야 한다. 마을 주민 구성과 비율도 영락없는 농촌이다. 과거 250세대가 살았지만 하나 둘 도시로 떠나고 이제는 120가정만 남아 고
기독교귀농학교귀농학교 실습장으로 쓰이는 밭은 여느 밭과 달랐다. 고랑마다 호박이며 배추며 양상추며 각기 다른 종류의 채소가 심겨져 있었다. 실습생들에게 여러 종류의 씨앗을 심고, 기르게 하기 위해서다. “고랑을 파는 것부터 시작해, 줄 매고, 비닐 치고, 모 심고 하다보면 농사를 머리로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돼요. 처음에는 힘들어하지만 여럿이
평택남부전원교회“청년과 학생들의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젊은이들이 시야를 넓혀 세계 열방을 보며 비전을 세우고 있습니다.” 최근 평택시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남부전원교회 주변은 여전히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그러나 남부전원교회는 지역의 한계를 이미 뛰어 넘었다. 교회에는 중국인 필리핀인 미국인 등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어울려 예배를
전주완주 석천교회“송아지가 좀 말랐네. 잘 먹어야 될 때니까 남편한테 사료 잘 주라고 해요.” 베트남 출신 누엔티게우(34세) 씨 집을 방문한 안재학 목사(석천교회·38세)는 성큼 우리로 가 송아지를 살피고, 사료를 퍼 담아 준다. 9개월짜리 암송아지가 맛있게 사료를 먹는 모습에 안 목사와 누엔티게우 씨도 같이 배가 부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처참해진 한반도를 치유하고 상처받은 국민들을 돌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과 NGO들이 한국을 찾았다. 전쟁고아들의 입양운동을 주도한 홀트아동복지회나 아이들의 복지에 초점을 맞춘 플랜한국위원회(당시 양친회) 등 다수의 단체들이 한국전쟁 당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
전쟁 후 참담한 상황에서도 보육원·컴패션 도움으로 목회자 꿈 키워나가생명줄 같던 미국 흑인 후원으로 학업 마쳐…구제사역 사명 갖고 나눔 앞장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집을 잃고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가난과 굶주림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불굴의 의지와 주변 국가들의 도움으로 세상
▲ 지역주민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안사공동체벨트’ 구축을 꿈꾸는 홍영식 목사가 공동체시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경북 의성에 노인요양시설인 ‘안사공동체’와 장애인생활시설인 ‘안사장애인공동체’가 있다. 모두가 안사교회(홍영식 목사)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의 피폐함
▲ 손병덕 교수. 현재 총회 산하 1만 1156개 교회 가운데 농어촌 읍 단위 교회가 3500여 개, 시군까지 포함하면 4000여 개가 되지만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85%가 미자립교회로 분류된다. 이는 농어촌 교회들이 복음전파의 가장 일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면서도 이농현상으로 인해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재정적 어려움이 더해져
▲ 반월교회 오동환 목사가 함께 생활하는 노인들과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전북 진안에 위치한 반월교회(오동환 목사)는 하나의 ‘복지타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로시설부터 요양시설, 정신복원시설, 재가복지센터, 가정위탁교육까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오동환 담임목사와 송현순 사모는 주님이 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교회는 전쟁 사흘만인 6월 27일 예수교서회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대한기독교구제회>(회장:한경직 목사)를 결성했다. 이후 1950년 7월 3일 피난지 대전에서 한경직 황금찬 김창근 목사 등이 주축이 되어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했다. 구국회는 주로 선무, 구호, 방송 등의 활동을 했으며 지원병을 모집해 전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