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 논의 외는 실질 농어촌정책 없는 교단 현실
장기정책 수립·체계적 교육 맡을 ‘상설 전문기구’ 시급

예장합동 소속의 이춘식 목사(진안 금양교회)와 기장 소속의 이세우 목사(완주 들녘교회)는 지역에서 이름난 농촌목회자이다. 두 사람 다 피폐해진 농촌을 새롭게 일구고, 농촌교회를 일으킨 성공적 사례의 주인공들로 손꼽히고 있다.

두 사람이 농촌에 뛰어든 시기도 비슷하다. 20년 전 전도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농촌 그리고 농촌교회 살리기에 온 몸을 던져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걸어온 과정은 너무나 달랐다. 한 사람은 교단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혼자 힘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하며 외로운 길을 걸어와야 했다.

이세우 목사는 서울 토박이였다. 농촌사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그는 신학생 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농촌에 대한 식견을 갖추기 시작했고, 기장 총회의 공식기관인 기독교농촌개발원으로부터 훈련을 받으며 농촌목회를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이 목사에게 들녘교회를 사역지로 연결해준 곳도 바로 기독교농촌개발원이었다.

반대로 이춘식 목사는 농촌목회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물론 수몰민을 이끌고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힘겨운 과정에까지 교단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스스로 농업기술센터와 한국농선회 등 교단 외부의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농사기술 등을 익히고, 사역의 활로를 찾아나서야 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이 느끼는 농촌교회에 대한 교단 내 체감지수에는 더욱 큰 격차가 생겼다.

이세우 목사의 뒤를 잇는 후배 농촌목회자들에게는 그 사이 더 많은 원군들이 생겼다. 신학교에서는 정규 커리큘럼에 농촌선교 과목이 개설됐고, 전국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이하 농목회)라는 일종의 조합형태의 모임들도 생겨났다. 농목회는 농촌 목회자들끼리의 정보교환과 교육사업 등은 물론 교단의 농어촌 정책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으로 성장해있다.

이춘식 목사의 교단 후배들은 여전히 혼자만의 힘겨운 싸움을 펼쳐야 한다. 교단 총회에는 여전히 농어촌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기관들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교단의 대표 신학교에는 아직까지 농촌목회와 직접 관련된 아무런 과목도 개설돼있지 않다. 하다못해 농촌목회자들의 자생적인 연합모임조차 구성되지 못한 형편이다.

두 교단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농촌교회에 대한 장기적인 정책이 있느냐, 그리고 그 정책을 책임지고 실현해나갈 전문기관이 존재하느냐의 여부에서 비롯된다.
사실 예장합동 총회에서도 구체적인 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제88회 총회 농어촌부에서는 도농교회간 농산물 직거래 추진, 목회자 최저생계비제도 시행, 농어촌 목회자들을 위한 권역별 자활자립세미나 개최, 선진 농촌교회 현장 방문 등 굵직한 정책과 사업들을 내놓은 바 있다.

▲ 교단의 효율적인 농촌목회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상설 전문기구 설치가 절실하다. 사진은 농어촌부가 주최한 자활자립세미나 모습.
그러나 몇 년도 되지 않아 목회자 최저생계비제도를 제외한 여타의 사업들은 중단되거나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현재 교단 홈페이지에 농어촌직거래장터, 농어촌목회수기 게시판 등이 운영되는 것이 고작이지만, 이 또한 활용도가 저조한 편이다.

이렇다보니 오락가락하는 정책 속에서 엉뚱하게 열심을 가진 농촌교회와 목회자가 되레 피해를 입기도 했다. 농어촌부가 주도한 직거래 사업에 자체 생산품을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충남지역의 한 교회는 차기 농어촌부가 사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적지 않은 손해와 허탈감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얼마 후에 해당 목회자는 교회를 사임했다.

88회기 당시 농어촌부장을 맡았던 정진모 목사(서천 낙원교회)는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매 회기마다 농어촌부 책임자와 정책이 바뀌는 상비부 체제의 한계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상설조직의 부재에서 찾는다.

“농어촌 교회들을 위해 정책을 입안하고, 후원활동을 이끌어나갈 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타 교단에서는 진작부터 농어촌교회 전담기구를 운영하며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한국교회 장자교단을 자부하는 우리 총회에서 예산타령만 하며 뒷짐지는 것은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더 늦기 전에 전문 위원회 구성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예장통합의 군농어촌선교부, 감리교단의 농촌선교위원회 등은 교단 차원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모델들이다. 더욱이 현재 교단 안에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활자립을 이루는데 성공한 농촌교회들의 노하우와 사역자들의 경험이 적잖게 존재한다. 이런 자원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어느 교단 못지않은 선진적 기구 구성과 정책 제시가 가능할 것이다.

교단 차원에서 뿐 아니라 신학교 차원에서도 농촌교회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총신은 물론 지방신학대학 어디에서도 농어촌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체제나 부설기관을 찾을 수 없다.

예장통합 지방신학교인 호남신학대에서 농어촌선교연구소를 설립해 정기 학술세미나 개최와 농촌목회자들간의 네트워크 형성, 도농 직거래 장터 운영, 농어촌 다문화가정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사역들을 펼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농촌목회와 관련된 정규과목 편성과 함께, 농촌사역에 이론적 토대를 제시해 줄 기관 설립 등에 신학교들이 사명감을 갖고 나서주어야 한다. 물론 이런 부분들을 감당할 전문사역자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 또한 교단 신학교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나아가 농촌 목회자 혹은 농촌지역 노회 간의 긴밀한 연대를 통해 총회 차원의 농촌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독려하고, 농촌교회 스스로 대안을 찾아가는 토론과 협력의 장을 만드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 농촌 목회자는 이렇게 외친다.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여비 몇 푼 쥐어주면 그만인 수양회 정도로 진정 농촌교회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전시성 행사에만 머물지 말고, 농촌교회에 실질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교단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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