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구호NGO 활발한 활동

한국전쟁이 끝난 뒤, 처참해진 한반도를 치유하고 상처받은 국민들을 돌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과 NGO들이 한국을 찾았다. 전쟁고아들의 입양운동을 주도한 홀트아동복지회나 아이들의 복지에 초점을 맞춘 플랜한국위원회(당시 양친회) 등 다수의 단체들이 한국전쟁 당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 97개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월드비전(회장:박종삼)은 한국전쟁 때 처음 만들어졌다. 월드비전의 창립자는 밥 피어스 목사. 그는 한국전쟁 당시 거리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보면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돕는 전문 구호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1950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무실을 연 밥 피어스 목사는 교회 등에서 모금을 하여 한경직 목사와 함께 한국의 어린 고아들과 남편 잃은 부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것이 월드비전의 첫 걸음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월드비전의 초기사업은 전쟁고아를 위한 육아원, 영아원, 모자원, 맹아원, 농아원 등의 시설지원 사업이었다. 70년대까지 150개의 시설을 지원하였고, 의식주에 대한 지원에서 점차 시설아동들의 교육, 신앙, 의료분야에 대한 도움으로 변화했다.

한국컴패션(대표:서정인) 역시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단체다.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미군부대 설교를 위해 1951년 한국을 방문한 뒤, 전쟁고아들의 참담한 생활을 목격하고 거지소년의 깡통을 미국 씨애틀의 교회마다 보여주며 후원을 제안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스완슨 목사는 고아원을 세우고, 개인과 가족 교회 단위로 고아들을 후원하는 일대일 결연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한국컴패션은 1952년부터 41년간 한국 어린이 10만 명을 양육했으며 나병환자들과 미혼모, 장애인을 위한 사역도 진행했다. 또한 한국 어린이들로 구성된 콰이어팀이 미국을 방문, 80개 도시를 순회하며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약 40여 년 간 각 나라에서 원조를 받았던 우리나라는 이제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됐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경우는 우리나라가 최초다. 월드비전의 경우, 1991년 외국의 원조를 중단하고 ‘사랑의 빵’ 저금통을 만들어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를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사랑의 빵’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아 무려 2900만 개의 저금통이 모였다.

한국컴패션은 2003년에 컴패션의 10번째 후원국으로 재탄생, 올해까지 창립 7년 만에 전 세계 7만 6000명의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는 11개 후원국 가운데 3위에 해당하는 수치. 스리랑카의 경우만 해도 한국전쟁 직후에는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후원을 하고 있다.

컴패션의 김현순 과장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나눔의 정신은 여타 개발도상국에 발전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면서 “피폐했던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받은 사랑을 이제는 나눠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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