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피아노를 배울 때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에 충실하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 움직임이 다르다. 어디 피아노뿐이겠는가? 그것이 서예든, 그림이든, 수영이든, 무엇이든지 그렇다. 이렇듯 뛰어난 연주자며, 실력을 갖춘 운동선수라도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인생도 어린 시절 가정에서 그 기본을 배운다. ‘도대체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라는 한탄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가정에서 배운 기본을 학교에서 든든히 다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화로 연결된다. 그렇게 가정과 학교에서 배운 인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렇다. 기본이다. 그런데 기본이 되지도 않았는데 기교만 부리려는 모습을 본다. 노래의 기본도 되지 않은데 기교를 부려 잠깐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바닥이 드러난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자주 보는 장면. 노래는 못하면서 춤부터 요란하다. 물론 “땡” 소리가 이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은 재미나 있지.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주님은 그 기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 그 기본 위에 교회가 든든히 서고 어떤 세력도 흔들 수 없는 것이다. 그 기본도 되지 못한 사람이 교회에서 열정으로 잠깐 주목을 받기도 한다. 

목회도 역시 기본. 그리고 목회자의 필수 사역인 설교 역시 기본이다. 나는 신학교에서 기본을 배우기도 했지만, 좋은 목회자 아래 현장에서 기본에 충실하도록 훈련받은 것을 복으로 여긴다.

그 덕에 목회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설교도 기교보다는 오직 성경 본문에 충실하게 매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무슨 설교를 할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성경 읽기’라는 기본을 지키고 산다. 그렇게 읽어 가면 설교가 쏟아진다. 기본대로 읽고 또 읽다 보면 중요한 메시지들이 구술을 꿰듯 정리되고 스토리는 물 흐르듯 나온다.

그런데 이런 기본도 없이 이것저것 끌어다가 그럴듯하게 기교만 부리려는 설교자가 보인다. 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좀 오래 간다 치더라도 기본기가 없는 기교꾼으로서, 교회의 토양을 망가뜨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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