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요즘은 자고 나면 땅이요, 또 집 문제다. 한 동안 집 값 올랐다고 아우성치더니 이번에는 땅과 집을 관할하는 공적 기업 직원과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무원들의 땅 투기가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왜 우리는 이렇게 집이나 땅에 매력을 느끼고 또 집착하는 것일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 하늘이 내가 가야 할 땅이고 영원히 머물 집이라는 신앙을 가졌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무슨 일일까?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 땅 한 평 없이 텐트 치고 이리저리 유랑을 하며 살았어도 동서남북 모든 땅을 후손에게까지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받지 않았는가. 땅에 집착하지 않았는데 땅을 보장받았고, 잘 지은 집은 없어도 하늘의 그 환상적인 거처까지 이미 확보되어 있었던 그들.

그걸 아는 나는 여전히 땅이 없어 아쉽고 집이 작아 만족 못하는 것은 아닌 지. 성경뿐 아니라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가 쓴 우화 같은 짧은 글을 일찍이 읽었었는데. 거기서 죽을힘을 다해 달려서 그 너른 땅을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는 어리석은 사람도 만났었고.

우리까지 나서서 거들지 말자. 그런데 사실 땅으로 말하면 교회도 한몫했다. 예배 그 자체보다 예배당 지을 땅이나 예배드릴 그 집에 너무 매달려오지 않았던가? 땅이 얼마나 큰 지, 예배당이 얼마나 넓은 지로 부흥을 말해오지 않았는가? 주차장 크기가 교회 성장을 보장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좁은 주차장 탓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땅은 다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가르침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내 머리인가 싶다. 하긴 어려서부터 열을 올리면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기를 쓰고 사기를 치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더 넓게 차지하려고 애쓰다가도, 해가 지면 던져버리고 집에 들어가던 놀이가 몸에 밴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은퇴 후 좀 넓은 땅에, 럭셔리한 인테리어한 집에서 넉넉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으니. 내 몸 뉘일 작은 공간만 있어도,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없으시던 주님보다는 훨씬 나은 것임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