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희 목사(낙도선교회 대표)

다도해 중심지를 제자도 산실로 만들어 간 호주 선교사들

경남지역은 호주장로교회선교부 관할 지역이었다. 호주장로교회의 첫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병으로 별세했다. 그 후임 제임스 메카이 선교사도 2년 만에 병으로 한국을 떠났다. 호주선교부는 새로운 선교사를 물색했다.

중국에서 선교하다 병고로 영국에서 휴양 중이던 앤드류 아담슨(한국명 손안로)은 조선의 첫 선발대 선교사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한국선교에 응답한다. 아담슨은 릴레이(이어달리기) 선교사였던 셈이다.

앤드류 아담슨과 로버트 왓슨의 통영선교 루트.
앤드류 아담슨과 로버트 왓슨의 통영선교 루트.

수탈의 뱃길이 생명의 뱃길로

아담슨이 부산에 도착한 것은 1894년 5월 20일이었다. 아담슨은 부산 초량교회를 중심으로 선교하면서 동래, 기장, 울산, 거창, 함안, 통영지역을 순회선교하였다. 통영 선교스테이션은 1913년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부산에서 직접 거제와 통영으로 들어가 순례전도를 하였다.

호주 선교사들의 거제선교 루트를 보여주는 지도.
호주 선교사들의 거제선교 루트를 보여주는 지도.

일본은 그 무렵 우리 수산업을 약탈하기 위해 일본인 이주촌을 마산, 거제 지세포, 옥포, 장승포, 통영 등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부산, 마산, 거제, 통영을 연결하는 여객선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 여객선을 타고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이 나중에는 직접 복음선을 마련하였다. 가장 먼저 아담슨은 ‘통통배’(발동기선)를 빌려 들어갔다.

통영선교부가 생기고 난 후 트루딩거 선교사는 ‘데이 스프링’이란 이름의 선교선을 구입해 활용했고, 스키너 선교사는 80명이 탈수 있는 ‘희성’(행복한 소식을 전하자)이란 이름의 선교선을 건조하여 운행하였다.

이들은 거제도의 옥포, 장승포, 황포, 송진포, 금포, 지세포, 고현항, 죽림항 등의 뱃길을 통해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설립했다. 해안 주변에 교회들을 세우면서, 거제도 내지에까지 복음이 들어갔다. 통영에서는 통영항을 중심으로 주변의 40여 개의 섬에 복음이 들어갔다.(지도 참조) 일본인들이 다니며 수탈하던 뱃길이 선교사들이 복음들고 다니면서 살리는 뱃길이 된 것이다.

선교사들의 이어달리기

아담슨이 순회선교를 통해 개척하거나 세운 교회들은 욕지도 동항리교회(현 욕지교회와 욕지제일교회·1902년) 통영 대화정교회(현 충무교회·1905년) 거제도 옥포교회(1896년) 연사교회(1905년) 사등교회(1909) 금포교회(1909) 유천교회(1909) 거제제일교회(1910) 등이다.

통영과 거제 일대에서 릴레이 선교를 시작한 앤드류 아담슨 선교사.
통영과 거제 일대에서 릴레이 선교를 시작한 앤드류 아담슨 선교사.

통영 섬에 세운 최초의 교회는 욕지도의 ‘논골예배당’(동항리교회)이다. 고종 25년(1888년)에 욕지도 입도 희망자를 받아 섬에 들어가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중에 예수를 믿는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담슨 선교사가 통영항 주변에서 섬선교를 하던 중 욕지도에서 이들을 만나면서 동항리교회가 세워진다.

아담슨은 섬주민들의 반대로 욕지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반대편의 도동항 혹은 덕동 쪽으로 들어가, 마을에서 떨어진 동항리에 예배당을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동항리교회는 현재 욕지교회와 욕지제일교회로 분리되어 있다. 이어 통영에는 대화정교회가 세워지고, 1913년에는 통영선교부가 개설된다. 아담슨 선교사는 통영선교부 개설에 가진 힘을 다 쏟고 허약해진 몸으로 1914년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1915년 영국 런던에서 하나님나라로 옮겨갔다.

그의 뒤를 이은 로버트 왓슨 선교사.
그의 뒤를 이은 로버트 왓슨 선교사.

아담슨이 떠난 후 통영선교부로 부임한 선교사들도 사역을 계승해 열심히 섬겼다. 로버트 왓슨(한국명 왕대선), 트루딩거(한국명 추마전), 마가렛 알렉산더, 스키너 선교사 등이 이어 들어가 지속적으로 교회개척과 성장을 도왔다. 그 중 로버트 왓슨 선교사가 사량도에 세운 사량교회가 지금도 건재하다. 지속적인 릴레이 선교가 이루어진 것이다.

신학교에 전파된 땅 끝 영성

겔슨 엥겔(한국명 왕길지) 선교사는 1900년 10월 29일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부산진교회를 중심으로 경남지역과 거제 통영의 섬들을 선교하였다. 그는 모라비안의 경건주의 환경에서 자랐고, 그를 파송한 바젤선교회도 모라비안 선교전략을 따랐다. 섬에 세운 교회로는 거제도의 삼거리교회(현 저높은교회)와 지세포교회가 있다.

겔슨 엥겔 선교사는 언어와 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부산에서 사역하는 호주선교사였지만, 1902년부터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쳤다. 1906년 정식강사가 되어 3개월 동안 신학교 강의를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순례선교를 하는 방식으로 사역하였다.

섬선교를 하는 겔슨 엥겔 선교사를 통해 ‘땅 끝의 영성’이 평양신학교에 전파됐다. 신학교수가 지닌 현장 복음전도의 영성은 학생들에게 잘 스며들었다. 그렇게 신학생들 가슴에 자리 잡은 영성은 훗날 이들이 교수가 되어서도 여전히 발휘됐다. 총신낙도선교회가 시작될 무렵만 하더라도 지금은 고인이 된 홍치모 교수를 비롯해 정훈택 정성구 이한수 정일웅 교수 등이 방학 때마다 총신 학생들과 낙도를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교수와 함께 하는 땅 끝의 영성이 총신을 움직이는 영성이 되었던 것이다.

1919년 평양신학교 정교수가 되어서야 겔슨 엥겔 선교사는 부산에서 평양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신학기관지인 <신학지남>을 발간하였고,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史記)>를 출판하였으며, 숭실학교에서 교수사역을 했고, 언더우드를 이어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대 총회장으로 봉직하였다. 그는 땅 끝 영성을 갖고 강단에 오른 신학의 거목이었다.

통영선교부 앞에서 선교사들과 한국인 성도들이 함께 한 모습.
아담슨 선교사가 세운 동항리교회의 후신 중 하나인 욕지교회의 모습

거제도에서 싹 튼 한국교회 제자도

겔슨 엥겔의 거제도 선교에 대한 기록들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거제삼거리 안골에서 겔슨 엥겔 선교사의 복음 전도를 받은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1909년 일자 미상, 거제 일운면 삼거리 안골 옥진현씨가 호주장로교 선교사 왕길지 목사의 전도로 복음을 받고 삼거리 음지마을에서 설립예배를 드리다.”(‘저높은교회’ 연혁 중)

옥진현은 바로 고 옥한흠 목사의 증조부이다. 옥한흠 목사의 부모님은 삼거리교회에서 옥한흠이 3살이 될 때까지 신앙생활을 하다가 거제 지세포로 나갔다. 이후 일본에서 잠시 머문 후, 다시 돌아와 지세포교회를 다녔다. 지세포교회도 겔슨 엥겔 선교사가 세운 교회이다.

아담슨 선교사가 세운 동항리교회의 후신인 욕지교회.
1913년경 부산 감만동 나병원 설립 후 맥켄지 선교사와 아담슨 선교사가 한국인들과 함께 한 모습.

옥한흠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리고 장성하여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려던 옥한흠은 당시 삼거리교회의 장립집사였던 삼촌 옥약배(옥성석 목사의 부친)로부터 전도사 사역 제의를 받았다. 아들이 목회자가 되길 바라던 어머니의 기도와 소원이 그렇게 이루어져갔다. 결국 하나님은 옥한흠이 목회의 길로 가도록 섭리하셨고, 그를 통해 제자도에 입각한 평신도운동이 한국교회에 일어났다.

겔슨 엥겔의 거제선교 첫 열매가 된 옥진현 장로의 묘비.
겔슨 엥겔의 거제선교 첫 열매가 된 옥진현 장로의 묘비.

옥진현에게서 아들 옥관환 장로가 태어났고, 다시 그 자손들 중에서 한국교회의 여러 이름난 목회자들이 등장했다. 아들 옥치상 목사, 손자 옥한흠 옥성석 옥광석 목사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렇게 복음을 처음 받은 옥진현 장로로부터 6대째의 신앙가문이 이루어졌다. 겔슨 엥겔 선교사가 한 섬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둔 셈이다. 

선교는 효율성보다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영성은 릴레이 제자도로 나타난다. 모라비안의 제자 낳는 삶이 겔슨 엥겔에게 이어졌고, 겔슨 엥겔의 제자 낳는 삶이 평양신학교와 거제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거제도 삼거리교회에서 옥한흠으로 이어졌고 옥한흠에게서 한국교회로 이어졌다. 땅 끝과 땅 끝을 잇는 선교에 제자도가 존재한다. 땅 끝의 영성을 이어가는 릴레이 제자도가 한국교회 안에 끊어지지 않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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