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한국인 선교사 시대’ 견인한다1913년 첫 해외 파송…세계 2번째 규모 GMS, 100개국 2134명 파송 ▲ 총회 선교부는 1998년 GMS로 확대 개편해 세계적 교단선교부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사진은 당시 GMS 창립기념선교대회 모습. “선교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장로교회가 아니다.”
강력한 부흥운동 중심에 ‘말씀’ 있었다사경회·부흥회 통해 얻은 삶의 동력, 사회문화운동에 열정적으로 기여서방종교인 기독교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뿌리를 내리고, 대표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
한국 장로교회 주요 인물 40인(예장합동 기준)주요 인물 40인 어떻게 선정했나신앙 선배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있었기에 한국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 믿음을 지키고 간 모두가 승리자며 기념자다. 그러나 이들 중에 특별한 분들을 선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선정된 인물은 총회 산하 각계의 조언과 기관들의 추천을 받아 1차적으로 123명을 추렸다. 증
[최초의 열매들, 꽃 피우다] 선교의 씨앗, 교회 기틀 놓다1800년대 후반은 한국 기독교 전파의 첫 씨앗들이 뿌려진 시대였다. 첫 번째 열매는 순교의 피였다. 웨일즈 장로교 출신 로버트 토마스(Robert J. Thomas) 선교사는 중국에서 미국 선적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 땅을 찾았다.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중국어로 된 성경을 나눠주다, 그만
‘오직 복음’ 결승선 향해 매진하다통합 이탈·이단 도전에도 교회 부흥 위한 선교사역 열정 잃지않아예장합동에서 통합측이 이탈해 나간 후 총회는 오로지 교회부흥에 매진했다. 통합측은 병원, 학교, 출판사, 기도원 등 선교사들이 소유하고 있던 각종 기관들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지만, 예장합동은 북장로교 선교회, 남장로교 선교회,
예장통합 이탈은 장로교 최대 비극‘신학사상 충돌’ 고신·기장 연이은 분열 이어 1959년 총회서 씻을 수 없는 상처 남겨1945년 해방이후 한국장로교회는 급속도로 분열됐다. 당시 분열의 배경에는 나름대로 교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타당성’이 있다고 주장하나 고려파의 신사참배 원인을 제외하고는 신학사상에서
거센 안팎 시련에 정통신학 수호 분주일제 탄압·이단 도전은 정체성 확립 논쟁 촉발…1938년 굴욕적 신사참배 결의도1919년 3월 1일 평양 숭덕학교에서 고종 황제 추모예배가 끝났을 때 3000여 명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총회장 김선두 목사가 비장한 목소리로 베드로전서 3장 13∼17절과 로마서 9장 3
대부흥 열기 ‘민족 복음화’ 조직이 되다1907년 독노회 조직 5년 만에 7개 노회·221명 총대 참석한 역사적 총회 출범 ①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들. ② 1907년 1월 겨울 남자 사경회가 열린 평양 장대현교회. ③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조직 기념. 친구의 돈을 가로챘다는 길선주 장로의 회개고백은 호렙산 제단
조선 복음화 ‘순교의 피’로 시작되었다알렌 이어 선교사 입국 잇따라…한국 장로교·근대문화 기틀 놓아1900년 조선 땅에서 쓴 어느 무명 선교사의 편지 ▲ 알렌 선교사 조선 땅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펜을 든 사람이 많습니다. 그 모든
2012년은 한국장로교가 설립된 지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경사스러워야 할 한국교회는 예상외로 조용합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불미스런 일과 사건들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쉬지 않고 지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지는 한국교회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도하면서 장로교 역사를 점검하고, 교단이 나갈 방향을 30회에 걸쳐 연재 합니다. 한국교회의 역
갈수록 힘들어지는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총회는 최소한 기본적인 지원책만이라도 수립해야만 한다. 먼저 총회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은 농어촌 직거래장터 개설이다. 도시 교우들이 농어촌 교우의 농수산물을 직접 구매하여 재정 활성화에 도움을 줘야 한다. 일부 교회나 노회에서 이를 실시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총회가 나서서
농어촌 교회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송원교회는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농어촌 사역을 계획했고, 2006년부터 구체적으로 농어촌 단기선교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단기선교는 농어촌 교회를 도와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종 목표지만, 농사일손돕기 의료봉사 이미용봉사 자동자정비 등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동강교회에 오면 사람들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첫째는 이렇게 오지의 작은 마을에도 교회가 있다는데 놀라고, 둘째는 담임하는 목사가 젊다는데 놀란다. 필자가 이곳 정선 동강 줄기를 끼고 흩어진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사역한지도 벌써 15년이 된다. 처음에는 주민들과 어울려 농사를 지으며 복음을 전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를 세워 약 35명의 성도들과 함께
충남 보령 빙도교회충남시 보령 낙동 4리의 옛 이름은 ‘빙도’였다. 이름이 알려주듯 이 마을은 방파제가 설치되기 전에는 섬이었다. 단 34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전광준 목사 김문희 사모(빙도교회)가 부임한 것은 1999년도였다. 전통적인 씨족 사회이고 어업에 종사했던 터라 완고한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부부는 기
경남 거창 대산교회“농촌교회의 생존은 교회가 속한 농촌사회의 생존에 달려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리 마을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것은 마을의 발전은 물론 교회 성장의 기회 또한 제공해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경남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청림마을에 위치한 대산교회(허운 목사)는 최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