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정보화 마을’ ‘체험사업’ 잇따라 선정 신뢰 얻어

충남 보령 빙도교회

충남시 보령 낙동 4리의 옛 이름은 ‘빙도’였다. 이름이 알려주듯 이 마을은 방파제가 설치되기 전에는 섬이었다. 단 34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전광준 목사 김문희 사모(빙도교회)가 부임한 것은 1999년도였다. 전통적인 씨족 사회이고 어업에 종사했던 터라 완고한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부부는 기도 끝에 교회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던 사모의 달란트를 활용해 목각을 가르치는 문화교실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5년에 전 목사 부부에게 생의 전환이 되는 한 사건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의 권유에 떠밀려 ‘마을에서 꽤 젊은’ 김문희 사모가 이장으로 선출된 것이었다.

김사모는 이후 2년 임기의 이장직 연임에 연거푸 성공(?)해, ‘3선 이장’으로 보령시 천북면 낙동 4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김사모는 이후 시범정보화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마을이 선정되도록 하는 큰 공을 세웠다. 지금 이 조용한 시골 마을 빙도에서는 마을 회관과 마을 체험관 건립 등의 사업이 착착 준비되고 있다.

김사모가 처음부터 이런 정부 사업에 밝았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마을사람들이 과거의 습관을 따라 마을로 비상약을 구하러 계속 왔던 일 때문이었다. 과거 빙도였을때 의료선이 와서 약을 교회에 주고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육지로 편입되면서 의료선의 발길은 끊어졌다. 김사모는 약을 구하고자 보건소의 문을 두드렸고, 이때부터 관공서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사모의 요청으로 보건소는 약을 지원했을뿐 아니라 매년 1~2회 정기 진료를 실시했다.

▲ 빙도마을종합개발추진위원회 모임 후 마을지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전광준 목사(맨 왼쪽)와 김문희 사모(왼쪽서 셋째). 전목사 부부의 오랜 설득 끝에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
자신감을 얻은 사모는 급기야 2005년 12월, ‘시범정보화 마을’로 선정되는 큰 일을 성사시켰다. 보령시에서 단 2개 마을을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로 된 것이었으니 기쁨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까지 빙도는 전화로 인터넷을 연결해야 했는데 정보화 마을이 됨으로 인터넷이 개통됐다.

2009년에는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3억 원을 지원받는 프로젝트다. 체험마을 선정은 거저 된 것이 아니었다. 전 목사와 김 사모의 오랜 설득과 헌신이 뒤에 있었다. 전목사 부부는 사업의 필요성을 반신반의했던 주민들을 일대일로 만나 설명했다. 또 농협에서 실시하는 관련 교육을 가도록 권유했고, ‘빙도마을 종합개발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들을 데리고 타 지역 시범마을 견학도 다녔다.

전목사와 김사모는 정부정책 활용비법을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위해 안으로는 마을에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 마을 행사나 모임에 참여하고,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서툰 서류작성이나 컴퓨터 다루는 것을 도와주면서 가까워지라는 것이다. 밖으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발전에 대한 눈이 뜨이게 하라고 조언했다. 먼저 목회자나 사모가 농협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고,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도 함께 교육받도록 권하라는 것이다.

김문희 사모는 “농협에서 실시하는 교육 하나만 들어도 수많은 정보와 인맥을 쌓게 된다”면서 “참여할 수 있는 마을 단위 사업은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 차원에서도 교회가 사업의 중간역할을 하면 신뢰할 수 있다고 보고 사업 실패를 덜 걱정하기에 목회자와 사모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광준 목사와 김문희 사모는 아직 40대다. 올해로 13년째 목회 중이지만 성도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정부 정책을 활용하며 마을을 섬겨 나가면 언젠가는 마을이 복음화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젊음을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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