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내 나이 13살의 어느 겨울날. 6살 남동생이 이름 모를 야산에 잠들었다. 내 마음을 서럽게 시리도록 버려두고 말이다. 동생이 떠남으로 가족에게 말할 수 없는 거친 슬픔이 두터운 옹벽을 만들었다.

칠흑 같은 어두운 나락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가위눌림으로 다가온 동생의 죽음은 어린 내게 하나님과 사람의 부재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 준 사건이었다. 인생경험이 일천했던 어린 내게 ‘부재’의 의미는 소통의 단절이란 것으로 청소년기의 가치를 형성하게 했다.

그것은 내 믿음의 원천이었던 하나님과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 잠금이다. 내 마음의 잠금장치는 오랜 세월 열리지 않는 녹슨 자물쇠였다. 열려고 해도 열 수 없었던 이유. 열쇠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경험한 아버지는 39세의 나이에 나와 어린 여동생을 조부모님께 맡기고 선지동산의 생도가 되셨다. 나에게 하나님은 남동생과 아버지를 앗아간 잔인한 신이셨다. 그리고 거기에 소명이라는 미명 하에 절대자에게 순종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있었다. 내 어린 신앙관으로 마주한 하나님과 아버지의 부재는 힘겨움과 고통만 인식하는 관점이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내가 아버지에게는 아들이요, 내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중간자의 신분에서 바라본 심경이다.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아들과 함께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 “내 아버지는 이런 심정이었겠다”라는 마음이 전이되었다.

내 인생의 터전이 멀리 영국이었던 적이 있었다. 자연스레 고국에 계신 아버지와의 만남은 오랜 기다림 속에 이루어졌다. 언제나 짧은 만남, 긴 이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 안에 내재된 다듬지 않은 원석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의 슬픔을 단 한 번도 내게 말한 적이 없다. 몇 해 전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하면서,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고백을 하셨다. “네가 어릴 때 아버지가 용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해 미안했다”라면서 용돈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 순간 오랜 세월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의 잠금 장치가 해제되었다. 잃어버렸던 내 마음의 잠금 열쇠는 다름 아닌 아버지가 간직하고 계셨다.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시각이 교정되면서 육신의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의 잔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당신 또한 지독한 부재 현상을 오랫동안 안고 사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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