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배용한 목사(대율교회)
배용한 목사(대율교회)

사람들은 중요성을 최상의 위치에 둘 때가 있다. 그래서 항상 으뜸이 되고자 한다. 쉽게 말해 주인공이 되고 싶고, 무대의 중심에서 마이크를 잡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앞 다툼하는 세태에 나 역시 편승해서 살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치가 중심이 되면 목사인 내게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된다.

목회자는 사역 특성상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여기서 중요함은 사역의 의미이지, 결코 군림하는 위치가 아니다. 두각을 나타내는 자리에 있는 자는 뭔가 탁월함을 지녔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대표성을 지니고 섬기는 사람이다.

섬기는 위치의 좋은 예가 ‘들러리’다. 들러리는 결혼예식 때 신랑 신부를 돕는 도우미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지만, 들러리가 없다면 진행상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편안함 속에 치르는 행복한 결혼식은 들러리의 섬김이 있기에 가능하다.

들러리는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존재다. 만약 자신이 만인이 주목하는 위치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무명의 수많은 들러리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삶의 무대에서 빛을 발하지 않지만 빛의 흔적을 지닌 그림자 같은 들러리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다. 자칭 ‘보통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일들이 사회 공동체를 지탱한다고 생각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은근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들러리 행위를 무시하면 세상은 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루를 여는 들러리 역할로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다.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에도 각양의 들러리들의 애씀으로 우리는 기분 좋게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들러리들은 가정, 사회, 공동체 안에 모두 존재한다. 당연히 그 일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에 들러리가 아니다. 들러리가 무너지면 주인공의 무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록 주목받는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나로 인해 빛나는 주인공이 있다면 감사함으로 들러리의 자리에 서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들러리의 가치를 인식하며 사는 사람이다. 위대한 들러리가 위대한 주인공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영적 들러리가 되도록 애쓰는 일상이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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