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대학교(총장:최대해 목사)가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1954년 4월 1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대구야간신학교로 개교한 이후, 여러 차례의 변천 과정을 거쳐 대신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정규대학 인가를 받고 오늘날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신학의 요람으로 우뚝 선 것이다.설립 모태인 경북노회는 1953년 12월 17일 대구서문교회에서 열린 제53회 정기회에서 대구에 신학교를 세울 것을 결의하고 이듬해 1월 18일 학교 설립준비위원회(위원장:명신홍 목사)로 모여 초대 교장 김광수 목사를 선임했다.당초 ‘대한신학교 대구분교’를 유치하는 것으로 방
경동노회경동노회가 4월 9일 경주성광교회(김중석 목사)에서 제161회 정기회를 열고, 장재덕 목사(영천서문교회)를 기독신문사 이사장 후보로 만장일치 추천했다.장재덕 목사는 “부족한 사람을 기독신문 이사장 후보로 추천해주신 영천서문교회 당회와 경동노회 총대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기독신문은 지난 60년 동안 교단 대변지로 자리를 지켜왔다. 이사장으로 취임하면 교단과 선교지, 그리고 신학교와 각 지교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신속, 정확하게 보도하겠다. 함께 기뻐하고 치유하는 교단지, 정론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 목사는
“108회기에 완전히 밀렸네요”▲…총회 첫째 날 미주중부노회 복구에 대한 건이 상정되어 토론이 진행된 후, 사회를 보던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허락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복구가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부총회장 오정호 목사가 반대 발언을 하며 분위기가 역전. 결국 미주중부노회 복구 문제는 오정호 목사의 요청대로 108회 총회에서 다시 조사해 다루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권순웅 목사가 어쩔 수 없다며 푸념.“성령을 모시고 회의하십시오”▲…총회 회무 셋째 날 수요저녁예배를 총회장 이·취임감사예배로 드려. 이취임보다 말씀과 기도를 중심
총회장 이·취임 감사예배가 9월 20일 저녁 7시 30분 새로남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감사예배를 드린 1000여 명의 총대와 새로남교회 성도들은 ‘교회여, 일어나라!’는 총회 주제를 마음에 품고 “108회기에 총회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성을 회복하고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상에 빛의 사명을 다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간구했다.총회장 이·취임 감사예배에서 특별한 목회자가 강단에 섰다. 박희천 목사(내수동교회 원로)가 ‘성령과 우리는’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박희천 원로목사는 “예루살렘 공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성령님을 모시고 인간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여름 내내 찜통더위에 시달리던 대구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팔공산 등산길이나 동성로 번화가가 북적이고, 따로국밥 뭉티기 찜갈비 납작만두 야끼우동 같은 먹을거리를 찾는 식객들도 늘어난다.영남권 복음의 중심지이기도 한 대구에는 기독교명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청라언덕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근대문화골목 투어는 사시사철 각광을 받는다. 여기에 경북 청도에서 대구 도심으로 연결되는 베어드복음길도 새롭게 조성되는 중이다. 이 새로운 순례길의 중심에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4개의 교회가 있다.사월교회 반야
24년 전, 최상호 목사는 느닷없이 서울 신현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대구에서 신수희 장로와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대구노회 주교강습회 저녁집회를 마치고 나오니 신현교회 조병헌 장로와 강창무 장로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들은 최상호 목사에게 정석홍 목사의 후임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게다가 당시가 6월이었는데, 9월에 부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청빙 제안에 최상호 목사가 혼란스러웠던 것과 달리, 신현교회 장로들은 최 목사를 담임목사로 점찍고 사전조사까지 마친 상태였다.하지만 장로들과 달리 신현교
목사장로기도회는 총회의 위기 속에서 시작했다. 60여 년 전 총회는 1959년 교단분열의 아픔과 혼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수신학 개혁신학을 지키기 위해 예장통합 교단과 분열했지만, 총회는 목회자를 양성할 신학교도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 위기감은 정말 컸다. 총회는 1960년 제45회 총회에서 전국 교회가 금식기도를 하도록 결의까지 했다.첫 번째 목사장로기도회는 이런 위기 속에서 1964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충현교회에서 열렸다. 당시 기도회는 교단의 지도자인 총회 임원과 총신 교수들 중심으로 시작했다.
대구지역 애국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유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서기로 다짐했다.1월 13일 예닮교회에서 진행한 대구애국지도자 신년하례회는 김상현 목사 인도, 박치근 장로 기도, 이상민 목사(대구서문교회) 설교, 전원락 목사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진 회의에서는 현재 33명으로 구성된 대구 조직을 70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목회자뿐만 아니라 장로, 권사, 집사 등 평신도까지 참여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한편 이들은 △자유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과 좌익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기도와 행동으로 실천한다 △주사파와 공산주의자
대구기독교봉사단(이사장:이상민 목사)은 12월 29일 대구 동아쇼핑 앞에서 노숙자 위로행사를 열었다.이날 행사에는 봉사단으로 활동하는 지역교회 목회자 성도들과 임병헌 국회의원, 류규하 대구중구청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노숙자들과 함께하는 예배는 상임이사 김상현 목사 사회, 김성태 장로 기도, 이상민 목사 설교, 부이사장 남태섭 목사 축도로 진행했다. 이상민 목사는 노숙자들에게 아기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한 자들을 위해 베푸신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또한 봉사단원들은 노숙자들에게 도시락 목욕비 핫팩 등으로 구
총회장 권순웅 목사(주다산교회)가 모교인 대구 계성고등학교(교장:박현동) 수양회를 인도하며 학교 발전을 위해 1000만원을 전달했다.계성고등학교 제60회 출신인 권순웅 목사는 11월 25일 대구서문교회(이상민 목사)에서 열린 수양회 및 추수감사절예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녀들로 성장하도록 모교 후배들을 축복했다.또한 이날 설교 끝 부분에 학생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해, 약 100여 명의 학생들이 새롭게 회심하기도 했다. 예배 후에는 학교 동문이자 예장
대구서문교회(이상민 목사)가 설립 110주년을 맞이해 비전센터를 완공하고 6월 25일 헌당식을 열었다.신축한 비전센터는 대구시 대신동 1407평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세워졌고 예배실과 카페 어린이놀이방 체육관 등을 갖추고 있다. 대구서문교회는 2020년 비전건축위원회(위원장:최영수 장로)를 구성하고, 지난해 4월 4일 착공해 올해 6월 15일 공사를 마무리했다.특히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며 다음세대를 건강하게 세운다는 비전 아래 총 1223명의 성도들이 건축헌금에 동참하며, 총 74억에 이르는 공사비용을 조달한 것으로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 질문은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 나온 것이다. 이 질문으로 인해 기독교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로의 폭압으로 고통 받는 신도들을 버리고 피신하는 베드로에게 복음의 천명을 깨닫는 계기가 된, 위의 질문을 ‘쿼바디스 유니버시타스?’로 바꾸어 본다. 왜냐하면 그 만큼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서이다. ‘대학들이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대학의 생존을 위한 비장한 질문이기도 하다.”위의 글은 2007년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발간하는
한국장로교 정초, 보수주의 신학 위에 놓다1901년 평양장로회신학교로 출발한 총신이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이 문자대로 성취된 역사이다. 하나님 은총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시대마다 쓰임 받았던 수많은 선진들의 헌신의 역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1. 신학교 정초기(1901~1938)평양신학교는 초대교장 마포삼열이 재직하던 1924년까지는 매코믹신학교 출신 교수들 일색이었는데, 1925년 라부열이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프린스턴신학
대구노회(노회장:박승환 목사)가 50년 전에 출발했던 역사의 현장인 대구서현교회에서 100회기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시 모여, 대구 복음화와 복음전파 사명을 감당하는 노회가 되기를 기도했다.1972년 5월 29일 오후 2시 서현교회에서 창립한 대구노회는 75년 3월 제7회 정기회에서 만교회운동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초기부터 지역복음화를 위해 교회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대구노회는 86년 제71회 총회로부터 허락을 받아 남대구노회와 대구중노회로 3분했다. 특히 주일에 실시하는 국가고시 시정 총회 헌의(제35회), 북한교회 재
고 명신홍 목사(1904~1975), 고 백남조 장로(1913~1988), 고 김추호 장로(1914~2006)가 ‘자랑스런 영남인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됐다.명신홍 목사는 11년간 대구서문교회를 섬기면서 영남지역 대표적 교회로 성장시켰다. 명 목사는 또 총신대학교 사당캠퍼스 건축을 위해 직장암 4차 수술까지 받은 몸으로 도미, 5만불을 모금해 와 지금의 본관 건물을 건축했다. 이외에도 제38회 총회장과 총회신학교 교수와 교장을 역임하면서 교단과 총신대학교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백남조 장로(부전교회)는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