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화 장로(대구서문교회·대신대학교발전위원회 사무국장)

최유화 장로(대구서문교회·대신대학교발전위원회 사무국장)
최유화 장로(대구서문교회·대신대학교발전위원회 사무국장)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 질문은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 나온 것이다. 이 질문으로 인해 기독교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로의 폭압으로 고통 받는 신도들을 버리고 피신하는 베드로에게 복음의 천명을 깨닫는 계기가 된, 위의 질문을 ‘쿼바디스 유니버시타스?’로 바꾸어 본다. 왜냐하면 그 만큼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서이다. ‘대학들이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대학의 생존을 위한 비장한 질문이기도 하다.”

위의 글은 2007년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발간하는 <대학교육>이라는 간행물에 당시 한 대학 총장이 쓴 권두언이다. 불교재단의 대학교 총장인 이분이 소위 엘리트들을 위한 책의 서문을 쓰면서, 기독교 역사의 획기적 사건 한 대목에 등장하는 ‘쿼바디스 도미네’를 인용했다는 사실이 당시에도 퍽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로마에서 큰 핍박이 시작되자 피신하던 중에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질문을 하자, 주님께서 ‘로마로 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스스로 죽임이 기다리는 로마로 돌아간 일이 그 총장님의 시각에도 기독교의 대전환점을 이룬 사건으로 비쳐졌던 것 같다.

순교, 박해, 고난, 핍박, 감금, 고통. 이러한 용어를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회적으로도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은 용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들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간다. 이 용어들은 곧 복음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신실한 믿음의 선조들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죽음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직 복음의 진가를 나타내고자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속에 잠재한 복음의 빛을 나타내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의 삶을 좌우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100여 년 전 어둠의 땅 조선을 향하여 목숨을 걸고 미국 등지에서 찾아온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 박해, 핍박, 고통 속에서 사역하다 이 땅에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의 대가는 지금 이 땅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과연 복음 때문에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해 본 적이 있는가?’ ‘주님을 만난 순간의 베드로가 목숨을 걸고 로마로 돌아갔듯이, 우리도 순수하게 복음을 위해 고통과 죽음 속으로 달려가 본 적이 있는가?’

베드로는 주님께 ‘쿼바디스 도미네’라고 질문했지만, 주님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쿼바디스 크리스챤스?(성도들이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신다. 우리 또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주님을 다시 로마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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