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문견산(開門見山). ‘문을 열어 산을 본다’는 뜻을 가진 이 사자성어를 김규동 관장은 몹시 좋아한다. 그 단어에 담긴 탐험가적 도전정신, 모험을 피하지 않는 자세로 실크로드 일대에서 긴 세월 선교사로 활동하며 동방교회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해왔다. 그 결실로 최근 자신의 모교인 광신대학교에 실크로드 고대기독교 역사유물관을 건립했으며, 개관한 지 1달여 만에 다시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선교사직 수행을 위해 대만 동부 화련으로 향했다. ▲유물관 개설 취지는?=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로지 복음의 동진을 위해 1000년(3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영화 중 하나는 라는 작품이었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인 고려시대 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2017년작 다큐멘터리 영화 후속작인 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질문 몇 개를 제기한다.로마 교황은 왜 14세기 고려 충숙왕에게 친서까지 동봉해 사신을 파견했을까? 한국역사에서 최초의 기독교인은 과연 고려시대의 왕일까? 해인사 팔만대장경에는 정말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 있을까? 영화는 이런 생경한 물음들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 답을 찾아가는 몇 가지 힌트
자유주의 맞서 정통신학 지키며 새로운 보수교단 건설 힘쓰다51인 신앙동지회1943년 폐쇄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복원하는 재건작업이 해방 이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해방 이듬해에는 조선신학교를 총회직영신학교로 승인하여 운영했다. 그러나 김재준과 송창근 등이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총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훼손하는 가르침이었다.당시 조선신학교 내 정통보수신학을 견지하던 학생들은 김재준 외 여러 교수들의 강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1946년 11월 12일 밤 이치복 학우 집에서 일단의 학생들이 일생을 동지
개혁주의 보수신앙 정체성 사수하며 교단과 교회 부흥 이끌다 정규오(丁奎五·1914∼2006)‘바른 신앙, 넓은 시야의 지도자’ ‘아름다운 원칙주의자’로 표현되는 해원 정규오 목사의 업적은 크게 3가지 분야로 평가할 수 있다.첫째, 신학과 신앙 분야 업적으로 ‘51인 신앙동지회’ 결성과 자유주의신학 퇴치운동을 들 수 있다, 조선신학교가 자유주의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그냥 묵과할 수 없었던 정규오는 정통신학을 사랑하는 51인 동지들을 규합하여 제33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 진정서(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총회는 51인 학생들의 진정서
본질에 충실했던 헌신의 목회자, 교단 세우고 개혁신학 지켰다명신홍(明信弘·1905~1975)명신홍은 네 가지 면에서 사표(師表)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첫째, 훌륭한 목회자였다. 목회사역에 있어서 항상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희생적인 목회를 하였다. 둘째로, 훌륭한 교회 행정가였다. 제38회 총회장으로서 총회를 평화스럽게 잘 지도하여 모든 면에서 원만하게 이끌어갔다. 셋째로, 훌륭한 교육자였다. 장로회 총회신학교 교수로서, 총회신학교 교장으로서 총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그의 공은 널리 알려졌다. 넷째로, 탁월한 설교가였다. 분명
“헌신 역사서 극복의 지혜 얻자”교단역사의식 제고 위한 노력에 관심을“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를 우리는 종종 역사에서 얻곤 합니다. 교회의 침체가 가속화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찾아온 위기시대에 과거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헌신과 공적을 살피는 작업이 다시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믿습니다.”공적연구발표세미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총회훈장상훈위원회 위원장 박창식 목사는 세미나의 의미를 힘주어 설명한다. 제105회 총회가 의욕적으로 전개하는 역사 찾기의 일환으로 새로 위원회까지 구성하며 착수한 사업이었지만 과정이 만만치 않
총신 근간 세우고 기반 다져 성장 시켰다교단신학 방향 제시하고 사욕 없는 재정 헌신 … 바른 신학 정립과 보급 힘써가난했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니 곧바로 전쟁, 그리고 고락을 함께 했던 과거의 동지들은 연신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하지만 신앙은 목숨보다 귀했고, 교회를 지키는 일이 생계를 지키는 일보다 소중했다. 그 마음으로 교단을, 신학을, 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믿음의 선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총회훈장상훈위원회(위원장:박창식 목사)와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가 공동주최해 4월
장수 신전교회(박창석 목사)의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4호 지정식이 거행됐다.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는 4월 23일 장수 신전교회에서 총회장 소강석 목사 등 총회 중진들과 동전주노회(노회장:서철승 목사) 관계자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성도들과 함께 역사사적지 지정식을 개최했다.이날 개회예배는 신종철 목사 사회, 위원회 회계 손원재 장로 기도, 사료분과장 이재천 목사 성경봉독, 소강석 목사 ‘억대의 연대를 기억하라’ 제하의 설교, 서철승 목사 축도로 진행됐다.소강석 목사는 “장수지역의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은 신전교회가
“기독청년운동 새 가능성 만들어 간다”전국CE 100주년 맞아 정체성 회복하며 정신 계승할 다양한 기념사업 마련기독청장년면려회 전국연합회(회장:윤경화 집사·이하 전국CE)는 올해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준비위원회(위원장:권정식 장로)를 구성하고, CE의 정체성을 고취할 수 있는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준비 중이다. 특별히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기독교 단체들이 점차 일반적인 사회단체로 변모하는 가운데, 기독교 정신을 가진 청년단체의 명맥을 자랑스럽게 이어가겠다는 각오다.다양한 100주년 기념사업 진행 중올해 전국CE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 깨운 CE맨의 헌신 잊지 말아야”발상지 안동교회 비롯 면려운동 정신 알리는 자료 곳곳에 … “진심 다한 섬김, 교훈 크다”2월 15일 우리나라 면려운동의 발상지인 안동교회, 6·25 당시 기독의용대 십자군의 본거지였던 대구서문교회, 역대 CE의 자취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부산의 CE역사관을 찾았다.교단 합동 후 첫 전국CE 회장을 지낸 모형호 목사가 인솔한 이 여행에는 현 전국CE 회장 윤경화 집사와 부회장 정순진 집사, 54대 회장 김경환 장로, 그리고 안동교회CE 창립멤버였던 권연호의 후손이자 전국CE 38~39대
복음과 겨레 위한 헌신적 발걸음 빛나다면려운동은 교회와 총회의 울타리에서 전개되어왔지만, 그 활동과 영향력은 시대와 사회 전체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복음 못지않게 겨레를 소중한 가치로 여겼던 면려회원들의 헌신적 자취는 그리하여 우리 역사 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 13명의 이야기를 간추린다. 김원벽(1894~1928)승동교회 초대 CE회장/건국훈장 독립장1919년 3·1운동에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연희전문학교 기독학생회장으로서 승동교회 예배당 지하에서 학생지도자 회의
강건한 신앙 무장, 사회 곳곳서 개혁 견인절제운동 등 민족계몽부터 무료개안·헌혈운동까지 사랑실천과 전도사역 맹활약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려운동으로 이 땅에서 이룬 수많은 열매들이 있다. 본 지면에서는 이 중, 두고두고 기념할만한 대표적인 사건 혹은 사역들을 일곱 가지 항목으로 구분해 소개한다. 항목 선정과 간략한 내용 소개는 기독청장년면려회전국연합회(전국CE) 제57대 회장을 지내고, 총회신학원 졸업 당시 졸업논문으로 ‘청·장년면려회의 역사와 사업에 관한 연구’를 작성하는 등 CE역사를 꾸준히 연구 중인 모형호 목사(새부안교회
긍지의 신앙운동 계승, 새 역사 창조한다1921년 2월 5일 경북서 출범 … 조국 향한 사랑 품고 전도사역·계몽사업에 진력‘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분연히 일어선 기독청년들의 면려운동(CE)이 이 땅에서 전개된 세월이 한 세기를 훌쩍 지났다. 본지에서는 한국CE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그 역사와 주요 사건 및 인물, 그리고 지금도 국내외 곳곳에 새겨지고 있는 CE정신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기획을 5회에 걸쳐 마련한다. 1921년 2월 5일은 공식적인 한국 기독청년면려회(CE)의 탄생일이다. 바로 이날 경북 안동읍교회에서
해마다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캐럴이 울려 퍼질 때면, 나는 25일 성탄절 새벽에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와 그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멘토이신 할아버지는 기독교인이며, 조국이 낳은 외과의사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로 살다 가신 한국의 슈바이처, 성산 장기려 박사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 계속 약물 치료를 해야 하나? 편안한 여생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수술 중 전이된 암세포를 어디까지 절제해야 하나?’ 나는 이러한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할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
거친 독립투쟁 현장서 자신을 불사르다겨레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시대의 전면에 등장하거나, 두고두고 위인으로 추앙되는 여성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소하다. 특히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선 여성들의 이름을 19세기 이전 공적 기록들에서 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이 땅에서 여성들이 자주적인 의식을 지닌 구국의 주체로 본격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무렵부터이다. 여기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계몽하여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는 일에 앞장선 기독교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이화학당은 그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