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획/ 한국CE운동 100주년] (1)새 숨결을 이 땅에 불어넣은 기독청년들
[역사기획/ 한국CE운동 100주년] (1)새 숨결을 이 땅에 불어넣은 기독청년들
  • 정재영 기자
  • 승인 2021.02.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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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의 신앙운동 계승, 새 역사 창조한다

1921년 2월 5일 경북서 출범 … 조국 향한 사랑 품고 전도사역·계몽사업에 진력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분연히 일어선 기독청년들의 면려운동(CE)이 이 땅에서 전개된 세월이 한 세기를 훌쩍 지났다. 본지에서는 한국CE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그 역사와 주요 사건 및 인물, 그리고 지금도 국내외 곳곳에 새겨지고 있는 CE정신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기획을 5회에 걸쳐 마련한다. <편집자 주>

1924년 서울 피어선성경학원에서 열린 기독청년면려회조선연합회 창립총회 참석자들.
1924년 서울 피어선성경학원에서 열린 기독청년면려회조선연합회 창립총회 참석자들.

1921년 2월 5일은 공식적인 한국 기독청년면려회(CE)의 탄생일이다. 바로 이날 경북 안동읍교회에서는 월리스 앤더슨(한국명 안대선) 선교사 주도로 경북노회기독청년면려회가 조직됐다.

초대회장 권중윤을 비롯해 경상북도 전역에서 모여든 기독청년들은 출범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해 6월 7일부터 9일까지 다시 안동읍교회에 모여 경북지역연합대회를 성황리에 치러낸다. 이 자리에는 무려 26개 지회에 600여 명의 면려회원들이 참여해, 교회와 사회를 위한 헌신을 결의했고 실제로 자신들의 삶에서 그 다짐을 실천했다.

1922년 연동교회 청년면려회 조직 후 촬영한 기념사진. 앞줄 맨 왼쪽에 앉은 인물이 한국CE운동의 산파역을 한 안대선 선교사이다.
1922년 연동교회 청년면려회 조직 후 촬영한 기념사진. 앞줄 맨 왼쪽에 앉은 인물이 한국CE운동의 산파역을 한 안대선 선교사이다.

이를 기반으로 다시 그해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0회 총회에서는 청년면려회를 전국 교회에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선교부 내에 면려청년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후 면려운동은 더욱 확산 일로를 달렸고, 마침내 1924년 12월 2일부터 8일까지 서울 피어선성경학원에서 기독청년면려회조선연합회 창립총회가 열린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공식적 기록들보다 한국CE의 연원은 수십 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단체가 1903년 발족한 황성기독청년회(YMCA)였고, 그 모태가 되었던 배재학당의 협성회 그리고 감리교의 엡윗청년회, 성결교의 성우청년회 등도 왕성히 활동했다. 이와 같은 기독청년들의 결집력은 1919년 전개된 3·1만세운동의 원동력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CE운동 초창기 전국적으로 전개된 금주금연운동은 대표적인 사회계몽운동이었다. 사진은 대구에서 열린 금주대회의 모습.
CE운동 초창기 전국적으로 전개된 금주금연운동은 대표적인 사회계몽운동이었다. 사진은 대구에서 열린 금주대회의 모습.

장로교에서도 이들과 궤를 같이 한 움직임이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면려운동(Christian Endeavor·약칭 CE)이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힘써 일한다’는 의미를 가진 CE운동의 시작은 19세기 미국에서 먼저 일어났다.

메인주 포틀랜드의 윌리스톤회중교회의 프란시스 에드워드 클라크 목사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청년들을 교회에 초청해, 함께 기도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 1881년 2월 2일 탄생한 조직의 이름은 기독교청년면려회(Young Peoples Society of Christian Endeavour)였다. 초대회장 스테이플을 중심으로 CE운동에 참여한 57명의 젊은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생활을 하며, 교회 안에서 더욱 유능한 일꾼이 되어 봉사할 것을 다짐했다.

전국교회에 조직된 청년전도대는 CE의 대표사역인 전도사업에 첨병역할을 했다. 사진은 청주제일교회의 청년면려회전도대.
전국교회에 조직된 청년전도대는 CE의 대표사역인 전도사업에 첨병역할을 했다. 사진은 청주제일교회의 청년면려회전도대.

이렇게 시작한 면려운동은 불과 4년 만에 미국 전역으로 번졌고, 이후 영국을 발판삼아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대되며 1895년에는 세계기독청년면려회가 결성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도 면려운동이 도입된다.

1898년(혹은 1901년) 새문안교회에서 조직한 청년회가 1913년 면려회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는데, 이를 한국교회 면려운동의 효시로 본다. 이후 1904년 평북 선천읍교회, 1916년 승동교회와 연동교회 등에서 면려회가 조직되며 점차 장로교회 청년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는다.

미국북장로교에서 파송 받아 안동에 주재하고 있던 안대선 선교사는 CE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교회에 들여오기 위해 앞장선 대표적 인물이다. 홍콩 등지에서 면려운동에 대해 소개하는 책자를 입수하는가 하면, CE창설자인 클라크 목사와도 서신을 주고받으며 운동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경북노회기독청년면려회 조직에 이어,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0회 총회에서 면려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며 CE운동을 전국 교회에 보급하는 사역을 주도한다. 1930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CE대회에 조희염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한다.

안대선처럼 의욕에 불타는 선교사들과 초대 조선CE 회장으로 선출된 박현식 등 한국인 청년들의 활약 속에 면려운동은 가파른 성장세를 갖춘다. 제12회 총회에 보고된 1923년 통계에 면려청년회수 64개, 실행회원수 1076명이던 규모는 불과 1년 새에 면려청년회수 178개, 실행회원수 3057명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난다. 1937년 열린 제26회 총회에서 면려회는 당시 27개 노회 전체에 면려청년회수가 1425개, 실행회원수는 무려 3만6743명에 이른다고 보고한다.

외양이 커지면서 사역도 다변화되었다. 창립 당시부터 표방한 대표적 사업인 전도사역과 계몽사업은 각 교회별로 청년전도대를 조직하며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전국적인 금주금연운동과 문서사역 청소년선교 등도 핵심활동들로 자리잡았다. 그 과정에 면려회원들은 교회에서는 부흥의 역군들로, 노회에서는 교회들의 친선과 연합을 도모하는 사신들로, 총회에서는 교계 안팎에 교단의 위상을 드높이는 든든하고 소중한 자원들로 크게 각광을 받았다.

비록 면려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운동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회원들의 가슴에는 조국과 겨레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열정이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앞장선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6·25전쟁 발발 시에는 십자군 결성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CE가 탄압의 대상이 되고,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이 같은 긍지를 가슴에 품은 후배들은 오늘날도 기독청장년면려회전국연합회(전국CE)와 산하 51개 로컬CE를 중심으로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전국CE는 한 세기 동안 흘러온 한국CE의 역사를 기념하며 2월 26일과 27일에는 중앙대회와 100주년 예배를, 4월 24일에는 기념대회를 각각 개최한다. 백년사 편찬 및 홍보물 제작 등과 함께 100주년 기념교회 건축과 미래자립교회들을 지원하는 봉사사업도 이번 회기 중에 추진된다.

“100년 동안 CE를 이끌어주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각종 기념사업을 통해 CE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아가고 선후배들이 더욱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 전국CE 72회기를 이끌어가는 회장 윤경화 집사와 모든 CE맨들의 일치된 다짐이다.

CE 정체성 드러내는 상징들

CE의 정신을 이미지화 한 마크. 가운데에 ‘그리스도를 위한 면려(Christian Endeavor)’의 약자인 두 글자가 새겨져있고, 그 주위를 ‘나의 마음을 주님께 바치나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or Meum Tibi Offero Domine’라는 글귀가 둘러싸고 있다. 둥근 원은 모나지 않은 아가페 사랑을, 하얀 바탕색은 순결하고 청아한 CE맨의 긍지를 나타낸다.
CE의 정신을 이미지화 한 마크. 가운데에 ‘그리스도를 위한 면려(Christian Endeavor)’의 약자인 두 글자가 새겨져있고, 그 주위를 ‘나의 마음을 주님께 바치나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or Meum Tibi Offero Domine’라는 글귀가 둘러싸고 있다. 둥근 원은 모나지 않은 아가페 사랑을, 하얀 바탕색은 순결하고 청아한 CE맨의 긍지를 나타낸다.

CE맨들에게는 일생에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여러 상징이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비롯해, 어떤 모임에서든 목청껏 외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강령과 3대 결의 같은 것이다.

CE맨들의 좌우명과도 같은 강령과 3대 결의 전문.
CE맨들의 좌우명과도 같은 강령과 3대 결의 전문.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라는 표어는 1636년 개교한 하버드대학교가 교훈으로 삼았던 ‘Veritas Christo et Ecclesiae(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진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가정처럼, 학교처럼, 놀이터처럼 여기고 자랐던 청년들이 자신의 교회 나아가 우주적인 교회 그리고 그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으며 살아가자는 뜻이 담겨있다.

CE강령과 3대 결의는 이 표어를 바탕으로 1924년 12월 2일 개최된 기독청년면려회조선연합회 창립총회 당시 제정되었다. ‘강령’에는 CE회원들이 공유해야 할 신조 목적 사명 생활원리 등이 명시되어있고, ‘3대 결의’는 표어 주장 작정이라는 3가지 항목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자’ ‘사람에게 신의를 지키자’ ‘나의 교회를 돕자’ 등 총 11가지 다짐으로 구성되어있다.

CE맨들의 영원한 애창곡인 <면려회가> 또한 ‘그리스도와 그 교회 위하여서’라는 가슴 뛰는 구절로 시작한다. 원곡은 B. D. 애클리가 작사 작곡했으며, 현재 불리는 3절은 1970년 당시 전국CE가 가사를 공모하여 당선작이 된 성영환(전국CE 24대 회장)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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