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전래 긍지의 역사 기억하고 계승해요”서천교계 기념사업 결실, 2016년 문 열어 … 다양한 성경 자료 전시 ‘큰 호응’충청노회(노회장:이효섭 목사)는 제106회 총회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서천·부여 등지의 소속 교회들과 함께 마량진한국최초성경전래지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로 지정해 주도록 헌의안을 올렸다. 2016년 서울 승동교회와 김제 금산교회를 시작으로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와 순교사적지 지정이 총회역사위원회를 통해 연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선교초창기 대부분이 감리교 관할 지역이었던 충청도에는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지정이
“총회 자랑으로 지켜주세요”“총회 산하단체와 전국 교회들이 즐겨 찾고 사랑하는 장소로 만들어주세요.”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 이사장 정진모 목사와 관장 이병무 목사는 마량포구가 한국교회사의 빛나는 자산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우리 총회가 앞장서주기를 당부한다. 비록 국가에서 선물처럼 만들어준 자리이지만, 이를 더욱 알차게 가꾸어갈 책임은 한국교회에 있다는 것이다.두 사람은 2003년 서천군 교계가 마량진을 최초성경전래지로 부각하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추진위원회에서 각각 총무와 서기 역할을 맡으며, 관련 사업의 전 과정을 함께 해 온
‘최초’라는 타이틀 못지않게 황해노회가 자랑스러워 하는 유산은 수난과 항거의 역사이다. 역시 에 새겨진 그 기록은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증거들이다.일제강점기와 6·25 전쟁기를 지나며 조국 교회들이 겪은 박해들은 대부분 공통적이었지만 황해노회 교회들이 겪은 고통은 조금 더 유난했다. 출발 단계에서부터 민족교회로서 정체성이 뚜렷했고, 어떤 불의에 대해서든 과감히 맞서 항거하는 지역적 분위기도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대표적인 사례가 황해도의 기독인들이 주도해 ‘면학회’를 조직하고 교육을 통해
한국교회 ‘처음’을 열고 굳건하게 다져왔다최초 한글성경과 첫 매서인, 자생교회 1호 소래교회 등 역사적 유산 가득‘최초’라는 타이틀을 갖는다는 것은 개척의 의미와 함께,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희소성 때문에 더욱 존중을 받는다. 110년의 세월을 가진 황해노회(노회장:양재근 목사)는 그 ‘최초’의 타이틀이 풍성하게 어우러져 탄생한 존재이다. 올 봄 황해노회사편찬위원회(위원장:함성익 목사)가 내놓은 에는 오직 황해노회만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유산들이 가득하다. 황해노회의 보배이자 한국장로교회의 보배들에 대한
역사가 잊지 않는 항거, 해방 여정의 위대한 걸음이었다제32회 하계올림픽이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1년씩이나 개최가 지연된 데다, 여전한 방역문제나 한·일 간에 얽힌 영토와 역사문제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올림픽은 참가선수들은 물론 온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제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역대 올림픽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스포츠 영웅들이 탄생했고, 이들의 빼어난 성적으로 온 겨레가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특별
거듭된 혼돈과 상처 속에서 이 땅의 교회들이 스스로에게 긍지를 잃어버리는 시대입니다. 어떤 이들의 강변처럼 기독교는 우리 사회와 역사 속에서 정말 무익한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진실을 증명해 보여주는 전시회가 있어, 혹여 지나친 자괴감에 빠져있을지도 모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최자가 다른 데도 아닌 무려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2번 출구방향으로 직진하다보면, 주한미국대사관과 경복궁 사이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나타납니다. 임시정부 시절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를 총
청년면려회(CE) 운동은 민족운동의 양상을 띠었다. 1921년 경북 안동읍교회에서 창립한 CE 주도세력들은 그보다 2년 앞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주동자들이었고, 옥고를 겪은 자들이었다. 또한 정인과 이대위 등은 수양동우회, 흥업구락부 사건 등으로 일제에 검거된 이들로 CE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또한 CE는 민족문제, 교회문제, 사회문제 등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표적인 활동들이 일제강점기 금주 금연을 중심으로 전개된 기독교 절제운동, 민족 각성운동으로 시작해 일제의 대대적
‘세계면려회 일원’ 자의식 갖고 시작한국장로교 청년운동 위상 높였다제72회기 기독청장년면려회전국연합회(회장:윤경화 집사·이하 전국CE) 주최로 한국CE 100년 역사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고, 역동적인 미래를 위한 과제를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6월 26일 광신대학교에서 열렸다. 본 지면에서는 학술대회에 발표된 기조강연과 주제발표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소개한다. 1921년 조선기독청년면려회 창립부터 1938년 해산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면려회 창립 발전 해체까지를 집중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제104회 총회에서 ‘한국기독교의 섬’이라는 최초 타이틀을 얻은 백령도의 공식 지정식이 오랜 기다림 끝에 거행된다.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가 코로나19 확산 등의 문제로 1년 넘게 연기되었던 ‘한국기독교의 섬’ 지정식과 중화동교회의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식을 마침내 7월 13일 백령도 현지에서 개최하는 것이다.본지에서는 이를 앞두고 전체가 예장합동 소속인 백령도 관내 10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본다. 근거자료로는 2002년 초판이 나온 지 18년 만인 지난해 제2판이 출간된 를 참고했다. 저자인 이
‘재미한족연합위’ 조직, 애국신앙 실천하다조국과 겨레를 위해 온 몸을 던진 선열들을 추모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흘러온 역사 속에서 애국신앙의 표본으로 살다간 믿음의 선배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후세로 살아가는 한국교회에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국가보훈처가 선정해 발표하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에 올해에도 다수의 기독인 애국지사들이 선정됐다. 그 중에서 올 봄을 장식한 네 명의 인물과, 이들의 이름을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든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소개한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결성각자 이념과 정치적
기독 애국지사 아픈 투쟁기 입체적 조명민족대표 33인이 앞장선 3·1운동과 뒤이은 임시정부 수립,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들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활약한 지도자들. 한국교회는 독립운동사 전반에 걸쳐 자랑스러운 그 빛의 순간들 이면의 그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정진호·도서출판 울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쩌면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역사의 순간들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기독인 애국지사들이 몸 바쳐 이룬 영광과 긍지의 이야기들도 등장하지만, 어제의 영
위기마다 당당한 신앙양심의 길 걸어가다일제강점기 대대적 탄압에도 교회 지켜 … 1953년 작성 당회록에 영욕의 세월 담아유치장에 갇힌 지 3개월이 지났다. 그 때까지 아무도 갇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간수의 명령에 따라 기상하고, 끼니를 때우고, 취침하는 나날이 반복될 뿐이었다. 답답했다. 바깥세상이 보고 싶었고, 가족들이 그리웠다.1943년 6월 20일 안치대 집사는 아내와 논에서 보리를 베고 있다가, 진량지서 순사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붙들려왔다. 붙잡힌 사람은 안 집사만이 아니었다. 봉회교회(현 진량제일교회)를 함께
남자와 여자, 둘 곁에 선 나무 한 그루와 주변을 얼씬 거리는 뱀 한 마리. 그렇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악과 사건의 한 장면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500년 전, 누군가가 이 모습을 토판에 새겨 넣은 작품이 있다. 한국의 성도들은 바로 이 귀한 물건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다.충남 태안에 소재한 성경&메소포타미아유물관(관장:김남철 목사)은 전 세계에서 성경 속 이야기들과 관련된 유물과 역사자료들을 수집해 20년 넘게 전시하고 있다.인류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한 모습을 담은 6000년 전의 공예품, 노아대홍수의 사적이 기술된 길가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는 총회 역사상 최초로 교단의 공로자들에 대한 훈장 수여가 이루어졌다. 개인 9명, 단체 3곳에 대해 이루어진 이번 훈장 수여는 해방 이후 거듭된 장로교 총회의 극심한 혼란기에 교단 정체성을 세우는데 헌신한 인물들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었다.앞서 제105회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위원장:오인호 목사) 훈장상훈위원회(위원장:박창식 목사) 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는 훈장 수여 후보 물망에 오른 인물과 단체를 대상으로 공적연구발표세미나를 개최했으며, 이 중 개인 6명과 단체 3곳을 수여자로 선정했다. 여기에
진리의 길 좇아가며 신앙의 중심 지키다비옥했던 선교 기반 바탕, ‘신사참배 거부·51인 신앙동지회’ 등 보수신앙 사수 앞장남평교회가 설립된 것은 1900년의 일이다. 당시 이웃 산포면의 구소리교회에 출석하던 남평읍의 서관서 최익삼 조치일 등 7~8명이 이지서 씨의 집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남평교회의 첫 걸음이었다.사실 남평읍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이보다 앞선 1897년 3월경으로 추정된다. 미국 성서공회의 대리인 피에터스가 전라도 일대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남평지역에도 성경을 비롯한 복음전도용 인쇄물들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