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조선인 곁을 지킨 헌신의 삶 빛나다인재 양성·독립운동에 열정적 활동 … 한글 성경번역 사역에 힘쓰던 중 선박 사고로 순교“그는 조선을 돕다가 죽었소. 그를 이리 불명예스럽게 죽게 해선 안 된단 말이오.”(드라마 중에서)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데 그는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침몰하는 뱃속에서도 자신의 목숨보다 조선인들의 목숨을 지키는 게 더 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빨리 나오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일행의 간곡한 외침조차 소용이 없었다.1902년 6월 11일 오후 2시 미국북감리회 소속의 선교사 헨리 거
만세운동의 아픔과 진실, 기록하고 고발하다탑골공원서 제암리까지 함성과 참상 카메라에 담아 … 생생한 목격기와 사진 세상에 널리 알려지난해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에는 겨레의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던 시절, 한국인들을 물심양면 돕다가 목숨을 잃는 미국인 선교사 ‘요셉’이 등장합니다. 짧은 등장으로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요셉’의 캐릭터에는 이 땅의 자주독립, 빈민구호, 의료봉사, 교육계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선교사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파란 눈을 가진 인물이 있다. 바로 캐나다 출신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선교사이다. 생전의 그는 자신이 캐나다인이기보다 한국인이길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이름을 석호필(石虎弼)로 지었다. ‘석(石)’은 굳은 의지, ‘호(虎)’는 호랑이, ‘필(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굳은 마음을 나타냈다.그렇다. 그는 누구보다 한국인을 굳은 의지로 도왔다. 특별히 일제가 무참히 한국을 유린할 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1919년 3월 1일, 나라를 다시 찾기 위
자발적 신앙공동체, 전남 동부 복음 거점되다복음 접한 농촌마을 세 친구서 시작 … 수난의 역사 굳건히 견디며 교회사 중요 위치에 자리매김산세가 깊고 계곡이 맑아 과연 곰들이 자주 출몰했을 법하다.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의 접경인 백운산 자락 깊숙이 위치한 웅동마을 이야기다. 지금은 저수지 축조 등으로 외부에서 고립된 동네처럼 변했지만, 본래 웅동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빈번히 오가는 길목에 위치했다.이 조그만 동네에 첫 복음이 들어오게 된 계기는 특이하게도 1985년 발생한 ‘을미사변’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있다. 명성황후를
역사 고비마다 신앙중심 지키며 진리 사수대구지역 두 번째 교회로 설립, 107년간 위대한 신앙지도자 배출 거대한 영향력 끼쳐“망국의 비통, 일제 야만의 횡포, 8·15해방 후의 혼란, 민주·공산의 분쟁, 보수주의·자유주의의 다툼, 친일파와의 갈등,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이단사설 사이비 신앙운동 등 이 모든 혼란과 암울함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자세로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이성헌 원로목사가 1세기를 넘어 7년을 더한 시점에서 회상하는 대구서문교회(이상민 목사) 역사는 이처럼
철저한 신앙 전통 기반, 강력한 공동체 지키다일제강점기ㆍ한국전쟁 혼란 속에도 믿음 행보 튼튼 …“자랑스런 역사 기억과 보존 진력”대구 동편 고을들을 한 데 묶어 선인들은 반야월이라 불렀다. 새벽녘이면 둥실 떠오른 어여쁜 반달이 두루 비추며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네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100여 년 전 이 동네에는 은은한 달빛처럼 포근한 은혜의 복음이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이곳 사람들이 세운 신앙공동체는 처음에는 지역 이름을 따 신기교회로, 예배당을 옮긴 후에는 동호교회로, 나중에는 아예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명칭을
‘하늘의 복’ 이 땅에 나누는 사명 멈추지 않았다순박한 농촌마을 공동체에서 출발, 아름다운 믿음 열매 쌓으며 선한 영향력교회로 성장현직 국무총리의 축하영상이 교회로 도착했다. 따로 부탁한 적이 없는데, 총리실에서 먼저 자발적으로 보내온 것이었다. 덕택에 대구 범어교회(장영일 목사) 헌당식에 풍성한 이야깃거리 하나가 더해졌다. 사연은 1950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전쟁이 발발하자 피난민들의 발길은 낙동강 전선 쪽으로 이어졌다. 부산은 물론이고 대구에도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렸다. 시내 어디에서든 먹을거리와 잠자리가 필요한 이들이
믿음으로 인내하며 말씀 중심 신앙 놓지 않다배위량ㆍ안의와 선교사가 내린 뿌리 통해 영적 지경 넓혀 … 역사국 조직, 발굴작업 활발왕복 육십 리였다. 젊은 남정네들이야 그 먼 길 마다않고 오갈 수 있었겠지만, 나이든 부녀자들에게는 만만찮은 거리였다. 혹독한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까지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손수 도시락까지 챙겨가며 예배하기 위해 매주일 행군에 나섰다.대구 사월교회(최영인 목사)는 이처럼 복음에 사로잡힌 이들로부터 시작됐다. 사월교회의 뿌리에는 영남선교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미국북장로교선교부 소속 윌리엄 베
흔들림 없는 애국신앙, 교회 공동체 긍지되다강직한 신앙 전통 이어온 여수제일교회서 사역, 한국전쟁 중 동료 교인들과 순교전도사님은 팔 하나와 눈 한 쪽이 없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 앞에서 함부로 놀리며 장난치거나, 반대로 무섭다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연을 알고 난 뒤에는 모두가 그녀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여수제일교회(김성천 목사)의 순교자 윤형숙 전도사 이야기다.윤형숙 전도사는 1900년 여수 화양면에서 태어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가난한 살림 때문에 친척인 남원의 윤성만 장로 댁으로 옮겨 살며 기독교 신앙을
빛나는 복음의 역사, 강직한 공동체 지켜오다황금교회, 인재 양성 진력 지역 발전 이끌어 … 신전교회, ‘예수마을’ 전통 바탕 지경 넓혀가무주 진안 장수 등 전북 동부의 산악지대에는 선교사들을 통해 혹은 자생교회들을 통해 일찌감치 복음이 들어갔다. 그곳에서 보통의 도시나 농촌과는 색다른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교회들이 적지 않다. 이 중 진안 황금교회(추형호 목사)와 장수 신전교회(박창석 목사) 등 두 교회가 동전주노회의 헌의로 제104회 총회에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청원을 한다. 대체 이들 산골교회에는 어떤 자랑거리들이 있는 것일
아픈 역사 공유한 형제교회들, 믿음 열매 ‘풍성’같은 설립자에 전쟁과 수몰 아픔 함께 겪어 … 순교신앙 자긍심 지키며 생명의 길 개척곶감하면 경상도 사람들은 상주를 떠올리고, 전라도 사람들은 완주를 떠올린다. 완주에서도 동상면의 곶감 품질은 최고로 친다. 깊고 높은 산악지대에서 잘 자란 단감을 적당한 식감으로 말린 그 맛은 무엇에도 양보하기 힘들다.이 산악지대에서는 곶감만 익어간 것이 아니다. 일찍 들어간 복음이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심성에 스며들며,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들로 익어갔다. 학동교회(이석윤 목사) 수만교회(이현규 목사)
철저한 신앙 고백, 긍지의 복음전선 구축하다초기부터 왕성한 신앙 열정 바탕 공동체 이끌어 … 삼신학교 세워 민족교육 강화익산시 삼기면 서두리는 불교 영향력이 몹시 강력한 지역이다. 이런 동네에 120년 전 복음이 들어와 자리 잡고, 오늘날까지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서두교회(박상철 목사)의 설립은 1898년 11월에 이루어졌다. 이 마을에 살던 정정보가 전주에 나갔다가 마침 노방전도 중이던 미국남장로교 전주선교부 소속 테이트(한국명 최의덕)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교회 신앙문화 원형 귀하게 지켜오다초기 선교사 활동 이후 철저한 신앙전통 바탕, ‘복음의 땅’ 긍지의 역사 이어가대한민국 서쪽 끝 섬에는 그 모양이 힘차게 비상하는 학의 하얀 날개깃을 닮았다고 해서 백령도(白翎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청도 소청도 등과 함께 군도를 이루는 이 섬은 중국 쪽에서 한반도로 접근하는 배들의 관문 역할을 했다. 두 세기 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선교사들에게도 그랬다.한국 땅을 가장 먼저 밟은 네덜란드의 귀츨라프 선교사는 1832년 7월, 훗날 대동강에서 순교한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는 1
역사보존과 계승 체계적 관리가 교단의 저력임진왜란 중 까만 재로 사라질 뻔 했던 이 전주사고를 담당하던 관리와 백성들의 헌신으로 무사히 보존돼, 오늘날 한국사는 물론 다양한 분야 연구의 무궁무진한 원천이자 귀중한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다. 이 이야기는 역사자료 관리가 때로는 역사 그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교훈으로 풀이된다.교회의 역사 혹은 총회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수고와 정성을 통해 보존되고 계승되어 왔다. 헌신적인 관리자 그리고 이에 대한 안목을 가진 교단 수뇌부의 뒷받침이 있다면 한국교회에도,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을 총회역사위원회 사료분과 임원들과 함께 찾았다. 전시실과 수장고 등을 둘러보며, 담당 직원으로부터 역사정보자료실 실태와 운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특히 건물 두 개 층에 걸친 사료보관실을 관람했을 때 일단 그 방대한 규모가 심히 놀라웠으며, 철저하게 관리되는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해당 교단의 수십 년 지난 자료들까지도 폐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었으며,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체제가 갖추어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