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 근간 세우고 기반 다져 성장 시켰다
교단신학 방향 제시하고 사욕 없는 재정 헌신 … 바른 신학 정립과 보급 힘써

가난했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니 곧바로 전쟁, 그리고 고락을 함께 했던 과거의 동지들은 연신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하지만 신앙은 목숨보다 귀했고, 교회를 지키는 일이 생계를 지키는 일보다 소중했다. 그 마음으로 교단을, 신학을, 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믿음의 선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
총회훈장상훈위원회(위원장:박창식 목사)와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가 공동주최해 4월 16일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교단 발전과 위상을 세운 지도자들에 대한 공적연구발표세미나’는 바로 그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작업이었다. 본지는 총 4회에 걸쳐 이번 세미나에서 조명한 인물과 단체들의 면면을 살피며, 다시 맞은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힘을 얻고자 한다. <편집자 주>

박형룡(朴亨龍·1897~1978)

박형룡 목사
박형룡 목사

박형룡은 한국 장로교회가 배출한 최초의 변증학자요, 조직신학자로서 평양 장로회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한인 목회자들을 길러 교단의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기독교 근대 신학난제 선평>(1935)의 발간과 1935년 제24회 총회 결정에 따라 표준성경 주석 편집 책임을 맡음으로 교단 신학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근거한 정통 칼빈주의를 확고히 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다.

만주 봉천신학원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에 벌코프의 조직신학 교본을 중심으로 조직신학 교과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해방 이후 총신의 신학 교재가 되고, 오늘까지도 신학의 표준적인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다.

1948년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특별기도회 시간을 통해 경영자가 되라(후일 ‘신자가 되라’로 바뀜),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 등 5가지 교훈을 처음으로 공표했다. 그리고 이 신학교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계승하는 학교임을 천명했다. 교단은 박형룡의 이러한 용단에 힘입어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교단 신학교를 비로소 갖는다. 이 학교는 1951년에 장로회총회신학교로 개명하고, 1959년 통합과의 분열 후에 총회신학교로, 1969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으로 개명한다.

박형룡은 24년간 총신에서 조직신학 강의를 전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배운 수많은 교단 목회자들의 신학적인 근간을 세워주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 직접 교단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제자들을 통해 교단이 신학적으로 바른 방향으로 갈수 있도록 지도했다.
발제자/이상웅 교수(총신대)

백남조(白南朝·1913~1988)

백남조 장로
백남조 장로

백남조 장로의 생애는 칼빈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기업활동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의 삶이었다.

그에게는 물질의 청지기 정신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 사업의 이익을 개인의 쾌락이나 영달을 위해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고, 본 교회를 짓는 일과 부지 확장에 앞장서고, 이웃 교회 건축에 헌신하고, 총신대학교 사당동 부지를 헌납하는 불멸의 헌신을 했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실한 예배자였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의 기도와 예배를 드렸다. 그것도 온 가족이, 거기에 총회와 총신을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았다.

동시에 명예를 탐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총신대학장 박영희 박사가 백 장로의 자택을 방문하여 “총신에 끼친 공적을 생각하여 명예 박사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권했다. 이에 대해 백남조 장로는 “아 아니, 불학무식한 사람이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박사 학위라니 당치도 않습니다”라고 사양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대한 책임감은 거인 같았다. 총신대 초대 재단이사장을 시작으로 제6대 재단이사장까지 21년간 정직과 성실로 섬겼다. 성지순례도 마다하고, 회갑과 고희 기념식도 못하게 하고, 절약하여 총신을 위해 헌신했다. 총신대학장을 지낸 김희보 박사는 백 장로가 사업이 어려울 때도 총신을 위해 헌신했다면서 “항시 학교를 위하여 무엇을 바칠까를 생각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백남조 장로처럼 사욕 없이 헌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물이 앞으로 많이 나올 수 있다면 우리 총회와 총신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발제자/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박윤선(朴允善·1905~1988)

박윤선 목사
박윤선 목사

박윤선은 일생동안 오로지 성경을 더 깊이 깨달으려고 노력했던 분이었다. 그 결과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주경하는 세계적인 대업을 이루었다. 한국교회 전체가 그의 신학적 공로에 크게 빚지고 있다.

박윤선이 한국교회 무대에 등장한 것은 정통신학에 대한 도전이 심각할 때였다. 그는 평양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훈련 받은대로 가르치기와 글쓰기와 목회를 통하여 이 도전에 맞섰다. 그의 사역이 도전에 대한 방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칼빈주의자로 자각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에 기초한 ‘바른 신학’을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박윤선이 ‘한국교회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가 총신에서 사역할 때였다. 총회신학교 교장과 신학대원장 겸 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총신에서 정년퇴임을 하였다. 성경 66권 주석을 완간하고 출판기념예배를 드렸던 곳도 총신이었다. 총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러한 총신과 박윤선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하나의 난점은 그의 만년에 총신을 떠나 합동신학교를 설립한 일이다. 학교 운영에 대한 불의에 항의하는 것이나 분노는 이해할 만하지만 새로운 신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교단을 만들어 교회를 분열로 몰아가는 게 명약관화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서 박윤선 박사의 신학을 배제한 채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말 그대로 우리가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으로서 위상을 세우려면 우선 박윤선의 신학에 대한 포용과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할 것이다.
발제자/정성구 박사(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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