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칼럼-크리스천 랩소디] 랩소디
[주필 칼럼-크리스천 랩소디] 랩소디
  • 기독신문
  • 승인 2019.01.2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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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선 목사(주필)

최근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영화중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다. 여기에 쓰인 ‘랩소디(rhapsody)’란 음악의 한 장르며 악곡의 제목에도 사용한다. 유명한 클래식에서도 볼 수 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등이 있다.

랩소디를 ‘광시곡’이라고도 번역하지만 이것은 일본식 한자어다. 많은 서양 학문들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까닭이다. ‘광시곡’이라고 쓸 때 사용된 한자 ‘광(狂)’은 미쳤다는 의미이다. 리스트가 자기 곡에 <헝가리 미친곡>이라고 이름을 붙였겠는가?

랩소디는 일반적으로 ‘즉흥성을 중시한 악곡의 형식으로 서사적이고 영웅적, 민족적 색체를 지니는 환상적인 기악곡’이라고 정의하는데 상당히 자유로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롭다는 것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전음악은 매우 정형화된 틀이 있었다. 교회음악을 많이 작곡한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헨델이 있다. 그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음악적 룰이 있었다. 그들의 화성법, 대위법 등은 매우 수학적이다. 원래 음악이 수학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철학자이자 수학자며 음악가였다. 그는 수학적 원리를 사용하여 음계를 정리했다.

현대로 오면서 음악은 훨씬 자유로워진다. 일반적인 조를 사용하지 않는 무조음악도 만들어지고 재즈 형식도 연주되며 새로운 음악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대중의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세상을 지키는 데는 완벽한 룰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미있고 역동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룰 안에 너무 경직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필요하고 그 자유로움을 통한 창조적 시도가 필요하다.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성경이라는 바꿀 수 없는 룰 속에 사는 것이리라. 그러나 때로는 랩소디가 필요하다. 룰을 벗어나지 않지만 보다 넓게 세상을 보며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훨씬 재미있고 신나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크리스천이란 늘 딱딱하고 점잖게 보이는 무채색만 띠는 것이 아니다. 훨씬 컬러풀한 아름다움,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살만한 세상, 즐거운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룰을 말씀하시면서도 그 정신을 더 중요시 했고 우리의 일상에 적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속에 진정한 경건이 느껴진다. 신약에서 선포하는 진리 안에서의 참된 자유란 일본어식 번역처럼 결코 미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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