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참된 기준은 돈이 아닙니다. 돈이 주인이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그는 어쩌면 하나님의 복을 모르거나, 거기서 떠난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게 바로 복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과 찬양은 우리들에게 늘 귀감이 되고 도전을 줍니다.“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시 16:2)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복인 것입니다.“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한국 기독교계에서 ‘축제’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축제’라는 말의 의미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제는 이방종교의 사육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내용은 주로 육체적 음란과 혼음과 음주의 광란이었다.더구나 우리 한민족에게는 ‘축제’랄 게 별로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 음악이나 춤들도 한풀이, 제례악 등 한 맺힌 인생의 삶에 대한 절규를 표현하거나 격식을 따지는 것들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기독교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복음적 축제를 창안하고 창작 보급에 나설 때이다. 사탄적, 육체적
사랑은 ‘나눔’입니다. 사랑을 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에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누면서 행복해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눔과 행복은 서로 다른 단어이면서도, 온전히 같은 말입니다.짐승은 쟁취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내 것을 얻기 위해 공격하고, 다른 존재를 죽이며 기어이 내 것을 만듭니다. 그리고 행복해하고 만족해합니다. 이것이 짐승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누기 위해 존재합
그리스 메데오라 산지를 찾아가는 순례자들은 산지에 있는 큰 바위들을 놀라움과 감탄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시편 121편에 성전을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위대한 자연 앞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노래했던 모습이 연상된다. 마치 그 단단한 바위로부터 우리를 도울 힘이 나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그러나 순례자들은 곧바로 반석이나 높은 산들이 우리에게 결코 도움의 근원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할렐루야!“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시인 박철현 장로는 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저녁 바다 태양은 자기를 태워버리고 나서는 옹기종기 모인 어촌을 태우고, 마을 뒷산 숲을, 그것도 모자라서 산정 조개구름마저 태워 버린다. 온 세상을 태워 버리는 붉은 태양, 우리네 시름이나 태워주었으면….”오순절 성령강림에 빛(태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보혜사가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서편으로 지면서 온 세상을 태워버린 저 불붙는 석양처럼, 모든 인간과
‘자녀 양육’하면, 우리는 유대인의 어머니들을 떠올립니다.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면, 그 사람을 유대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어느 민족이라도 어머니만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는 일종의 모계사회 성격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유대인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끼치는 교육의 영향력이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유대인들은 또한 그 아이만이 가진 재능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주기로도 유명합니다. 이처럼 특별한 어머니들의 교육이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
파묵칼레란 ‘목화(파묵)’와 ‘성(칼레)’이라는 두 단어가 조합을 이루어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가졌다.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에 위치한 석회붕 온천지대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교회의 배경지가 되기도 한다.파묵칼레의 새하얀 석회층 계단으로 흘러내리는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기록된 성경이 그 말씀 자체의 능력을 가진 것은 물론 놀라운 사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며 감동을 금할 길이 없었다.사도 요한이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라는 대목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며 자유를 함께 주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의 첫 조상은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 밖으로 나가는 교만을 보이다가, 결국은 자유를 잃었으며 죄의 사슬에 얽매었고 죽음에 이른다. 인류가 자유를 갈망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제퍼슨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그처럼 많은 사람이 자 유는 목숨보다 귀한 것이라고,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유라면서 절규하지만 과연 생명 없는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참된 자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한반도 다섯 배 크기인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남미 아르헨티나와 칠레 양국 간 1600여 km에 걸쳐 빙하와 호수와 산과 평원과 수목이 잘 어우러진 국립공원이다. 2010년 첫 암수술을 마치고 4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완치에 가깝도록 회복이 되자 생애 마지막 여행지가 될 지도 모르는 파타고니아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단하였다.한 달 전부터 장비를 미리 장만해 착용하고 새벽기도 후 산행을 하면서 체력을 준비했다. 마침내 2014년 2월에 안식월을 얻어 파타고니아 12박 여행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
유난히 폭포를 좋아하는 필자는 편집장이었던 블로거 DL Cade가 사진작가 ‘500px’ 회원들로부터 소개받아 죽기 전에 방문해야 할 25개의 폭포를 편집한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그 중에 첫 번째로 꼽힌 것이 베네수엘라 카나이마 국립공원(Canaima National Park)에 있는 엔젤폭포(Angel Falls)라고 한다. 물론 필자도 사진으로만 보았지 직접 가보지 못한 폭포들 중에 하나다. 엔젤 폭포가 왜 첫 번째인지는 먼저 그 높이가 말해준다. 무려 979m 높이에서 폭포수가 낙하하는 세계
구약의 역사와 예수님의 행적이 남겨진 예루살렘을 가리켜 흔히 성지(聖地)라고 하며, 크리스천들은 평생 한번이라도 그곳을 방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밟아 보고 싶어 한다.오늘 소개하는 사진은 예루살렘성전 동편에 위치한 미문 또는 황금문 건너편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부터 감람산 기슭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을 촬영한 장면인데, 온통 무덤들뿐이다. 본래 황금문은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신 문으로, 성벽의 다른 문들보다 아름답기 때문에 미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은 출입을 할 수 없도록 아예 문을 막아 버렸다. 그
아프리카 각지에 산재하는 동물보호 국립공원(Safari)안에서는 동물원 같은 데서 흔히 보는 철망 울타리는 찾아볼 수 없고, 드넓은 평원과 강과 호수와 산기슭에 갖가지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공생 공존하는 평화스러운 장면이 펼쳐진다.세계 각처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적잖은 시간과 돈을 들여 사파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도 ‘빅 파이브’라고 일컫는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물소(buffalo)’ 등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떼를 지어 이동하는 동물들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다.이른 새벽에 일어나 사륜 지프
낯선 곳에 처음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먼저 국립공원(National Park)을 찾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 나라에서 가장 멋진 비경(秘境)이 있는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때문이다.몽골도 예외가 아니다. 몽골의 대표적 국립공원으로는 텔레지(Gorkhi-Terelj National Park), 만년설이 녹은 쪽빛 물색깔로 호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라고 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흡스골(Lake Hovsgol National Park) 등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이다. 와이오밍, 몬태나, 아이다호 등 3개 주(州)가 함께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필자가 아직 가보지 못했으나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방문하고 싶은 곳 중 하나이다.이번 사진은 옐로스톤과는 대조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이 있는 필리핀 카비테(CAVITE)주 타가이타이(Tagaytay, 타갈로그어 Lungsod ng Tagaytay)의 타알호수(Taal Lak
서구에 가면 첨탑이 높은 중세시대의 석조 예배당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예배당들이 교회당인지 교회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까닭은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들 대부분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이름을 붙인 예배당으로서,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성화와 유물들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오늘의 사진은 ‘이스트라반도의 두브로브니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크로아티아의 로비니(Rovinj) 항구의 유페미아 교회당(St. Euphemia Church)을 역광사진으로 흑백 처리한 것이다. 유페미아는 악명 높았던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