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왕 목사의 아름다운 자연사진 이야기](14)크고 높지 않아도 중심이 되는 교회-유페미아교회당

서구에 가면 첨탑이 높은 중세시대의 석조 예배당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예배당들이 교회당인지 교회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까닭은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들 대부분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이름을 붙인 예배당으로서,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성화와 유물들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진은 ‘이스트라반도의 두브로브니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크로아티아의 로비니(Rovinj) 항구의 유페미아 교회당(St. Euphemia Church)을 역광사진으로 흑백 처리한 것이다. 유페미아는 악명 높았던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주후 245~305)의 기독교 탄압이 극에 달했을 때 15살 나이로 박해를 당한 인물이다. 끝까지 배교하지 않던 유페미아가 결국 사자에게 던져져 죽은 뒤, 그의 유해를 안치한 기념교회에는 지금도 여전히 석관이 보존되어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 황제들 중에서 기독교를 가장 강력하게 박해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303년 2월 기독교 탄압을 위한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 교회와 성물, 성전 등을 파괴하며 기독교인의 모임을 불허한다고 공표했다. 당시 기독교가 만연한 제국동방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소아시아에서는 기독교인의 봉기가 일어났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단호하게 군대를 보내 진압했다. 또한 사제들과 주교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고, 그들이 로마신의 제의에 참석하면 풀어주었다.

304년에 내린 마지막 칙령에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고발이 없어도 추적하여 고문할 수 있도록 하였고, 모든 사람이 로마신의 제의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령하며 이를 어기면 사형이나 강제노역에 처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당시 배교자와 더불어 순교자가 가장 많이 나왔는데, 그 수는 3000~4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박해는 주후 309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디오클레티아누수가 주후 313년에 죽고 왕좌를 이어받은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기독교 박해는 완전히 끝난다. 드디어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으로 인해 자유와 해방이 선포되고, 중세시대를 석권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유페미아 교회당은 로비니 마을 중앙의 제일 높은 언덕에 우뚝 세워져있다. 종탑 높이가 무려 60m에 이르러 멀리서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마침내 교회당에 이르면 유료로 입장하는 종탑 앞에 서게 된다.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로비니 해안 전경을 내려다보는 재미 때문에 이 종탑은 특별한 명소가 되었다.

풍경을 촬영할 때는 대부분 해를 등지고 찍기 때문에 사진 속에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다 드러난다. 사실 이 때문에 주제를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역광으로 찍게 되면 밝은 빛 때문에 모든 사물이 어둡게 찍히게 된다. 유페미아 교회당 사진은 시야에 바로 들어오는 해를 교회 종탑으로 가리고 역광 처리한 작품이다. 종탑 주변에 원형의 빛 테두리가 나타나서 신비감(?)이 드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논문을 쓰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의 논문을 많이 읽고 참고하거나,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이 유명 작품을 흉내내보는 것처럼 사진을 배울 때도 비슷한 과정을 밟는 게 좋다. 처음부터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좋은 작품 사진을 많이 보고 그 구도나 노출을 유심히 관찰하여 모사하는 사진을 많이 찍어 보아야 한다.

물론 자기 사상이나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논문은 표절이 되는 것처럼, 사진도 모사 수준에 그치면 안 된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구도를 잡거나, 노출이나 보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때 화가의 화풍(畵風)처럼 점차 자기만의 사진세계를 이룰 수 있다.

유페미아 교회당을 둘러보고 해변으로 내려와서 로비니마을 풍경을 이리 저리 사진에 담으며 느낀 것 중 하나는 교회당이 마을이며 해변과 잘 어우러져 풍경을 더 아름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절간처럼 산 속에 있지 않고 사람이 사는 마을에 위치한다. 십자가는 교회의 로고요, 사랑의 심볼이다. 십자가만 높이 세워져있고 내부로는 미움과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져 있다면 그 건물이 아무리 크고 높을지라도 마을의 중심이 되거나 마을을 아름답게 할 수 없다.
오늘의 교회들은 유페미아 교회당 사진처럼 자신의 존재로 마을을 더 아름답게 돋보여줄 사명이 있다. 세월이 갈수록 교회당은 점점 커지고 현대화되는 반면, 십자가는 점점 작아지고 심지어 아예 보이지 않는 수준이 되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교회가 간직할 십자가 사랑마저 식어가는 것이다.

주변 마을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교회는 외형적으로 크고 높은 건물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사랑이 풍성하며 그 사랑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확산시켜 나가는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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