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섬기는 교회가 라오스에 선교사를 파송한 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사역이 우물 파기다. 우리나라처럼 상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한 라오스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물을 마음껏 쓸 수 없다. 이를테면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 그들의 화장실에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지만, 물통은 비어 있어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초등학교 등의 공공시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등에서 우물을 파고 운동장뿐 아니라 화장실까지 연결된 수도 설비를 통해 편리하게 물을 쓸 수 있게 했다. 그런 시설 한 개를 설치하는
한강에는 일산대교부터 팔당대교까지 총 31개의 다리가 있다. 이것을 이용해 편리하고 빠르게 통행한다. 서울에 살면서 늘 한강 다리 중 몇 개를 건너간다. 강남북을 연결해 주는 다리들. 제1한강교라고 불리던 ‘한강대교’가 첫 다리였다. 1900년도 기차를 위한 철교로 시작된 다리다.그런데 이 다리들이 비극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2018년부터 5년 동안 통계를 보면 한강 다리에서 발생한 투신자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자살 시도가 벌어진 마포대교는 ‘자살대교’라고 불릴 정도다. 연간 횟수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경기장을 찾거나 TV 중계로 즐기는 경마가 있다. 경주마들의 질주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매력적이다. 다만 경마를 단지 도박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경마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경주마들은 눈 옆에 가리개를 한다. 바로 ‘차안대’(遮眼帶)라는 것으로 영어로는 ‘blinker’라고 한다. 컵 모양의 가죽 또는 고무 재질로 만든 이것은 경주마의 좌우 시야를 차단해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사람의 눈은 얼굴 전면에 앞을 향해 붙어있어서 시야가 많이 제한된다. 그러나 말의 눈은 얼굴의
소희는 대형통신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이라는 노동을 한다. 그런데 팀장이 자살한다. 콜센터 직원들을 혹사시킨다는 유서의 내용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된다. 그 다음이 바로 소희였다. 아직 여고생인 그녀는 업무 실적에 대한 부담과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관하며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죽는다. 앞서 떠난 팀장의 그 ‘다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이젠 이것으로 끝, 다음은 없다’라는 메시지는 없다. 오히려 소희 ‘다음’은 누군가라고 묻는다. 세상은 이렇게 계속
현대 화가 이중섭은 39살의 짧은 삶을 끝으로 슬픈 세상과 이별했다. 그의 ‘황소’나 ‘흰소’ 등의 작품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살던 세상은 그에게 매우 버거웠던 모양이다.6·25전쟁 당시 부산 피난 시절 부두 막노동을 하며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런데 그것조차 건강 문제로 여의치 않게 되자 그림 그릴 종이 한 장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담뱃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쓸모없어 버려진 폐지에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담아낸 것이다. 은박지에 날카로운 것으로 그
아내와의 아침 산책에 우리 집 강아지 ‘모찌’가 늘 동행한다. 그렇게 산책하는 중에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출근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등을 만나게 되는데 아침 길의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는 그렇지 않은데, 강아지를 보면서는 멀리서부터 미소를 짓는다. 심지어 다가와서 강아지와 인사를 하는 이웃도 있다. 우리 강아지도 반가워하며 꼬리를 흔든다.여기서 도전을 받곤 한다. 강아지가 감동을 줄만 한 좋은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지나가는 이웃에게 웃어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강아지를 보면서 미소를 짓는 사람들.강아지를 보고 미소 짓는
‘보복여행’이란 용어가 뉴스를 탄다. 무슨 말인지 궁금했는데 그 의미를 알고 나니 어이가 없다. ‘보복이라니? 이런 것도 보복이구나’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2~3년간 여행을 하지 못했다. 또 관광이 주 수입원인 나라나 지역이 겪은 어려움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광을 못 가서 몸살이 난 사람들이 여행할 날만 기다린 모양이다. 이제 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자 공항에 몰린 인파로 매우 혼잡하다. 그리고 관광객을 기다리던 유명 관광지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서 어떤 도시는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입장객을 제한하
난 아침 6시에 시작되는 기도회를 위해 4시에서 5시 사이에 예배당에 올라간다. 그러나 일찍 깬 날은 그보다 훨씬 캄캄한 시간에 나가기도 한다. 예배당 가는 그 시각, 그 길에 펼쳐지는 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이른 새벽에 움직이는 청소차는 쓰레기 치우는 작업이 바쁘다. 또 택배 배달원들의 바쁜 걸음은 ‘새벽 배송’이라는 광고카피를 뒷받침한다. 배송 차량의 배기음과 배달원의 바쁜 손발이 고객에게 주문 상품을 안겨주는 것이다. 또 잉크 냄새 가득한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배달하는 이들이나, 경광등을 번쩍이며 요란하게 달리는 구급차도
난 키가 크지 않다. 그런 나는 키 큰 사람 앞에 서면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러나 결혼하면서부터 달라졌다. 나보다 8cm나 큰 아내와 결혼하고 나니 큰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당해진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 물려준 유전자에 대한 감사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를 들여다보면 키 크지 않은 인물도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주신 내 모습 자체로 당당하게 살고 있지만 종종 나를 주눅들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또 어디로 보나 존경스러운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만날
‘난 담임목사님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따르려고 노력한다’, ‘난 담임목사보다 하나님의 눈치를 본다’ 이렇게 말하는 교인이나 부교역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얼마나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담임목사가 늘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사역한다’고 생각된다면 그 교회에서 나와야 옳은 것이다. 굳이 그 교회 있으면서 담임목사를 거스르는 것은 결코 건강한 태도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이며, 그분의 눈치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직전 신문에서 고독사를 언급했다. 외롭게 살다가 초라하게 세상을 떠나는 그 삶이 애처롭다. “고독사, 특수처리과정을 알려 드립니다”, “무연고자 사망, 고독사 특수청소, 이정도만 알아도 직접 할 수 있다” 등의 제목이 붙은 광고가 인터넷을 뒤지면 나온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분에 대한 애도나 안타까움은 찾아볼 수 없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고 흔적을 어떻게 깨끗이 지울 것인지에만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더욱이 세 들어 살던 이가 죽은 지 오랜 후에 발견되면 ‘집이 망가지거나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앞서는 세
우리 사회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통계를 보며 나도 놀랐다. 하루 9명, 연간 3378명이라는 것이 2021년 통계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8.8% 증가 추세라고도 한다. 죽은 지 며칠 지나서 발견되는 주검. 쓸쓸하게 살다가 숨넘어가는 순간조차도 누구의 손도 잡아보지 못한 채 죽는, 듣기만 해도 슬픈 ‘고독사’다.어디 죽음뿐인가? 1인 가구로 대표되는 외로움이 대세가 됐다. 2021년 1인 가구는 전체의 33.4%인 716만6000가구다. 연령대별은 29세 이하 19.8%, 70세 이상
준법투쟁! 많이 들어본 용어다. 최근에는 간호사들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한 준법투쟁을 예고하고 시행에 돌입했다. 의료 현장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의사의 지시를 받아 의사 대신 해왔던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준법투쟁의 핵심 사항이다.처방이나 수술, 채혈,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등이 이런 업무에 해당하는데, 특히 수술실에서 의사를 돕는 간호사의 책임이 컸던 만큼 준법투쟁 기간이 길어진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간호사들을 만나 근무환경 개선을 약
“많이 힘드시죠”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가진 위력을 알고 있는가? 나도 자주 듣는 말이다. 지친 듯한 표정의 나에게 건네는 성도들의 짧은 이 말. 그럴 때마다 표정 관리 못하는 나를 탓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곤 한다.지난 2월에 올라온 기사 중 하나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점에서 책을 산 어떤 고객의 이야기다. 그는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구매했다. 그런데 직원으로부터 따뜻한 위로 쪽지를 받았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결제를 마친 직원이 뭔가를 쪽지에 적더니 구입한 책이 담긴 쇼핑백에 함께
아이티 구호사역을 위하여 도미니카를 13일 정도 방문하고 돌아왔다. 긴 비행시간도 힘들었지만 경유하느라 불편한 공항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관계로 시차 적응도 쉽지 않았다.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은 시차로 인한 피곤함 등은 잘 모르고 사는 편이라 그것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그런데 며칠 지난 후 이런 인사를 받았다. “여독은 풀리셨나요?” 그 순간, ‘아 여독이란 것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난 특별한 여독을 별로 느끼진 못하는 것 같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