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직전 신문에서 고독사를 언급했다. 외롭게 살다가 초라하게 세상을 떠나는 그 삶이 애처롭다. “고독사, 특수처리과정을 알려 드립니다”, “무연고자 사망, 고독사 특수청소, 이정도만 알아도 직접 할 수 있다” 등의 제목이 붙은 광고가 인터넷을 뒤지면 나온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분에 대한 애도나 안타까움은 찾아볼 수 없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고 흔적을 어떻게 깨끗이 지울 것인지에만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더욱이 세 들어 살던 이가 죽은 지 오랜 후에 발견되면 ‘집이 망가지거나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앞서는 세상이라면 암울하다. 앞의 광고 문구는 그런 걱정을 하는 이들을 위한 조치일 것이다. 이 정도라면 공감 불능의 사회 아닌가 싶다. 외롭게 죽은 사람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은 없다. 이미 그런 마음을 갖기에는 너무 그 사례가 많아진 것인지, 오래돼서 감정이 메마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니 뒷처리에 허둥거린다. 하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홀로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다. 애당초 홀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참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에 등록된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유유배달’은 이 시대의 그늘에 관심을 갖는 매우 기분 좋은 사역이다. 이 사역의 기본적 목적이 고독사 예방을 위한 우유 배달이다. 본 교단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에 의해 시작돼 지난 목장기도회에서 그 사역을 보고했던,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면 좋을 일이다.

매일 배달되는 우유, 그런데 어제의 그 우유가 집 앞에 놓여있는 것을 위험신호로 알고 조치하는 이 섬김은 우리 사는 세상을 좀 더 따듯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귀한 몸짓이다. 이런 사역에 마음 모아 지원하는 사람들이 2만5000명이 훌쩍 넘었고 굴지의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으니 이 세상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독한 이웃을 교회가 찾아야 한다고 지난주에 언급했지만 그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우유 배달로 찾아가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효율적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도 참여하는 이 귀한 섬김에 함께한다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 같다. 함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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