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김관선 목사(주필)
김관선 목사(주필)

준법투쟁! 많이 들어본 용어다. 최근에는 간호사들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한 준법투쟁을 예고하고 시행에 돌입했다. 의료 현장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의사의 지시를 받아 의사 대신 해왔던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준법투쟁의 핵심 사항이다.

처방이나 수술, 채혈,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등이 이런 업무에 해당하는데, 특히 수술실에서 의사를 돕는 간호사의 책임이 컸던 만큼 준법투쟁 기간이 길어진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간호사들을 만나 근무환경 개선을 약속하며 달래기에 힘썼다.

간호사들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겠다는 것이니 누가 할 말이 있겠는가? 이처럼 준법, 즉 법을 지켜주는 것이 압력이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법을 어기면서 대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준법이 투쟁의 방법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확하게 법을 지키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곳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세상에 살다 보니 어린아이까지 어떻게 법을 다 지키며 사냐고 항변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세상만 탓할 일인가?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어디 하나님의 법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곳이냐’고 항변하곤 하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법보다 세상의 흐름을 더 따라간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진하게 살다가는 손해 보기 일쑤고 아무리 좋은 일도 그르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어릴 때는 몰라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현상들이 더 심각해진다. 비로소 세상을 알았다고나 할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말씀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훌륭한 교인인 척 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목사 이전 전도사 시절이 더 열정과 진리에 대한 사수 의식이 컸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담임목사에게 들이대면서 ‘그건 아니다’라고 떠들던 기억이 난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면 뒤에서라도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구시렁거리던 나다. 그래선가? 담임목사 초기보다 이 교회에서 30년 가까이 된 지금 난 더 세상에 익숙해지고, 말씀을 강당에서만 선포하는 태도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싶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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