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현대 화가 이중섭은 39살의 짧은 삶을 끝으로 슬픈 세상과 이별했다. 그의 ‘황소’나 ‘흰소’ 등의 작품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살던 세상은 그에게 매우 버거웠던 모양이다.

6·25전쟁 당시 부산 피난 시절 부두 막노동을 하며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런데 그것조차 건강 문제로 여의치 않게 되자 그림 그릴 종이 한 장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담뱃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쓸모없어 버려진 폐지에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담아낸 것이다. 은박지에 날카로운 것으로 그림을 새긴 뒤에 잉크를 칠하고 닦아내면 파인 곳에만 잉크가 스며드는 것에 착안했다. 훗날 이러한 그림에 ‘은지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럴듯하고 새로운 장르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슬픈 현실이 담긴 작품이다. 그런 이중섭의 아픈 은박지 작품 3점이 지금은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는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가치를 누리고 있다.

외롭고 배고프던 시절에도 그림을 포기할 수 없던 작가는 쓰레기통을 뒤져 그림을 그릴 캔버스를 찾아낸 것이다. 쓰레기통에서 영영 사라질 담배를 싸고 있던 은박지가 이중섭이라는 미술가의 손에 쥐어지니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미술관에 걸려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쓰레기의 운명이 이렇게까지 놀랍게 바뀌다니?

그렇다. 나의 가치! 주님의 손이 나에게 닿는 순간 난 작품이 되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존재임에도 죄악으로 인해 쓰레기같이 버려질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은박지 같은 내가 빛을 드러내고 있다. 이 어찌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가끔은 다시 쓰레기통에 처박힌 모습으로 우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위대한 작가이신 그분은 나를 재생하신다. 나 자신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내게, 그분이 나를 ‘작품’ 삼아 주시며 다시 일으키신다. 그러니 재료가 무슨 문제이랴? 원래 한 줌의 흙이었는데 이렇게 고상한 인간을 만드시지 않았는가? 흙으로 빚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지금도 적절하게 그분의 기운이 내게 불어온다. 그래서 다시 일어서는 나는 누가 뭐래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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