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식이 있었고 일정기간 수학하고 과정을 수료한 분들이 졸업장을 받고 목회현장으로 나갔다. 오래 전에 동일한 과정을 거친 후 목회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귀한 후배들에게 조심스런 말을 전해보고자 한다.안개가 자욱한 구간을 운전하는 사람처럼 목회현장을 살피는 졸업생들도 조심스레 그 현장을 살펴야 할 것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신앙의 선배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헌신과 열정을 배우며 자기를 내려놓고 교회를 섬기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함에 따라 대학 신입생 비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기독교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 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대학들이 다양한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현재 정부의 대학재정 지원사업은 대상 선정부터 대학 규모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소규모 대학은 제한된 자원 범위 내에서 중·대규모 대학들과 경쟁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특히 소규모 대학들은 예를 들어 기독교 이념 실현과 같은 최초 설립 목적에 따른 고유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증대되고 있다. 일부 대학들은 교육부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훈은 라틴어 베리타스(Veritas), 즉 진리다. 하버드만은 아니다. 명문 대학 대부분이 내거는 가치가 진리다. 미국 건국과 함께 세워진 대학은 진리 추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진리란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버드는 돈과 권력에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학문의 전당으로 인류사회 진보에 크게 기여했어야만 했다.그런데 신은정 다큐멘터리 감독이 (시대의창)이란 책에서 ‘진리보다는 돈과 권력을 좇느라 여념이 없었던 하버드’
우리나라 헌법은 공식적으로 1948년 제정됐다. 그날 7월 17일을 제헌절이라는 국가경축일로 지키고 있다. 그렇게 제정된 헌법은 아홉 번에 걸쳐 일부 또는 전문 개정 등의 수정 과정을 거쳐왔다. 70년 남짓한 역사에서 아홉 번이나 개정된 것은 결단코 적은 것이 아니다. 거의 혁명하다시피 개정되기도 하고, 그런 헌법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퇴보하기도 했으나, 국민적 저항으로 현재의 헌법을 갖게 된 것이다.법, 그것도 모든 법의 근원이랄 수 있는 헌법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한 사회가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교단의 헌법도 여
우리 교단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성남시 분당에 있는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이다.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은 1985년 설립된 이래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하에 칼빈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칼빈박물관은 교부 시대부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를 망라한 수많은 기독교 유물들이 있어 유명하다.칼빈박물관 자료는 칼빈주의연구원 원장 정성구 박사가 일평생 홀로 수집하고 정리한 것이다. 정 박사는 이 자료들을 전 세계를 다니면서 모았고, 수십 년 동안 칼빈박물관에 잘 보존해 후세
나는 총신신대원을 입학하면서부터 교회 개척을 생각하고 있었다. 중증장애인이기에 일반 교회에서 사역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대원 3학년 때쯤인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이자 장애인인 임일주 씨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물었다. “형 신학교 졸업하면 형이 교회 세우면 안 돼요?” “내가 교회를 세워도 되지.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요?”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는 당시 집 근처 조금 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초심자였다. 그도 중증장애인이기에 엘리베이터 시설이 잘돼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이
우리에겐 능치못한 주님의 이름이 있습니다“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사람을 볼 때 그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인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더 나아가 블레셋과 사울의 싸움에서 성경이 집중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에서 긴 부분을 할애해 싸움의 과정과 결과보다는 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이 각각 어떤 영적인 배경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 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싸움은 힘의
지난 해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남조선이라는 용어 대신에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올해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민족에 기초한 통일의 대상에서 통일할 수 없는 대상, 제1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통일 관련 조직을 해체하고, 통일 용어를 폐기하며, 상징물을 철거하는 등 남북관계를 통일을 전제로 하는 특수관계에서 통일할 수 없는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놀라는 눈치다. 평화공존을 주장하던 입장을 생각하면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닌데, 이러다가 통일이 물건너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
우리 학교의 체육대회 날이었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경기를 진행하는데 방송실에서 배경음악을 틀어주었다. 가요와 가스펠이 번갈아 한 곡씩 나왔다. 가스펠을 틀었더니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주 날 구원했으니... 나 기쁨의 춤추리 내 모든 삶 주 안에 있네~”라며 율동과 함께 떼창을 불렀다. 그런데 그중 80%는 비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인 20% 중에도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은 더 적다. 우리는 그런 학생들과 매주 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전하고 비전을 공유한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연중 여러 가지 기독교 신앙 행사를 진행한다.
설날을 앞두고 자녀들을 돌아보니 내가 새삼스럽게 아버지임을 느꼈다. 연습도, 공부도 해 본 적이 없이 어쩌다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니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왔을까를 생각하면서 미소만 지을 수 없었다. 이미 장성한 아이들,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열심인 그들을 보면서, 난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며 고민에도 빠져 보았다.그렇다. 난 아버지다.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앉히셨다. 거부할 수도 없는 부르심이었다. 주님 탓하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러기에 더 신중하고 기도하고 노력했
목회자에게 설교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다. 현대 교회에서 심방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사역이 줄어들면서 목회에서 설교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그렇다면 설교에 있어서 중요하고도 변함없는 원칙은 무엇일까? 그것은 초기 교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오직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만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모습이 여전해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성경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설교자는 시중에 흘러 다니는 말거리를 강단에 올리거나, 진리가
최근 한국리서치의 ‘종교 경전에 대한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은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성경에 대한 높은 신뢰와 헌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 경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탐색한 이 조사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골고루 섞어서 실시됐고, 종교인 중에서도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골고루 배분하였다. 그러나 종교 경전의 개인적인 영향과 사회적인 영향을 묻는 첫 번째 질문을 제외하면, 경전의 성격(“인간의 창작물이나 역사적 기록물? 신의 가르침?”), 경전의 해석(“개인의 신념이나 시대에 따라 종교 경전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어느 목사님이든지,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꼭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왜 목사님들은 성경으로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그 이유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주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란 ‘감춰진 것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물론 하나님은 성경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자연을 통해, 환상이나 꿈을 통해 알려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보편적인 방
앙드레 코스톨라니(Andre Kostolany)라는 전설의 투자가가 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던 그는 주식으로 번 재산을 오케스트라에 후원했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즐겼다. 1937년 바그너의 악극 가 연주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주식 전량을 처분했다. 주식시세가 아른거려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를 위로한 것은 투자로 번 돈이 아니라 음악이었다.주식투자 등락에 매달려 사랑하는 아내의 밥 한 그릇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거나, 딸아이의 웃음소리와 아들의 키가 한 뼘 자라는 기쁨
나는 매주 성도가 1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교회의 목사에 불과한데 목회 칼럼을 쓰자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힘을 얻는 목회자나 성도가 있다면 감사할 것 같아서 마음을 잡고 글을 쓴다.먼저 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사지마비 중증장애인이다. 전혀 일어나 걷지 못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며, 팔도 쓸 수 없어 혼자서는 밥을 먹지도 못한다. 세수도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다. 물론 연필을 잡고 글을 쓸 수도 없다. 책을 넘길 수도 없어서 항상 누가 책을 넘겨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