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철 교수(총신대신대원)
윤형철 교수(총신대신대원)

최근 한국리서치의 ‘종교 경전에 대한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은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성경에 대한 높은 신뢰와 헌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 경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탐색한 이 조사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골고루 섞어서 실시됐고, 종교인 중에서도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골고루 배분하였다. 그러나 종교 경전의 개인적인 영향과 사회적인 영향을 묻는 첫 번째 질문을 제외하면, 경전의 성격(“인간의 창작물이나 역사적 기록물? 신의 가르침?”), 경전의 해석(“개인의 신념이나 시대에 따라 종교 경전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가”), 경전의 합리성(“경전의 내용이 과학의 주장과 상충할 때 무엇을 더 신뢰하느냐?”), 경전의 읽기와 실천으로 이어진 이후의 질문들은 사실상 종교인의 신념을 묻는다. 조사에서 경전에 대한 신뢰와 실천이 가장 높은 응답자는 개신교 신자였다. ‘오직 성경’의 신앙 DNA를 가진 개신교 신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결과다.

왜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은 한낱 인쇄된 텍스트처럼 보이는 책을 ‘신의 가르침’이라고 믿고, 과학과 상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성경을 더 신뢰하고, 성경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가르치고 설교하며 성경대로 살려고 애쓰는가? 그리스도인 자신도 궁금해할 수 있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경전 일반에 관한 피상적인 설문 조사에서 들을 수 없다. 바깥쪽에서부터 중심부로 동심원처럼 좁혀오는 설문은 정작 가장 궁금한 지점까지 미치지 못한다.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이 무엇인가?”라는 물음말이다.

설문은 종교의 ‘경전’에 관해서 물었지만, 사실 기독교는 ‘경전(책)의 종교’가 아니라 ‘말씀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단순히 교리나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다. 성경이 그저 인쇄된 텍스트라면 종교적 지식이나 교훈을 얻는 ‘인간적 도구’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 언약적 관계를 맺으시고 함께 거하시며 구원을 이루시는 ‘신적 임재’로 여겨진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을 때 과거의 역사적 유물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임재하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있다고 믿는다.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뢰와 헌신은 텍스트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함이 옳다.

성경은 ‘정보의 책’이 아니라 ‘언약의 책’이다. 과학적 사실과 상충하는 부분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담은 생명의 말씀을 우선시한다. 과학적 패러다임은 시대적 상황과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하고 그의 약속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과학의 상대적인 합리성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기반한다. 종국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들’을 잠잠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과학은 성경을 비판하거나 판단하거나 부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설문조사는 우리 시대에 가장 민감한 ‘해석의 문제’를 건드리다 말았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만, 동시에 성경 해석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답변이 인간의 해석 능력에 대한 겸손과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해석을 추구하는 노력을 의미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성경에 확정된 의미가 없으며 독자에게 의미를 창출할 자율성과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념과 상충하는 ‘이율배반적인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경 해석은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진의를 파악하려면 100개의 질문으로도 모자랐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성령으로 영감 하셨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조명하신다. 성경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바른 해석을 돕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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