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처마 밑에 햇볕이 찾아든 모습이다. 총회 교육 개발위원회를 통해 발간된 통합형 공과 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 고쳐야 그나마 소망을 가질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몇가지 생각을 나누려 한다.첫째,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칠 교사가 필요하다. 교육의 ABC를 아는 사람이면 이것은 가장 중요한 상식이다. 공교육이나 사교육 현장에서는 필요한 한 명의 교사를 배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 인본주의 가치관이 이미 삼켜버린 모든 교육의 현장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마땅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상황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정도로 완전히 변했다. 마스크 필수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모임금지, 비대면 예배 등과 같이 코로나19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린 뉴노멀(New nomal) 시대가 됐다. 특별히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언론과 매스컴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당한 수치와 비난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대다수의 교회들은 정부의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예배를 진행했지만 소수의 교회나 이단 단체들이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집회를 강행한 결과 대
IM선교회와 TCS국제학교를 통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여론이 비난을 넘어 혐오 수준에 이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최선을 다해 방역수칙을 지키고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교회와 목회 생태계의 회복과 유지를 위해 힘쓰고 있는 대다수 교회와 목회자들이 전체적으로 욕을 먹으며 공격받는 것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폐해진 교회와 목회 생태계를 다시금 복원하고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치열한 신학적 성찰과 목회적 실천이 요구된다.코로나19는 교회와 예배의 본질과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총회교육개발원에서 주일학교 통합공과인 을 연구제작하여 출판하였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하나님나라 이해, 하나님나라 백성의 정체성,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그리스도인 등의 내용을 담아낸 통합공과다. 주제의 통합이고, 전세대 교육생태계(교회, 가정, 학교) 통합이며, 온오프라인 통합으로 이루어진 공과라는 면에서 호평이다.특별히 코로나19 상황으로 국가 공교육보다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주일학교 현장에 가정-교회-학교교육 생태계 복원, 온오프라인 멀티미디어 시스템구축, 예배-설교-공과(활동) 체계적인 도구
새해 벽두지만 난세(亂世)에 난맥(亂脈)이다. 교수들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처럼 내로남불의 사고 속에 공의와 정의가 무너져가는 뼈아픈 시대이다. 교회 밖의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내부는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마찬가지다. 대면과 비대면 예배를 놓고도 신학적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정부와 교회의 마찰은 연속되고 있다. 공교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도 대안을 찾기가 힘들고, 서로를 향한 관계도 배려와 존중보다 갈등의 요소가 훨씬 더 커진 것이 내부의 현실이다.처한 환경을 변화로, 기회로 창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
이 시대의 교회나 크리스천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이다. 영지주의의 간단한 정의는 타락한 형태의 교의를 가진 한 이단사상으로만 판단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우리는 구원을 믿음(faith)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영지주의는 앎(Gnosis)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한다면 앎으로, 사람의 기원이 신성에 있음을 알고, 이 깨달음을 통해 사람의 구성 중 영적요소인 영혼은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역사는 회전된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도, 부인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역사의 회전은 가설이 아닌 실존이기 때문이다. 더 부연한다면, 발전적 회전을 한다. 그 회전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시간 지나서 내가 있는 곳을 살펴보면 이전의 그 자리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다른 환경과 여건, 같은 모습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달라진 모습의 내가 서 있다. 발전적 회전의 지점 속에, 의미 있는 발전적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의 모습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초라하게 쇠퇴한 모습으로 서 있을 때가 있다. 나는 전혀 어색하고 생뚱한 생각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명제가 있다. 일종의 부재증명이라는 말이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는 이 역설이 사실상 동방신학의 원리이기도 하다. 존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논리상으로 쉽다. 그러나 ‘없음이 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은 논리상으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는 존재의 존재증명보다는 존재의 부재증명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있으면 있다는 게 인식되지 않고, 없어야만 비로소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철저히 보이는 것, 드러나는 것을 앞세우고 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세 가지 수단을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고 했다. 로고스는 언어, 말이며, 파토스는 열정, 감정이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체형, 옷차림, 목소리, 단어선택, 시선, 성실, 신뢰, 카리스마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화자의 인품이다. 화자가 아무리 진리를 말하고 열정적으로 말해도 인품이 동반되지 않으면 신뢰감을 줄 수 없다. 에토스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바로 이 에토스가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예수님이 이 세상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를 빠져나왔지만 곧바로 남북으로 갈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과 소련의 군정 하에서 탄생한 남북 정부는 태생적으로 체제경쟁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국제 체제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로 블록화하는 가운데 남과 북은 민족성보다는 이념을 중시하는 분단선을 내포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 청산과 토지개혁 등 제반 사회개혁을 단시간 내 달성하고 이를 남쪽으로 확산시킨다는 ‘남조선혁명론’을 내세우며 전쟁을 시작한 북한. 유엔 감시 하의 선거를 통한 합법적 정부임을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진 지 1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130년 전 이 땅은 5000년 역사 가운데 가장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은 이 나라를 찾아오셨고, 이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고난 받는 이 백성의 친구로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신실한 분들이었다. 독립운동에 앞장 서 주었고 배고프고 헐벗고 피 흘리는 이 백성들의 위로자가 되어 주었다.20세기 초 이 땅에서 소용돌이치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비극의 소용돌이였다. 우리
정치는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저마다 꿈을 갖고 정치에 뛰어들고 있다. 그 꿈들은 평화와 번영에 더 보태어 위기의 환경에 대처하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 보려는 설계도를 의미한다. 이런 정치의 목적은 세속이나 교회나 동일하다.그런데 이런 목적의지가 없이 정치에 관여할 때 정치는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친다. 개인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욕망으로 참여하게 되면 그 공동체는 부패하고 망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치는 철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이나 상공인,
나무를 자르면 나타나는 동심원 모양의 띠를 가리켜 ‘나이테’(annual ring)라고 한다. 나이테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띠를 가지고 나무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나이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테는 나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띠이기도 하지만, 기후와 나무 성장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처럼 4계절이 분명한 지역의 나무들은 봄과 여름에 열심히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성장이 둔화되고 겨울이 되면 성장이 멈추기 때문에 1년에 아주 확실한 나이테 하
지금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디지털 대면시대를 맞고 있다. 2020학년도 1학기 시작을 하기도 전 코로나19의 돌풍으로 3월 11일 WHO의 팬데믹이 선포되었고, 학교들마다 1개월 이상 입학식도 하지 못하고 별다른 대책도 없었다. 이후 학교마다 EBS 중심의 유튜브 온라인 비대면 단방향 수업을 실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부형들의 요구와 교원들의 자성에 따라 2학기에 들어서면서 소통부재의 유튜브 동영상 단방향 수업을 지양하고 교육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모든 교원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하여 줌(Zoom) 등을 활용하는 쌍방향 디지털 대면
며칠 전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이했다. 필자는 항상 종교개혁에 대하여 이런 정의를 내렸다. “종교개혁은 썩어져 가는 도끼자루의 썩는 것을 멈추게 했던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仙遊朽斧柯說話’(선유후부가설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중국에 근원을 둔 한국 속담이지만, 암튼 여러 가지 설과 전설이 이어지고 있는 속담이다.필자는 요즘 들어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현재 우리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것은 아닌가하는 염려이다. 우리는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사랑하셨기에 한반도 역사에 개입하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