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관찰의 눈을 뜨고, 통찰의 심정을 가지고, 2020년을 맺음
[논단] 관찰의 눈을 뜨고, 통찰의 심정을 가지고, 2020년을 맺음
최종천목사(분당중앙교회)
  • 기독신문
  • 승인 2020.12.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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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역사는 회전된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도, 부인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역사의 회전은 가설이 아닌 실존이기 때문이다. 더 부연한다면, 발전적 회전을 한다. 그 회전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시간 지나서 내가 있는 곳을 살펴보면 이전의 그 자리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다른 환경과 여건, 같은 모습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달라진 모습의 내가 서 있다. 발전적 회전의 지점 속에, 의미 있는 발전적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의 모습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초라하게 쇠퇴한 모습으로 서 있을 때가 있다. 나는 전혀 어색하고 생뚱한 생각과 주장과 기호 그리고 정서를 가지고 어눌하게 서있는 것이다.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지만 계절이 바뀌어져 있다. 여름이 되었는데 여전히 몇 겹 겨울옷을 껴입고, 전통을 주장하고, 권위를 주장하고, 정통을 주장한다면 우리가 갈 곳은 슬프게도 정해져 있다. 이를 악물고, 두 눈에 힘을 주고, 온 전신의 기를 모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역사의 현상과 모습 속에서 그 의미와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집중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내 생각이 들려오는 소리가 되고, 내 마음의 누추함이 안경이 된다.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누가 될 뿐이며, 요구나 하는 이로 전락된다. 지구상의 그 어떤 것도 생명의 호흡을 통한 존속이 의미를 부여받으려면 선명한 용도가 있어야 한다. 역사의 용도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때 남은 것은 폐기이다.
나를 보아야 한다. 내 주변과 역사를 보아야 한다. 그냥은 보이지 않는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심호흡하고 기를 모아야, 표면에 쌓인 내면이 비로소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나무의 소리, 바람의 소리, 돌의 소리,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관찰에 의해 파악해내지 못하면, 우리는 마치는 날까지 허망한 혼잣말 중에 쓸려갈 것이다.
통찰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눈앞에 것은 잠깐이고 열 번 뒤집히고 백 번 뒤집힌다. 천하에 약속 지키고, 정한대로 하며, 끝까지 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안타깝다. 그래서 눈 앞의 사람이나 상황, 흘러가는 바람의 모습을 보아서는 필패이다. 다짐하고 눈을 들어 저 멀리 역사가 표적하는 곳, 하나님이 정해주신 곳과 시점, 역사가 흘러가는 우리의 푯대를 바라보아야 한다. 먼 하늘에 쓰여진 글씨, 먼 산 봉우리에 걸린 구름에 쓰인 글씨, 엎드려졌을 때 그 땅 바닥에 쓰여진 글씨가 맞다.
인생은 독해능력에 따라 중요한 결과를 소득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라는 곳이 어디인지, 하라고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듣고 싶어야 하며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고 감격이어야 한다. 들었으면 보았으면 파악해서 정확히 그의 뜻을 나의 뜻으로 정해야 한다. 눈 앞 아닌 먼 곳, 큰 틀에서, 그리고 오래 바라보며, 삶을 통찰해 그 뜻을 수용하고 그것이 왜 기쁨인가 누려야 한다.
역사는 패턴을 가진다. 회전이란 결국 그 패턴의 반복적 도래이다. 우리의 앞, 한창 흥왕했었으니 어두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인정하나, 생각으로만 맴도는 인정은 의미가 없다. 행동해야 한다. 역사는 생각을 기록하지 않고, 생각의 결과로 이루어진 사실적 행위를 기록하고 평가한다. 어두움이 극에 달할 것이고, 영적 대각성의 시대가 열려질 것이다. 관찰과 통찰을 소중히 여기고, 어두움을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은혜의 도래와 기회로 바라보며, 2020년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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