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인간의 정치와 하나님의 정치
[논단] 인간의 정치와 하나님의 정치
장영일 목사(범어교회)
  • 기독신문
  • 승인 2020.11.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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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 목사(범어교회)
장영일 목사(범어교회)

정치는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저마다 꿈을 갖고 정치에 뛰어들고 있다. 그 꿈들은 평화와 번영에 더 보태어 위기의 환경에 대처하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 보려는 설계도를 의미한다. 이런 정치의 목적은 세속이나 교회나 동일하다.

그런데 이런 목적의지가 없이 정치에 관여할 때 정치는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친다. 개인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욕망으로 참여하게 되면 그 공동체는 부패하고 망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치는 철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이나 상공인, 농민이 정치를 맡게 되면 그만큼 그 국가는 하류가 된다고 했다. 물론 오늘 이 말이 군인과 상공인, 농민을 무시하는 말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플라톤의 말은 공동체에 대한 철학 곧 목적과 의지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동시에 정치에는 목적과 의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의 기술(덕)일 것이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목적을 공유한다. 대신 목적을 이루어 가는 방법론이 다를 수 있다. 여기에 타협의 기술이 필요하다. 타협 곧 협상의 기술이 부족하면 독재가 된다. 

우리나라는 건국 후 공익의 목적 없이 개인의 야망으로 지도자로 나서거나 아니면 그가 애국심은 갖고 있었어도 정치의 기술이 부족한 이유로 인하여 나라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우여곡절을 많이 겪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문제는 교회(교단)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이 옳지 않거나 정치의 기술이 부족한 분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함으로써 일반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들이 교계를 이끌어 왔다는 평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는 리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군계일학 같은 훌륭한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이 그의 철학도 기술도 무색 시킴으로 열매 맺지 못하고 끝난 것들도 많을 것이다. 혹 주변도 같이 훌륭한 군단을 이루어 멋지게 교단을 이끌어 갔어도 임기가 짧기에 그 후임들이 그 철학과 기술을 계승 발전시키지 못함으로 공든 탑이 무너진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 무용론이나 허무론이 상존하면서 건강하고 참신한 꿈을 가진 신예들의 의지를 일찍부터 꺾어 초야에 묻혀 살게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깊어지고 길어지면 결국 역사는 후퇴하고 공동체는 엄청난 손해를 입고 쇠락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도 무리들의 옹립을 뿌리치고 내 나라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하셨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화평이라고 했다. 여기에 정치의 길이 있다. 세상의 정치와 다른 하나님의 정치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이루어 가는 것이다. 세상은 몰라도 적어도 주님의 교회와 교단의 정치는 이 길로 가야 한다. 샬롬의 공동체가 되어 부흥이 지속되고 세상을 위한 더 나은 교회와 교단에 대한 꿈이 교회 지도자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성령 충만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령 충만에는 객관적인 평가의 방법은 없다. 오직 자신만이 알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가장 성경적인 규범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교단 정치의 꿈을 가진 자에게 성령이 충만하도록 기도하자. 총회는 성령이 충만한 자를 세워 추대하자. 성령 충만한 자는 정치를 못 한다는 억지를 씌우지 말자. ‘못한다는 그 정치’는 오히려 못하는 것이 더 낫다. 맑고 깨끗한 자는 정치의 능력이 없다는 말은 성령을 조롱하는 것일 뿐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며 권능이시다.
우리도 꿈을 가지자. 성령이 충만하신 분들이 교회와 교단을 이끄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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