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탄절과 한국교회의 에토스
[논단] 성탄절과 한국교회의 에토스
이권희 목사(신일교회)
  • 기독신문
  • 승인 2020.12.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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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희 목사(신일교회)
이권희 목사(신일교회)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세 가지 수단을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고 했다. 

로고스는 언어, 말이며, 파토스는 열정, 감정이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체형, 옷차림, 목소리, 단어선택, 시선, 성실, 신뢰, 카리스마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화자의 인품이다. 화자가 아무리 진리를 말하고 열정적으로 말해도 인품이 동반되지 않으면 신뢰감을 줄 수 없다. 에토스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바로 이 에토스가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지상 최대의 사건이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말씀 즉 ‘로고스’라고 증거한다. 로고스이신 예수님이 오신 곳은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 그것도 말구유였다.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은 당시 유대를 다스렸던 헤롯 대왕과는 너무 대조적인 사건이었다. 헤롯 대왕은 당시 ‘폭군’으로 불려졌다. 그가 가진 권력은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도록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곳에 비천하게 탄생하셨다. 그에게는 모든 권세가 있었지만 ‘만 왕의 왕’으로서 규(圭)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종으로 오셨고 종으로 제자들을 섬기셨다. 결국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인류를 섬기셨다. 

또한 헤롯 대왕은 사치스러운 음식을 즐겼는데 그가 즐겨 먹은 생선으로 만든 향신료 소스(Sauce)였던 가룸(Garum)의 한 병 가격은 당시 로마 군인의 3년 치 연봉이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고 호화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심지어 변변한 집도 없으셨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성탄절을 맞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감사하게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진리 수호’를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이단과 싸워 ‘로고스’를 지켜냈다. 또한 복음의 ‘파토스’ 즉 열정과 감성으로 세계교회에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에토스’였다. 
교회의 에토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섬기는 종’으로 오셨지만 한국교회는 너무 교만했다. 목회자들 또한 교만하다는 말을 듣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울 자리도 없었는데 한국교회의 예배당은 너무 크고 화려하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으로 오셨다. 교회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사명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떤가? 과연 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복음의 에토스’를 회복해야 한다. 복음의 에토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기러 오신 것처럼 봉사하며 섬겨야 한다. 한국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통해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마 5:16) 

최근 한국교회 일각에서 ‘교회의 공공성’을 드러내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운동이 인본적인 사회복음이 되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그리스도를 닮은 에토스를 나타냄으로 교회로서 책임을 다한다면 분명히 한국교회는 달라질 것이다. 매력적인 곳이 될 것이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국교회여, 복음의 에토스를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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