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넘어 도약을 시작한 총신대학교가 2024년도 새학기를 시작했다. 지난 5월 박성규 총장이 부임한 후 총신대는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총신의 사명을 분명히 정립한 것이다. 박 총장은 교단의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를 키우는 신학교로서 “개혁주의 신학을 삶으로 실천하는 인재 양성”을 총신의 사명과 목표로 제시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총신이 먼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 총신이 새로운 부흥을 이루고 교단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분명한 사명 아래
총회신학정체성위원회(위원장:이풍인 목사)가 1월 4일부터 5일까지 신용산교회에서 임원회를 갖고, 제108회 총회가 채택한 총회신학정체성 선언문의 보급에 힘쓰기로 했다.이와 관련 우선 교단 산하 기관과 신학교를 대상으로 선언문과 해설 내용을 홍보하기로 했다. 또 이미 총회에서 결의된 바 신학정체성 선언과 해설을 헌법에 부록으로 싣는 것을 확인하고 진행상황을 논의했다.임원회에 앞서 위원들은 세미나를 갖고, 총회신학정체성 선언의 의미를 되새겼다. 세미나에서는 김길성 교수(총신신대원 명예)가 총회신학정체성 선언 및 해설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
2022년은 충북선교의 개척자인 프레드릭 S. 밀러(한국명 민노아)의 내한 130주년을 맞은 해이다. 이를 기념해 11월 15일 청주 상당교회에서 '청주성서신학원'과 '민노아선교유산보존계승위원회' 주최로 민노아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다음은 이날 소개된 세 편의 주제발표의 요지이다.■충청지역 선교의 대부:밀러의 선교활동(최재건 박사·성결대학교 석좌교수)1892년 미국북장로회 해외선교부의 17번째 파송선교사로 내한한 밀러 선교사는 서울 황해도 순회 선교사역을 하다가, 1900년부터 경기도 동남부와 충청도 사역에 나셨다. 김흥경 조사와
다도해 중심지를 제자도 산실로 만들어 간 호주 선교사들경남지역은 호주장로교회선교부 관할 지역이었다. 호주장로교회의 첫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병으로 별세했다. 그 후임 제임스 메카이 선교사도 2년 만에 병으로 한국을 떠났다. 호주선교부는 새로운 선교사를 물색했다.중국에서 선교하다 병고로 영국에서 휴양 중이던 앤드류 아담슨(한국명 손안로)은 조선의 첫 선발대 선교사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한국선교에 응답한다. 아담슨은 릴레이(이어달리기) 선교사였던 셈이다.수탈의 뱃길이 생명의 뱃길로아담슨이
복음 품고 조국 품으며 자신의 인생을 던진 양림동산의 선구자들‘선교역사마을’ ‘펭귄마을’ ‘호랑가시나무언덕’ ‘만세운동길’ 등 깊은 역사가 배이고 다채로운 문화들이 공존하는 곳이 광주 양림동이다.기독교복음과 함께 서구문물이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유입되면서 여러 문명과 사상이 때로 충돌하다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이런저런 사건도 많았고, 더불어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동네이기도 하다.양림동 일대 기독교 문화유산들을 탐방객들에게 안내하는 투어를 비롯해 갖가지 선교·문화사역을 전개하고 있는 양림선교동산이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거
호남선교 개척자로 활약하며 생명 바쳐 한국교회 섬겨“한국만큼 사역자가 필요한 나라가 없고, 한국인만큼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민족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문이 활짝 열렸으니 일어나 일하러 가라. 우리 어깨 위에 이 엄청난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1891년 10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는 수많은 젊은 신학생들이 모여, 열정적인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6년 전 미지의 땅 한국으로 떠났던 장로교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는 첫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후, 전국을 돌며 젊은 복음사역자들에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한영훈 목사)는 2월 22일 기독교회관에서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과 예배회복’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박경수 교수(장신대), 박용규 교수(총신대), 이승구 교수(합신대)가 강사로 나서서 코로나 시대 장로교 정체성 유지를 위해 목회자 선발과 재교육, 장로교 정체성 강화, 예배의 엄숙성 회복 등을 강조했다.박경수 교수는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에는 목회자의 자질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칼빈 당시 제네바의 목사 안수와 재교육 방법을 비교했다. 박 교수는 “16세기 제네바 시에서 목회자가 되려
개혁신학 가르침 실천하며 '하나님 주인된 학교' 계승합시다총신 120주년 기획을 마무리하며 학교 수장인 이재서 총장과 대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총장은 이번 대담을 통해 “학교 구조의 회복과 함께 재정 건전성의 회복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전국의 교회와 동문들에게 기도와 후원을 당부했다. 대담은 12월 8일 총신대학교 총장실에서 본지 주필 김관선 목사 사회로 진행됐다. ▲개교 1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총신의 수장으로서 개교 120주년을 보내는 소감과, 총회 및 전국교회에 보내는 인사말씀을 간단히 부탁 드립
총신 양지캠퍼스가 위치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일대를 예전에는 ‘양랑’ 혹은 ‘양산’이라 불렀다. 볕에 잘 드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양’(陽)자를 그대로 살리고, 그 뒤에 슬기롭다는 의미의 ‘지’(智)자를 붙여 ‘양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정종 원년 때의 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가 이곳에 느닷없이 ‘내사’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나, 국권 회복 후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밝은 지혜의 땅’ 양지에 참 잘 어울리는 총신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선 것은 1981년의 일이다. 당시 정부가 대학의 지방분산 정책을 펼치던 무
신학과 목회 바른 방향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 충실히 감당1. 들어가는 말1901년 5월 15일 마포삼열 선교사의 사랑방에서 2명의 한국인 학생과 더불어 평양 장로회신학교가 시작되었고, 1948년 남산에 장로회신학교 복교로 계승이 이루어졌다. 이를 계승한 총신이 올해로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1918년에 이르러 평양 장로회신학교는 신학 기관지로 을 창간한다. 한자로 ‘지남(指南)’은 남쪽을 가리켜 보인다는 뜻인데, 나침반의 자침(磁針)이 가리키는 방향을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를 신학 계간지 이름으로 쓰면서, 신학의 방향
한국장로교 정초, 보수주의 신학 위에 놓다1901년 평양장로회신학교로 출발한 총신이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이 문자대로 성취된 역사이다. 하나님 은총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시대마다 쓰임 받았던 수많은 선진들의 헌신의 역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1. 신학교 정초기(1901~1938)평양신학교는 초대교장 마포삼열이 재직하던 1924년까지는 매코믹신학교 출신 교수들 일색이었는데, 1925년 라부열이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프린스턴신학
숭고한 ‘전문 목회자 양성’ 사명 힘껏 지켰다평양신학교를 모체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대표 선지학교로 자라온 총신대학교(총장:이재서)가 개교 120주년을 맞았습니다. 파란만장한 시절을 꿋꿋이 이겨왔고, 지금도 견뎌내면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총신의 역사와 그 요람에서 성장한 인물들의 면면을 되짚어보는 한편, 오늘의 성과와 과제들도 다시 생각하는 특집을 앞으로 8회에 걸쳐 마련합니다.먼저 세 차례 게재하는 ‘테마I-역사 편’은 (총신대학교 100년사 편찬위원회, 2003) 그리고
WEA 네트워크 전략적 활용, 교단 신학 확산 계기 만들자본 교단의 가장 큰 신학적 관심사인 WEA와 교류문제에 대한 총신대, 칼빈대, 광신대의 연구논문 요약본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 연구보고서는 총회 WEA연구위원회(위원장:한기승 목사)의 의뢰에 따라 각 신학대 교수회가 작성한 것이다. 1. WEA 역사WEA는 범세계적 교회와 기구들, 그리고 132개의 복음주의 연맹들과 109개의 국제적 기관들이 가입한 거대한 복음주의 기구이다. 현재는 129개국에 걸쳐 6억 이상의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며 영향
“교회를 위한 성경적 신학 견지 힘썼다”교단 신학 정립과 수호에 진력 … “선교사 헌신 기록 남길 터”총신과 교단을 넘어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인 박용규 교수가 2020년 2학기 수업을 끝으로 총신대에서 은퇴를 하고 명예교수가 됐다. “지난 30년 동안 목사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학교와 교단 그리고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많은 분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교수 사역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박용규 교수는 1991년 3월 학기부터 총신대신대원에서 초대교회사와
올바른 신학 이정표 제시하며 참된 목사로 삶을 바치다필자는 서울 창성교회에서 30여 년간 지역복음화와 세계선교에 힘쓰고 있는 목사이다. 필자의 선친 함영진 목사는 삼양교회에서 35년을 사역하시고, 은퇴 후에는 일본 선교사로서 한평생을 바치셨다. 필자의 선친과 필자가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학의 혼돈기와 교단의 분열 속에서도 청교도적 개혁주의 정통신학에 근간을 지키셨던 신학의 명장(名將)인 박형룡 박사를 통해서 신학의 뼈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박형룡 박사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육기관인 평양신학교를 모체로 삼고,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