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선배들과 연대 이루고 새로운 사명으로 나아가는 사역자들의 요람

총신 양지캠퍼스가 위치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일대를 예전에는 ‘양랑’ 혹은 ‘양산’이라 불렀다. 볕에 잘 드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양’(陽)자를 그대로 살리고, 그 뒤에 슬기롭다는 의미의 ‘지’(智)자를 붙여 ‘양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정종 원년 때의 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가 이곳에 느닷없이 ‘내사’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나, 국권 회복 후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밝은 지혜의 땅’ 양지에 참 잘 어울리는 총신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선 것은 1981년의 일이다. 당시 정부가 대학의 지방분산 정책을 펼치던 무렵, 새로운 캠퍼스를 물색하던 총신대에서 찾아낸 땅이 당시 군산의 한 사업가가 소유하고 있던 양지 일대 23만평 부지였던 것이다.

<총신대학교 100년사>에서는 대지 구입 당시의 풍경을 “즐비하게 솟아있는 산등성이는 마치 병풍이 둘러쳐 있는 것과 같아서 입구에 들어서면 아늑한 분지 형태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마치 수도원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라고 묘사해놓았다.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지고 많은 건물이 들어선 오늘날에도 이 같은 정취는 여전하다.

초창기에 학생들이 ‘닭장’이라 부르던 초라한 임시건물들만 덩그러니 세워졌던 양지캠퍼스에는 현재 본관 예배당 강의동 도서관 생활관 복지관 등 10여 개의 건물들이 우뚝 서 만만찮은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 면면을 살펴보고자 찾아가는 길을 현재 신학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인 총신원보사 맹주현 편집국장과 박정화 기자가 맞아주었다.

왕십리교회 출신으로 현재 잠실새내교회 중등부에서 사역 중인 맹 전도사와, 서울 신흥교회 유초등부에서 사역하며 한민족선교에 비전을 품고 있는 박 전도사 모두 첫 만남에서부터 밝고 넘치는 에너지를 풍겨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캠퍼스 생활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유서 깊은 총신의 일원으로서 자라간다는 자부심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두 사람과 먼저 들른 곳은 총신의 영원한 스승 고 박형룡 박사의 ‘신자가 되라’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교훈들이 새겨진 비석이다. 이 거창한 명제들 앞에 서면 행여 주눅 들거나 부담이 느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맹주형 전도사는 “오히려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사역자로서 제가 걸어가야 할 확실한 목표를 제시해준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다”고 응답한다.

▲100주년기념예배당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2002년 2월 19일 건립된 약 1500평 규모의 예배당은 양지캠퍼스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특히 2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서는 정기 채플 뿐 아니라 졸업식과 각종 학술세미나 등 주요 행사들이 열린다.

그 외에도 중강당과 세미나실 등 100주년기념예배당의 여러 공간들도 각기 그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왔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현장 상황을 중계할 수 있는 통역시설과 첨단 장비들로 꾸며진 멀티미디어 시설들도 자랑거리이다. 1층의 강의실은 대선배의 이름을 따 ‘주기철목사기념강의실’로 명명되고 있으며, 2층에는 오케스트라와 찬양단의 연습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예배당을 마지막으로 나선 후 세상으로 뛰어들어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선배들처럼, 두 사람도 장차 이곳에서 졸업식을 치르고 ‘총신인’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새기게 될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박형룡박사기념도서관

총신신학대학원 도서관이 ‘박형룡박사기념도서관’이란 이름을 처음 갖게 된 것은 2016년의 일이다. 하지만 여러 학내 사정으로 작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2019년 9월 6일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현판식이 거행됐다.

도서관 2층의 출입구를 통과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신학지남> 사무실이다. <신학지남>은 평양신학교 시절인 1918년 창간되어 오늘날까지 총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선후배 총신인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표지로서, 한국교회에 개혁주의 신앙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자양분으로서 큰 공헌을 한 매체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역대 발행된 <신학지남>의 면면들이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고, 따끈따끈한 최신호인 2021년 가을호(제88권 3집)가 쌓여있었다.

정승원 현 신학대학원장의 권두언을 시작으로 총신 120년 역사를 정리한 박용규 교수의 글, 서거 100주년을 맞은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에 대한 두 편의 논문, 여성안수 문제를 다룬 글 등이 수록된 책의 목차와 내용을 두 사람과 잠시 들춰보았다. 총신원보사에서 현재 학술부장을 맡고 있다는 박 전도사의 눈빛이 유난히 빛난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는 곳은 ‘개혁신학연구센터’(RTRC). 총신과 세계의 개혁신학이 함께 만나고 학문적 교류와 발전을 이루는 장이라 할 수 있겠다. 시대별, 국가별, 인물별로 서가에 빼곡히 채워진 각종 신학 원서와 자료들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맹 전도사조차 2년째 원보사 활동을 하면서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며 신기해 할 정도로 쉽게 개방되는 공간이 아니다.

평상시 같으면 학생들의 학구열로 불타올랐을 열람실과 미국 갈보리신학교에서 기증한 8만여 권의 장서를 비롯한 온갖 서적과 문서들로 가득한 자료실까지 둘러보았다. 방역지침 등으로 인해 텅텅 빈 풍경이 스산하다. 어서 이 자리들이 다시 사람들의 온기와 열정으로 채워지기를.

▲문소기독교박물관

도서관 1층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독자적인 공간이다. 두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운영 중인 문소기독교박물관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제13대 총회장을 지낸 고 신세원 목사가 평생 수집한 고서와 각종 자료들, 선교지에서 들여온 기념품 등 총 8000여 점을 모교에 기증하면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담당직원은 “전시품 중에는 초창기 교회사의 진귀한 자료들과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유물들도 포함되어 있어 박물관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행은 전시실을 하나씩 둘러보다 각자의 추억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품들도 하나씩 마주치고, 서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학우들이, 나아가 외부인들까지 자유롭게 이 소중한 보물창고를 관람할 수 있는 시절이 속히 회복되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더불어 전시공간의 부족으로 상당수의 기증품들이 수장고에 갇힌 채, 아직껏 세상에 그 자태를 드러내지 못하는 점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총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야 겠다는 생각까지 덧붙이자, 이 부분에 대한 대안 강구가 더욱 절실해보였다.

▲소래교회당

마지막 방문지는 캠퍼스 남쪽에 자리잡은 소래교회당이다.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개신교회인 황해도 장연의 소래교회 옛 예배당을 황해노회가 1988년 이곳에 다시 복원한 건물이다.

기자가 방문하기 하루 전인 12월 7일에도 황해노회에서 분립한 소래노회가 200회기 감사예배를 이곳에서 열만큼, 이북 출신 노회들이 많은 애착을 보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외관에서 뿜어내는 범상치 않은 정취만큼이나 내부의 풍경과 전시된 옛 사진자료들까지 색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기숙사에서 강의동이나 본관을 오가며 소래교회당을 자주 둘러본다는 박정화 전도사는 건물에 담긴 의미 뿐 아니라 서상륜 서경조 형제 등 소래교회를 중심으로 초창기 한국교회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기회가 된다면 소래교회가 처음 문을 연 그 땅에도 찾아가보고, 북한교회 재건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게 그의 비전이다.

언제 찾더라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소래교회당은 오랫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교회당 지척에 있는 기도굴과 함께 명상과 간구의 장소로 사랑받아 왔다. 지금은 문이 잠긴 채 아무라도 드나들기 어려워진 이 자리에서 새 봄에는 기도의 소리 높아지는 날이 돌아오리라 기대하며 짧지만 의미 깊었던 캠퍼스 투어를 종료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